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사진=미디어붓다)
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
슬픔 없이 일체의 관점에서 해탈하고
일체의 속박을 버린 님에게
고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김을 갖춘 님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주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백조들이 늪지를 떠나는 것처럼
그들은 집마다 그 집을 떠난다.
쌓아 모으는 것이 없고
음식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있음을 여의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번뇌를 부수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텅 비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조련사에 의해 잘 조련된 말처럼
모든 감관이 안정되어
망상이 끊어지고 번뇌를 여읜 님
천신조차 그러한 님을 부러워한다.
잘 닦인 님은 땅과 같이 적대가 없고
성문의 기둥처럼 흔들리지 않고
진흙을 여읜 호수와 같아
이와 같은 님에게는 윤회가 없다.
올바른 앎으로 해탈하여
적멸을 얻으면,
그의 정신은 적정에 들고
언어와 행위도 지멸한다.
믿음을 여의고 무위를 아는 님,
결박이 끊어진 님,
기회가 부서진 님,
소망을 여읜 님,
그가 참으로 위없는 사람이다.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계곡이나 평원에서나
거룩한 님이 머문다면
그 지역은 즐거운 곳이다.
세상 사람이 즐기지 않는 곳,
그 숲은 즐길만한 곳이라
탐욕을 여읜 님들이 즐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찾지 않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가르침대로 수행해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아라한과를 얻는다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사실 아라한이 되었을 때 얻어지는 좋은 점들에 대한 확연한 이해가 있다면, 또 이런 점들이 널리 알려진다면 누구나 수행의 길로 들어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동안 불교계에서는 아라한이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까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부족했거나 사실상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쓰라린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다소 막연한 설명이 있었을 뿐이다. 또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사라지게 된다는, 범부로서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차원의 설명만 반복될 뿐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아라한이 되었을 때 어떤 좋은 점들이 있을까에 대한 보다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들에게도 발심의 계기가 되고 또한 수행에 큰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법구경- 담마파다> ‘거룩한 님의 품(Arahantavagga)’에 수록된, 모두 10연에 이르는 긴 시이다. 전재성 님이 적확하게 번역한 이 시를 잘 이해하면, 불연(佛緣) 깊은 이들이 아라한의 길로 들어서고자 발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시구 ‘여정을 끝내고’는 윤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자, 즉 아라한과를 얻은 자를 의미한다.
- 시구 ‘슬픔 없이’는 윤회의 원인이 되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 것을 말한다.
- 시구 ‘일체의 속박’은 네 가지 계박(四繫), 즉 탐욕의 축적에 의한 번뇌의 굴레, 악의의 축적에 의한 번뇌의 굴레, 규범과 금기의 취착에 의한 신체적 번뇌의 굴레, 독단적 견해의 고집에 의한 신체의 굴레를 말한다. 다시 말해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모든 속박들이라는 뜻이다.
- 시구 ‘새김을 갖춘 님들은’은 완전한 새김을 확립하고 번뇌를 끊은 님을 말한다. 이런 님들은 선정과 통찰 즉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수행한다. 이들은 그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도달하고, 거기서 나와서 ‘이러한 때에 나는 그것들 속에서 지내리라.’라고 결정하고 성찰한다.
- 시어 ‘주처’는 욕망의 경향에 대한 환락을 의미한다. 즉 오욕락에 집착하는 경향이다.
- 시구 ‘백조들이 늪지를 떠나는 것처럼’은 백조가 어떤 늪지에서 먹이를 취하고 나면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고 그곳을 떠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백조는 풍부한 먹이가 있는 웅덩이의 먹이를 다 먹고 나면 거기의 어떤 대상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기질이 있다고 한다.
- 시구 ‘쌓아 모으는 것’은 두 가지의 축적을 의미한다. 업의 축적과 필수품의 축적이다. 업의 축적에는 착하고 건전한 것과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있다. 필수품에는 네 가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수행승은 한 조각의 설탕과 네 조각의 버터, 한 날리(nāḷi)의 쌀은 필수품의 축적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 이상을 지니면 축적으로 간주되었다.
- 시구 ‘완전히 알고’는 세 가지 형태의 완전한 앎을 말한다. 지혜로서의 앎, 판단으로서의 앎, 버림으로 이끄는 앎이 그것이다.
