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상사(사진=미디어붓다)
욕망, 분노, 어리석음, 두려움
그 때문에 진리를 어기면,
흑분(黑分)에 지는 달처럼
명성이 이지러져 버립니다.
욕망, 분노, 어리석음, 두려움
그 때문에 진리를 어기지 않으면,
백분(白分)에 차는 달처럼
명성이 차오릅니다.
<디가니까야> ‘인연의 큰 경(Mahānidānasutta)’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싸움, 언쟁 등의 수많은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부처님께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로 표현한 싸움, 다툼, 언쟁, 불화, 이간질 등은 과거에도 오늘에도 간단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일들로 인해 세상은 고통스럽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철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어느 누구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실에서 이 ‘인연의 큰 경’에서 부처님이 제시하고 있는 ‘싸움 등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의 발생원인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규명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매우 중대한 나침판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생겨나고, 추구를 조건으로 획득이 생겨나고, 획득을 조건으로 결정이 생겨나고, 결정을 조건으로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고, 욕망과 탐욕을 조건으로 탐착이 생겨나고, 탐착을 조건으로 소유가 생겨나고, 소유를 조건으로 인색이 생겨나고, 인색을 조건으로 지킴이 생겨나고, 지킴을 조건으로 몽둥이와 칼을 들고 싸움, 다툼, 언쟁, 불화, 이간질, 거짓말, 수많은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생겨난다.” -전재성 옮김
간단하게 정리하면, ‘느낌 -> 갈애 -> 추구 -> 획득 -> 결정 -> 욕망과 탐욕 -> 탐착 -> 소유 -> 지킴 -> 싸움·다툼·언쟁·불화·이간질·거짓말,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과의 고리의 첫 번째 단계인 느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고, 접촉에는 육근에 의한 접촉, 즉 시각과 청각과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의 접촉이 있다. 접촉의 대상은 물론 명색으로 대표되는 육경 즉 ‘색·성·향·미·촉·법’이다.
이런 일련의 인과의 과정들은 다름 아닌 악업(惡業)으로 가는 과정들이다. 부처님께서는 악업이 형성되는 동기(動機)를 삼독심(三毒心)과 두려움 네 가지로 분류하셨다. 즉 욕망에 의한 비도(非道)를 동기로 악업을 짓고, 분노에 의한 비도를 동기로 악업을 짓고, 어리석음에 의한 비도를 동기로 악업을 짓고, 두려움에 의한 비도를 동기로 악업을 짓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비도란 올바른 도리에서 벗어난 행위를 의미한다. 심리학에서는 두려움과 분노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두려움이 얼른 해소되지 않을 때 분노나 공격성의 감정으로 표출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부처님의 시는 <디가니까야> 제3품 빠띠까의 품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Siṅgālakovādasutta)’의 ‘악업을 짓지 않음’ 편에 등장한다.
주석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신심이 깊은 대장자의 아들로 태어난 씽갈라까 장자는 그의 부모와는 달리 신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이런 아들에게 싸리뿟따나 마하 목갈라나 존자와 같은 대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들으라고 수차례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씽갈라까는 수행자들을 찾아갈 의무가 없다며, 여러 가지 구차한 이유를 열거하고, 그들을 찾아가봐야 이득이 없다고 반발했다. 부모는 살아 있는 동안 충고를 거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누운 아버지는 씽갈라까에게 마지막 훈계를 내리기로 하고, 침상으로 불러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여섯 방향에 예배를 하라”고 말했다. 죽음의 침상에서 들은 부친의 훈계였기에, 씽갈라까는 영문을 모른 채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시의 웰루와나 숲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에 계실 때, 한 장자가 아침마다 여섯 방향으로 예배를 올리는 것을 불안(佛眼)으로 둘러보시고 씽갈라까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이다. 이 경은 한역에서는 <선생경(善生經)>이라는 경명으로 옮겨졌다. 부처님께서는 씽갈라까 장자에게 아침마다 라자가하 시에서 나와 옷과 머리를 적시고 합장하여 여섯 방향으로 절을 하는 연유를 묻고, 그로부터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절을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고귀한 님의 계율에서는 어떻게 여섯 방향으로 절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셨다.
“장자의 아들이여, 고귀한 제자는 네 가지의 오염을 제거하고, 네 가지 동기로 악업을 짓지 않고, 여섯 가지 재물의 파멸문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이와 같이 열네 가지 악한 길을 떠나고, 여섯 방향을 수호하고, 두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길을 갑니다. 그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만족하게 됩니다. 그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후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전재성 옮김.
네 가지의 오염, 즉 네 가지 행위의 오염은 첫째,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행하는 것,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네 가지 악업의 동기(動機)는 욕망에 의한 비도를 짓지 않고, 분노에 의한 비도를 짓지 않고, 어리석음에 의한 비도를 짓지 않고, 두려움에 의한 비도를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섯 가지 재물의 파멸문은 첫째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 둘째 때가 아닌 때에 거리를 배회하는 것, 셋째 흥행거리를 찾아다니는 것, 방일의 근본이 되는 놀음에 미치는 것, 악한 친구를 새기는 것, 나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여섯 방향의 수호는 동쪽 방향은 부모, 남쪽 방향은 스승, 서쪽 방향은 처자식, 북쪽 방향은 친구와 동료, 아래 방향은 하인과 고용인, 윗 방향은 수행자와 성직자를 의미한다.
이 시는 부처님께서 씽갈라까에게 말씀하는 내용 가운데, 네 가지 동기로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설해졌다.
시어 중에 등장하는 ‘흑분’과 ‘백분’은 인도력(印度曆)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인도력에서는 음력 16일에서 다음 달 15일까지를 월(月)의 단위로 하는데,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16일부터 30일까지의 전반부를 흑분이라 하고, 달이 차기 시작하는 1일부터 15일까지의 후반부를 백분(白分)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