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은 공덕이 아니다
(삽화 정윤경)
절벽 너머 라자가하(왕사성) 거리는 뜨거웠지만 칠엽굴 안은 청량했다. 구도자들에게 청량한 곳은 이상적인 수행처였다. 그래서인지 장로들은 청량한 곳을 도피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난다는 미소를 지었다. 장로 마하깟사빠가 자신을 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 애송이 비구라고 놀렸던 기원정사 시절,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스승 붓다의 진의(眞意)가 단박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구름이 걷히자 빛살이 쏟아지는 것과 같았다. 붓다의 진의가 이해를 뛰어넘어 찰나 간에 다가왔던 것이다. 머리에서 해답이 나온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순식간에 터졌던 것이다. 아난다는 계속해서 붓다의 말씀을 사실대로 5백 장로에게 전하면서도 그 진의를 절감하고 하니 여유롭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기원정사에서 붓다의 설법을 들었던 장로 수부띠와 마하깟싸빠의 감정이 바로 ‘이런 희열이 아니었을까’ 하고 유대감을 느꼈다. 아난다는 5백 장로에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스승 붓다의 말씀을 전했다.
<스승 붓다께서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훌륭한 젊은이와 딸들이 이 ‘끝없는 넓은 우주(三千大天世界)를
일곱 가지의 보배(七寶)로 가득 채워
여래, 존경받을 만한 사람, 올바로 깨달으신 사람들에게 보시했다면
그 훌륭한 젊은이와 딸들은 많은 공덕을 쌓는 것이 될까?”
수부띠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행복하신 분이여.
그 훌륭한 젊은이와 딸들이 많은 공덕을 쌓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공덕을 쌓지 않는 것이다.’라고 여래가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공덕을 쌓는다. 공덕을 쌓는다.’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기원정사에서의 초보비구 아난다는 왜 스승 붓다가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공덕을 쌓지 않는 것이다.’라고 설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라한이 된 지금은 붓다의 그 말씀이 찰나 간에 스며들었다. 아난다는 5백 장로를 슬쩍 쳐다보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공덕은 공덕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덕이다.’
스승 붓다 특유의 부정에서 긍정으로 가는 논리였다. 어쨌든 붓다의 말씀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완벽한 진리였다. 공덕은 공덕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덕이 된다는 논리였다. 어째서 공덕은 공덕이 아닌가. 공덕 자체의 본래 성질이 없으므로 공덕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해탈에 도움이 되는 공덕이 있다면 공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절대 무위, 즉 공(空)에서는 공덕이 많고 적고 하는 분별이 필요 없지만 현실 즉 색(色)에서는 ‘공덕을 쌓는다.’는 긍정의 말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아라한이 아닌 수다원의 처지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붓다 특유의 ‘부정에서 긍정으로 건너가기’ 논리였다. 그런데 붓다의 논리는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온몸으로 절감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천신만고 끝에 고산 정상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은 고산이 얼마나 높은지, 산이 무엇인지를 절감할 수 없을 터였다. 숨조차 쉴 수 없는 고산 정상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은 고산을 통째로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치인 것이었다.
바다도 마찬가지. 깊은 바다 밑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은 깊은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바다가 무엇인지를 절감할 수 없을 터였다. 깊은 바다 밑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은 바다를 통째로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치인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고산 정상까지 가본 사람만이 정상에 서서 ‘산은 산이다.’라고 긍정의 말이 화산처럼 터질 수 있고, 깊은 바다 밑까지 가본 사람이라야 심해 바닥에서 ‘바다는 바다다.’라고 긍정의 말이 해일처럼 솟구칠 수 있음이었다.
아난다는 새삼 스승 붓다께 합장하며 감사를 표했다. 붓다의 진의를 알려면 고산처럼 높은 붓다 의식의 높이까지 천신만고 끝에 올라야 하고, 심해처럼 깊은 붓다 의식의 깊이까지 내려가봐야 한다는 비구제자로서의 태도를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스승님께서는 그래서 부정을 먼저 말씀하셨구나. 부정은 긍정으로 가기 위한 방편이었구나. 스승님의 가르침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건너가기였구나.’
<스승 붓다께서 말했다.
“수부띠여, 훌륭한 젊은이와 딸들이 있어
이 광대한 우주를 일곱 가지의 보물로 가득 채우고,
여래, 존경받을 만한 사람,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해도,
누구든지 이 법문에서 네 구절로 된 게송을 하나라도 끄집어내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면
바로 이것이 결국에는 저것보다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는 것이 된다.”>
네 구절로 된 게송에서 넷이란 숫자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온전히 갖추어진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게송이 세 구절로 되어 있으면 완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던바, 네 구절로 된 게송이란 붓다만의 가르침이 완벽하다는 통념이었다.
스승 붓다가 설한 이 부분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난다는 기원정사 시절에 붓다의 가르침인 이 부분을 듣고 난감해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는 부정의 논리가 없었다. 말하자면 광대한 우주를 칠보로 가득 채우는 물질적인 보시의 공덕도 크겠지만 그보다 더 큰 공덕은 바로 붓다의 완벽한 가르침을 배워서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난다는 그때 붓다의 이어지는 가르침에서 흠칫했던 기억이 떠올라 흘러내린 가사를 손으로 잡았다. 예리한 칼날 같은 부정의 논리가 또다시 아난다를 긴장시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실로 여래, 존경받을 만한 사람,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의
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도 이로부터 생긴 것이며,
깨달으신 분인 붓다도 또 이로부터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수부띠여,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理法)이란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이 아니다’라고
여래께서 설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깨달은 사람의 이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스승 붓다가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理法)이란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이 아니다.’라고 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칠엽굴에 와 있는 아난다 아라한은 붓다의 절대부정 논리를 절대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이곳 칠엽굴에서 여러 차례 ‘부정에서 긍정으로 건너가기’를 간파했던 것이다.
‘이법은 이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법이다.’
붓다 특유의 절대부정은 절대긍정과 동의어였다. 이법(理法)은 불법(佛法)이라고 해도 좋았고, 진리라고 해도 좋았다. 법조차도 부정하는 절대부정이 스승 붓다의 가르침이었다. 법(法, 다르마)은 실체가 없으니 법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법은 실체가 없으므로 진실한 법이 된다고 붓다는 가르쳤다. 법조차도 부정하라고 하는 사람은 오직 붓다뿐이었다. 제사를 주관하는 바라문들은 법을 신성불가침한 진리로 보았던 것이다. 지난 기원정사 시절, 실체가 없는 법을 껴안으려 했던 아난다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5백 장로에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명징하게 붓다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아난다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