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마 붓다의 탁발

(삽화 정윤경)
고따마 붓다는 사밧티 사람들을 사랑했다. 영광의 도시란 뜻이 깃든 사밧티는 꼬살라국 수도로서 90만 가구가 사는 대도시였다. 소나 양 등 가축이 많고 농산물이 풍부한 사밧티에는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 상인 부자들이 많았다. 상인수장인 장자는 외국에서 진기한 가구와 보석, 비단 등을 가져와 사밧티에서 생산되는 상품들과 물물교환하면서 이문을 몇 배씩 챙겼다. 부자 상인들은 대저택에서 수십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가 하면 바람조차 막을 움막이 없는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걸인들은 거적때기를 둘러쓴 채 노숙했다.
붓다는 사밧티 거리로 탁발을 나가는 도중에 마하깟사빠와 수부띠를 불렀다. 그동안 두 아라한이 탁발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아 왔는데, 이제는 충고를 해주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두 아라한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뛰어난 상수제자(上首弟子)였지만 탁발의 방식만큼은 완전하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가다국 출신인 마하깟사빠의 어린 시절 이름은 삡빨리였다. 삡빨리는 마하띳타마을의 부유한 바라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성인이 된 삡빨리가 출가할 생각만 하자 강제로 바라나시 출신의 처녀 밧다 까삘라니와 결혼을 시켰다. 하지만 삡빨리 부부는 결혼은 했지만 동침하지 않고 12년 동안 청정한 생활을 했다. 이윽고 부모가 돌아가시자 유산으로 받은 재산을 모두 친인척에게 넘겨주고 오래전에 준비해 두었던 가사를 입은 채 헤어져서 부부가 모두 출가했다.
그때 고따마 붓다가 라자가하 쪽으로 걸어오는 삡빨리 바라문을 보고 바후뿟따까 보리수 아래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삡빨리 바라문은 붓다의 거룩한 모습을 보자마자 자신의 스승이라고 직감하며 삼배를 올렸다. 붓다는 삡빨리 바라문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를 마하깟사빠(마하가섭)라고 불렀다.
마하깟사빠는 붓다를 따라 죽림정사로 향했다. 그렇게 걸어가는 도중에 붓다가 나무 아래서 쉬어가려고 앉으려 했다. 그러자 마하깟사빠는 얼른 자기 가사를 벗어 붓다가 앉을 곳을 확인한 뒤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저의 가사를 깐 이곳에 앉으십시오. 스승님께서 여기에 앉으신다면 저는 오랫동안 행복할 것입니다.”
“깟사빠여, 이 오래된 두 겹의 가사는 참으로 부드럽구나.”
“스승님이시여, 오래되어 비록 낡기는 했지만 저의 가사를 받아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는 다 떨어진 나의 분소의를 입겠는가?”
분소의(糞掃衣)란 사람들이 공동묘지 같은 곳에 버린 헝겊을 주어다가 지은 누더기 가사를 뜻했다.
“예, 스승님이시여. 저는 스승님께서 입고 계시는 분소의를 기꺼이 입겠습니다.”
마하깟사빠는 붓다와 가사를 바꾸어 입고 난 뒤부터 8일 밤낮으로 두타행을 실천했다. 무상관(無常觀)을 닦기 위해 공동묘지를 찾아가 무덤 곁에서 자고, 쉴 때는 정사로 들어가지 않고 나무 아래서만 앉았으며, 하루 종일 가부좌를 튼 채 무엇에 기대거나 드러눕지 않았고, 아침에 한 끼만 먹는 수행이 두타행인 것이었다. 이윽고 마하깟사빠는 8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고, 붓다의 제자들 사이에 ‘두타제일’로 불렸다.
