명화 박명옥 작가 ‘명인 청구전’
기룡관음
화려하지만 경박하지 않다. 진중하지만 무거운 것도 아닌 그 경계에 너무 잘 서 있다. 칼로 오려낸 종이의 편린들이 쌓여 ‘기룡관음’이 입체로 솟아 올라오고, 일출의 태양을 뒤에 감춘 구름의 실루엣처럼 은은한 황금색이 찬란하게 스며 나오고 있다.
대학로 명인갤러리에서 7월 14일(일)부터 17일(수)까지 명화(明華) 박명옥 종이불화작가의 ‘명인 청구전’이 열렸다. 4일 동안의 짧은 전시지만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전시다.
등용문
연등
어렸을 때부터 관세음보살을 보면 그냥 좋았다는 박명옥 작가는 20여 년간 종이조각 기법과 불화를 접목하여 종이로 불보살을 구현해 오고 있다. 그의 종이 작업은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만나게 됐다.
“어릴 때 아버지가 신문지나 백노지로 배도 접고 학도 접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걸 우리 애들이랑 같이 하고 싶었는데, 종이조각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거 한번 해볼까 했더니, 이게 너무 딱 맞았어요.”
달항아리
수월관음
박명옥의 작품은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작업을 할 때 그의 마음 상태가 궁금했다.
“작업이 쭉 들어가 있습니다. 그냥 할 뿐입니다. 진짜. 그러다가 혹시 전화가 온다거나 그러잖아요. 그러면 이제 멍청하게 전화를 받아요. 네네 ᠁ 네네네. 그래놓고 전화 끊고 방금 뭐라 그랬지? 근데 모르겠다 아니면 다시 전화하겠지 이러고 냅두고 다시 들어갑니다.”“작업을 다시 하려다 보면, ‘어머 이거 누가 했어’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제가 한 게 아니고 내 손 빌어서 와주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무슨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관세음보살
반야부분
종이는 부드럽고 가벼워 유연성이 뛰어나다. 그러면서 형태를 유지할 정도로 견고하다. 그리고 칼은 바람에 틈새를 낼 정도로 날카롭다. 종이와 칼의 삼매 속에서 진행되던 그의 작업은, 마침내 옻칠을 만나면서 오랫동안 보존하기에 유리한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옻을 번지고 덧칠해 가는 연속된 과정 속에서 스스로 깊이와 조형을 잡아가는 살아있는 질료와의 대화는 그에게 모든 가능성이 하나가 되는 환희심을 맛보게 한다.
“이 안에도 부처가 있지만, 저기 우주 법계라는 부처님 안에 지금 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부처 안에 내가 있다고 보면 세상이 완전히 시각이 바뀌어버려요. 뭐랄까 재미있어져요. 좋고 나쁜 것도 그게 큰 의미가 없고 그래야 그냥 그런 일일 뿐인 거예요. 그냥 파랄뿐이고 그냥 빨갈뿐인 거예요. 그렇게 와닿아지니까 난리 버거지를 피고 할 일이 없어져버리는 거예요.”
여래좌상
문수보살
한지 뒤에서 은은하게 스며 나오는 불빛.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어우를 수 있고 함께 품을 수 있는 보살의 모습이 오래된 동굴에 그려진 암각화처럼 다가온다. 화려하지만 본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부처님 뒤에서 도와주는 그런 형식의 작품들.
“너무 멋지다 저런 사람이 되면 참 좋겠어.”
박명옥 작가는 지금도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발견해 나가고 있다.
시왕(十王)파주시 홍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