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예언
(삽화 정윤경)
아난다는 왜 붓다가 미래시대를 5백 년 단위로 예언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붓다는 자신의 입멸 후 미래시대를 5백 년 단위로 설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붓다는 첫 번째 미래시대인 5백년까지는 모든 비구들이 나의 법에 있어서 해탈이 견고할 것이고, 다음 5백 년까지는 나의 바른 법에 있어서 선정삼매만이 견고하게 머물 것이며, 그다음 5백 년까지는 나의 법에 있어서 힘싸움과 말다툼이 일어나 깨끗한 법은 없어지고 견고함이 줄게 되리니 그 뒤부터는 비록 수염과 머리를 깎고 몸에 가사를 입더라도 계를 파괴하고 법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비구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라고 미래시대를 우려했던 것이다.
특히 붓다는 입멸 후 1500년, 즉 세 번째 미래시대부터는 ‘그때는 먹고살기 위하여 중이 되고, 삼승(三乘)을 기원하지 않고 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예언했다.
뿐만 아니라 ‘탐욕에다 명리를 추구하며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타인을 질투하며, 학문 수행의 길에서 멀리 물러나고 선행도 하지 않으며, 낮에는 남의 욕을 하고 그것을 즐기며 밤에는 잠에 빠진다. 경전을 안 읽고, 그 대신 흥밋거리의 책자나 좋아하며, 계율을 어기고 부녀자와 희롱한다. 비속한 영업을 한다. 속인과 어울려 물건을 팔거나 논밭을 사유화한다.’고 예언했다.
또 ‘남과 다투기를 잘하고, 덕망이 있는 스님과 학문이 높은 스님을 질투, 배척하며 자리를 같이하기를 싫어한다. 무례하고 몰상식한 말로 타인을 매도하고 속인의 악덕을 찬미하며 아첨한다. 이러한 자들이 나의 교시를 지켜야 할 절로 출가를 하니 그야말로 사이비이고, 도둑이며, 대악인인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는 5백 년 단위로 불법이 점차 쇠퇴할 텐데 세 번째 미래시대인 1500년 뒤부터는 파계승들이 출현하여 정법이 무너지고 말법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붓다의 경고였다.
아난다는 아직 미래시대를 볼 수 있는 눈은 없었다. 수부띠 같은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붓다만이 미래시대를 볼 수 있었다. 아난다는 현실을 성찰하는 혜안(慧眼)의 경지일 뿐이고, 수부띠 같은 장로들은 과거와 현재를 통찰하는 법안(法眼)의 경지일 뿐이었다. 미래시대를 환히 내다보려면 붓다처럼 불안(佛眼)을 가져야만 가능했다.
그런 까닭에 수부띠나 아난다는 항상 미래시대가 궁금했다. 더구나 붓다가 이전에 설한 미래시대의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관심이 컸다. 그러니까 미래시대를 걱정하는 수부띠의 질문은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
수부띠는 마음속에 품어왔던 질문을 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원정사를 포근하게 감쌌던 짙은 안개가 숲 너머 사밧티성 쪽으로 물러가자 아침 햇살이 붓다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원숭이 몇 마리가 눈알을 굴리며 비구제자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살라나무 가지 위로 슬그머니 올라갔다.
<수부띠 장로는 스승을 향하여 이렇게 물었다.
“스승이시여, 미래시대에도 그 마지막 시대에도,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지는 마지막 5백 년인 때에도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이 설해지더라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스승이 대답하였다.
“수부띠여, 그와 같은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미래시대에도 그 마지막 시대에도,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지는 마지막 5백 년인 때에도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이 설해지더라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수부띠여,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지는 마지막 5백 년인 때에도
덕이 높고 계율을 지키며 지혜가 깊은 구도자인 보살들은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이 설해질 때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고 틀림없이 생각할 것이다.>
수부띠는 정법이 무너지는 말법시대를 걱정했다. 아난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붓다에게 “스승이시여, 미래시대에도 그 마지막 시대에도,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지는 마지막 5백 년인 때에도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이 설해지더라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파계승들이 난무하는 말법시대가 되면 보살들이 출현하여 경전의 진리가 지켜질 것이라고 수부띠를 안심시켰다. 정법이 무너지는 말법시대에는 보살들이 나타나 ‘경전의 말씀들은 진실하다’라며 외호할 것이라고 수부띠에게 알려주었다.
<수부띠여, 또 구도자인 보살들은
오직 한 분의 붓다를 섬기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한 분의 붓다 아래서만 그들의 선근(善根)을 심는 것이 아니리라.
몇십만의 붓다 아래서 선근을 심은 일이 있는 보살로서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이 설해질 때
한결같이 맑은 믿음을 틀림없이 얻을 것이다.
수부띠여, 여래는 붓다의 지혜로 보살들을 보고 있다.
수부띠여, 여래는 보살들을 빠짐없이 알고 있다.
수부띠여, 보살들은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쌓아 자기 것으로 얻을 게 틀림없다.>
붓다는 미래시대 보살들의 모습까지도 미리 수부띠에게 설해주었다. 미래시대의 보살들은 지금의 장로들처럼 한 붓다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붓다를 섬기며 선근을 심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까닭에 말법시대의 보살들은 정법이 무너지지 않게 맑은 믿음의 공덕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공덕을 쌓아 스스로 받을 게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붓다는 수부띠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두 마디를 더 덧붙였다. 혜안과 법안을 가진 너희들은 미래시대를 볼 수 없지만 불안을 가진 여래는 미래시대를 내다보고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이라며 확신을 심어주었다.
<수부띠여, 여래는 붓다의 지혜로 보살들을 보고 있다.
수부띠여, 여래는 보살들을 빠짐없이 알고 있다.>
순간 수부띠는 붓다가 미래시대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한 순간이 5백 년처럼 마음에 따라 느리게 흐를 수 있고, 5백 년이 한순간처럼 빠르게 흐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 5백 년이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마음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수부띠는 깨닫고 지금 바로 자신부터 보살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스승 붓다의 주문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난다는 아직 거기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말법시대에도 보살들이 정법을 지킨다는 말에 안도하고 불법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구나 하고 환희심을 냈을 뿐이었다.
그때 아난다는 사뭇 감동에 젖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미래시대에도 진리로 남아 있을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있다는 것이 가슴 뿌듯했던 것이다.
칠엽굴에 비친 햇살이 아난다의 얼굴까지 미쳤다. 아난다의 얼굴에는 보석 같은 눈물이 두어 방울 흐르고 있었다. 수부띠 장로는 아난다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수부띠는 중얼거렸다.
‘이제 아난다도 과거 현재 미래시대가 마음속에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난다 역시 정법을 지키는 보살이 되기를 서원하게 될 것이다.’
수부띠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아난다는 이제 장로가 되어 있었다. 기원정사에서 붓다와 수부띠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만 있었던 그때의 아난다가 아니었다. 이제는 아라한이 되어 5백 명의 장로들에게 스승의 말씀을 암송하여 들려주고 있는 장로였다. 아난다의 깊어진 의식은 수부띠처럼 법안으로 붓다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