꼬살라국 출신인 수부띠(수보리) 역시 마하깟사빠처럼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부호 쑤마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동생이었다. 아나타삔디까의 본명은 수닷타인데 그는 기원정사 땅을 시주한 사밧티의 상인수장이자 어마어마한 부호였다. 수부띠는 사밧티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온 기원정사 개산법회 때 붓다의 설법을 듣고 바로 출가했는데, 공(空)을 깨달은 경지가 아라한 중에서 가장 깊어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 불렸다. 수부띠가 그렇게 불린 데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다.
어느 날 수부띠가 가사를 꿰매고 있었는데, 붓다가 다가왔다. 수부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를 드리려다가 그만두고 다시 앉아서 가사를 꿰맸다. 수부띠는 붓다라는 형상 자체도 근본적으로는 공(空)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었다. 수부띠의 마음을 살핀 붓다가 말했다.
“수부띠가 가장 먼저 내게 예배를 하는구나. 수부띠보다 나은 자가 없구나. 공을 알고 해탈하는 것이 바로 예불의 참뜻이니라.”
붓다의 칭찬을 받은 수부띠는 붓다에게 말없이 엎으려 큰절을 했다. 그런가 하면 수부띠는 자신과 이웃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삼매(慈愛三昧)를 통해 아라한이 되었듯 ‘평화롭게 사는 아라한 가운데 으뜸’이라고도 붓다가 그를 격려했다.
사밧티 거리로 탁발을 나가는 도중에 붓다의 부름을 받은 두 제자는 붓다에게 합장하고 다가왔다. 붓다가 마하깟사빠에게 먼저 물었다.
“깟사빠여, 그대는 탁발을 어떻게 하는가?”
“스승님이시여,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탁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금생에 복을 짓지 못하면 내생에도 얼마나 박복한 생활을 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그런 이유로 복 짓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 내생에는 가난의 고통을 받지 않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깟사빠여, 그대는 참으로 자비롭구나.”
“한 번은 탁발을 다니다가 한 노파를 보았습니다. 노파는 한평생 밥을 먹은 날보다 굶은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노파를 보니 7일밖에 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노파가 금생에 한 번이라도 보시를 해서 복 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파에게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보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자신이 걸치고 있는 걸레조각 같은 옷과 사흘 전에 이웃이 불쌍하다면서 건네준 쌀뜨물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쌀뜨물은 무더위에 쉬어서 썩은 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쌀뜨물이라도 좋으니 직접 보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쌀뜨물을 저의 발우에 담아주었고, 저는 달게 마셨습니다. 노파는 예견한 대로 7일 뒤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노파는 한밤중에 제 숙소 밖에 몸에서 빛이 나는 천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존자님이시여, 고맙습니다. 존자님께서 복을 받게 해주신 덕분에 저는 도리천에 태어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고마움에 감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예배를 올립니다.’ 하고 사라졌습니다.”
“깟사빠여, 그대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참으로 흐뭇하구나. 허나 그보다 더 완전한 탁발이 있느니라.”
이번에는 수부띠에게 물었다.
“수부띠여, 그대는 탁발을 어떻게 하는가?”
“스승님이시여, 저는 부자에게 가서 탁발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부자들이 부자가 되고자 많은 죄업을 지은즉 보시를 한다면 죄업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붓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깟사빠도, 수부띠도 완전하지 못한 데가 있구나. 모두 형상에 집착해서 탁발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모두 평등한 성품을 지니고 있지 않느냐.”
“스승님이시여,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대들은 여래가 탁발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더냐?”
“사밧티 거리로 나가시어 어느 집에서 시작하든 일곱 집만 방문해 탁발하셨습니다.”
“그대들도 나와 같이 탁발해야 한다. 먹을 만큼만 탁발하고 일곱 집을 돌았는데도 탁발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보살의 길이니라.”
그날은 마하깟사빠와 수부띠도 붓다를 따라서 발우를 들고 사밧티 거리로 들어가 각자 차별 없는 마음으로 처음 시작한 곳에서 일곱 집만 찾아가서 탁발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