- 시구 ‘활동영역에서 해탈’은, 전 구에서 언급한 있음을 여읜 해탈과 인상을 여읜 해탈을 포함해 바람을 여읜 해탈까지 모두 세 가지의 해탈을 의미한다. 열반에는 집착이나 악의나 미혹이 없기 때문에 첫째 열반은 ‘있음을 여읜’ 해탈, 즉 공해탈, 둘째 집착착이나 악의나 미혹의 인상이 없기 때문에 ‘인상을 여읜’ 해탈, 집착이나 악의나 미혹에 대한 바람이 없기 때문에 ‘바람을 여읜’ 해탈이다.
- 시어 ‘자취’는 업의 축적이나 필수품의 축적 등을 말한다. 이미 아라한과를 성취한 님에게는 마치 하늘 나는 새의 자취를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처럼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시어 ‘번뇌’는 네 가지 번뇌가 완전히 부서진 상태를 말한다. 네 가지 번뇌에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번뇌, 존재에 대한 욕망의 번뇌, 견해의 번뇌, 무명의 번뇌가 있다.
- 시구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는 갈애와 견해를 통해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 시구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는 아라한과를 얻은 수행승들을 두고 ‘그는 지옥으로 이끄는 길을 갔다, 축생으로 이끄는 길을 갔다’ 등등의 말로 그 자취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 시어 ‘망상’은 아홉 가지의 자만(九慢)을 말한다. 구만은 우월한 자 가운데 나는 우월하다는 교만, 우월한 자 가운데 나는 동등하자는 교만, 우월한 자 가운데 나는 열등하다는 교만, 동등한 자 가운데 나는 우월하다는 교만, 동등한 자 가운데 나는 동등하다는 교만, 동등한 자 가운데 나는 열등하다는 교만, 열등한 자 가운데 나는 우월하다는 교만, 열등한 자 가운데 나는 동등하다는 교만, 열등한 자 가운데 나는 열등하다는 교만이다.
- 시구 ‘성문의 기둥처럼 흔들리지 않고’는 어떤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는 경지를 뜻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사람들이 순수한 향과 꽃을 땅 위에 던지고 또한 오줌과 배설물도 던지는 것처럼 어린아이들 등이 성문의 기둥에 오줌을 싸고 배변도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은 향과 꽃으로 거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다고 땅이나 기둥이 호감이나 반감을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번뇌가 소멸한 수행승은 일상적인 사람의 여덟 가지 양상(八風: 이익과 손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에 직면해서 침착하고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시구 ‘언어와 행위도 지멸한다’는 적멸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번뇌가 소멸된 수행승의 마음은 탐욕 등을 여의었기 때문에 정신적 행위가 고요하고 평화롭고 적멸의 상태에 있다. 거짓말 등을 여의었기 때문에 언어적 행위가 고요하고 평화롭고 적멸의 상태에 있다. 목숨을 빼앗는 것 등을 여의었기 때문에 신체적 행위가 고요하고 평화롭고 적멸의 상태에 있다.
- 시구 ‘믿음을 여의고’는 덕성을 성취한 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을 여읜다고 한 것이다. 아라한과를 성취한 님은 부처님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스승에게 믿음을 지니지 않는다.
- 시구 ‘무위를 아는 님’은 열반을 깨달은 님이라는 뜻이다. 무위는 창조되지 않은 것,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뜻으로 열반을 뜻한다.
- 시구 ‘결박이 끊어진’은 윤회의 결박을 끊었다는 뜻이다.
- 시구 ‘기회가 부수어진’은 악하고 불건전하거나 착하고 건전한 씨앗이 제거되어 윤회의 기회가 부수어졌다는 뜻이다.
- 시구 ‘소망을 여읜’은 네 가지의 길(四向),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길을 통해 해야 할 일을 모두 행해 모든 소망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 시구 ‘즐거운 곳’은 거룩한 님들이 머무는 곳을 말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거룩한 님들은 마을 등에서 신체적인 멀리 여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멀리 여읨을 얻는다. 천상의 신들과 비교되는 대상조차도 그들의 마음을 빗나가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을이나 숲 등에서나 거룩한 님들이 머무는 곳이 우리가 즐겨 지낼 수 있는 즐거운 곳이다.
- 시구 ‘세상 사람이 즐기지 않는 곳’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기지 않는 숲을 말한다. 주석서에서는 마치 마을의 파리가 활짝 핀 연꽃의 꽃송이에서 즐기지 않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