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삼화사(사진=미디어붓다)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
자신을 다스리고
언제나 자제하며 사는 자
자신을 이기는 자가
다른 사람을 이기는 자보다 낫다.
근대 서양에서 불교는 종교를 넘어 동양의 철학과 사상을 수용하는 일종의 창문과 같은 것이었다. 특히 서양 음악사 속의 적지 않은 작곡가들이 불교사상에 심취했으며, 서양의 철학과 예술에서 볼 수 없었던 관점과 돌이킬 수 없는 영감을 불교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전혀 새로운 생각과 전혀 새로운 작품을 빚어내는 바탕이 되었다. 서양의 작곡가들에게 창작의 원천과 사유의 전환점으로 작용해 창작된, 불교와 관련된 대표적인 음악이 바그너의 오페라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은 천년 세월 동안 신의 굴레에 얽매어 있다가 르네상스와 함께 철학의 기지개를 펴던 서양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제공했다.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동양철학, 특히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 사상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리스트에게 보냈던 그의 편지에는 그의 불교에 대한 신념이 호기심 차원을 넘어선 단계임을 보여준다.
‘유대-기독교와 비교해서 (불교의) 이 교리는 얼마나 숭엄하며,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인간 본성의 가장 심오함에 관한 고결하고 의미 있는 표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종교인 브라만의 가르침과 이것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변형된 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혼의 순환(윤회)에 관한 부처의 가르침은 진리에 가장 근접해 있다.’
바그너가 살았던 1800년대 독일에서는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 연구가 한창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서적들이 번역되었고, 자연스레 불교를 비롯한 인도 사상이 전파되었다. 이에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가 쇼펜하우어(1788~1860)였고,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는 바그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그너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전공한 사색가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이 책을 접한 후 1865년 초연된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olde)’와 함께 ‘승리자들(Die Sieger)’이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 제목은 ‘자기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법구경>에서 따온 것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그너라는 음악가의 이름은 알아도, 그가 불교에 심취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또한 그의 오페라 <승리자들>이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바그너의 오페라 <승리자들>의 배경이 된 이 시는 <법구경- 담마파다> ‘천(千)의 품’에 등장한다. 이 시의 배경은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혀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건장한 청년을 보고 끓어오르는 애욕을 참지 못한 탓에 온갖 역경과 시련을 겪고 난 후 한 이교도의 집단에 들어가 그들의 교리를 공부한 후 알음알이에 도취해 기고만장하다가, 사리뿟따 장로를 만나 자신의 한계와 잘못을 깨달은 후, 인도를 받아 비구니가 되어 거룩한 경지, 즉 열반을 성취한 장로니 꾼달라께씨(Kuṇḍalakesi)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가르침을 별로 받지도 않은 비구니가 승단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도둑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많은 수행승들이 신뢰하지 않자 부처님께서 그들을 향해 ‘자신의 악행인 도둑을 쳐부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라고 말씀하신 후 ‘쓸데없는 백 개의 시를 말하는 것보다 들어서 안온해지는 한 마디 진리의 말씀이 낫다’는 시와 함께 이 시를 읊으신 것이다.
- 시구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에서 단 한 사람의 군인이 홀로 참전하여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무찔러서 승리해도 전장에서의 최상의 승리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 시구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는 밤낮으로 명상주제를 명상하여 자신을 제어하여 탐욕 등 모든 번뇌를 정복한 자를 말한다.
- 시구 ‘자신을 다스리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복보다는 자신의 번뇌에 대한 승리로 자제된 자아가 더욱 고귀하다는 의미이다.
- 시어 ‘자제’는 번뇌에서 벗어나 자신을 잘 조절한다는 뜻으로, 이런 사람은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으로 잘 제어된 사람이라고 한다.
- 시구 ‘다른 사람을 이기는 자보다 낫다’는 다른 사람이 술수나 무력이나 힘에 의한 굴욕으로 전쟁에서 패했다면, 그들을 정복한 자의 승리는 고귀한 것이 못되므로 자신을 이기는 것이 참 승리임을 부연하는 내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