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물거품과 같다고 알고
아지랑이와 같다고 깨닫는
님은,
악마의 꽃들을 능히 잘라버리고
죽음 왕의 시야를 넘어서리
삼화사 수륙재 대령시련의식(사진=미디어붓다)
이 시는 <담마파다-법구경> ‘꽃의 품(Pupphavagga)’에 포함된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시 가운데 한 편이다. ‘꽃의 품’은 전재성 박사의 번역인데, 한역에서는 화향품(花香品)으로 옮겼다.
부처님은 이 시에서 몸에 대해 수행자들이 가져야 할 인식을 물거품, 아지랑이와 같다고 알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반 중생들의 몸도 아닌 삼십이상(相)이라는 특별한 모습을 갖춘 고귀한 부처님의 몸조차 물거품과 아지랑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시를 직접 부처님으로부터 들었을 제자들에게는 마치 한 여름날 얼음우박을 맞은 것과 같은 청량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테리가타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은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승리자로 서른두 가지 특징(dvattimsalakkhana)을 갖추고 있다. 서른두 가지의 특징, 즉 삼십이상에는 땅에 적응해서 안착되는 발, 천 개의 바큇살과 테와 축이 달린 모든 형태가 완벽한 수레바퀴 모양이 있는 발바닥, 넓고 원만한 발뒤꿈치, 긴 손발가락, 부드럽고 유연한 손발, 손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손발 등등이다. 여기서 삼십이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물며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덕상(德相)을 갖춘 부처님의 고귀한 몸조차 물거품이나 아지랑이로 비유하셨으니, 그 당시 제자들이 받았을 신이한 영감이나 찰나적 개오의 특별함이 어땠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가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경전인 금강경 사구게(金剛經 四句偈) 가운데 대표적 게송으로 꼽히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이다. ‘일체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다. 응당히 이와 같이 관(觀)을 할지니라.’가 이 게송의 내용인데, 몸의 감각 기관인 육근을 통해 인식되는 대상을 전도되지 않고 적확하게 보라는 가르침이다.
시구 ‘물거품과 같다고 알고’는 몸이란 것이 일어났다 곧 꺼져 사라지는 물거품처럼 물질적인 다발[色]로서 무력하고 허약하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일시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시구 ‘아지랑이와 같다고’는 몸의 특성을 아지랑이에 비유하고 있다. 아지랑이는 멀리서 보면 형태를 가지고 분명히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공허하고 비어 있고, 만질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이 몸도 매 순간 사멸하고 다시 생겨난다는 의미에서 아지랑이와 다르지 않다고 꿰뚫어보신 것이다. 실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세포들이 생멸을 거듭하고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졌으니 부처님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시는 또 우리시대 위대한 시인 조오현(법호 설악무산)의 시 ‘아지랑이’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설악무산은 자신의 ‘어리석은 인생’을 아지랑이를 소재로 한 이 시를 통해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조오현 시 ‘아지랑이’ 전문
두루 알다시피 조오현의 시는 불교의 심오한 사색과 깨달음의 세계를 평이한 시어로 쉽고 감동적으로 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또 다른 그의 대표 시 ‘아득한 성자’가 하루살이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준 시라면, 공초 문학상 수상작인 ‘아지랑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인 아지랑이를 쫓아 헤매는 부질없고 어리석은 인생을 읊은 철리시(哲理詩)라고 할 수 있다.
시구 ‘악마의 꽃들을 잘라버리고’는 고귀한 길을 걸어가는 것을 통해서 악마의 꽃들로 비유한 세 가지 존재[三有, tibhava] 즉, 감각적 쾌락의 존재[욕유, kāmabhava], 미세한 물질적 존재[色有, rūpabhava], 비물질적 존재[無色有, arūpabhava]의 윤회를 자른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관인 삼계(三界) 즉, 욕계, 색계, 무색계의 일체중생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굴레인 윤회에서 완전하게 벗어난다는 뜻이 이 시구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시구 ‘죽음 왕의 시야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는 번뇌를 완전하게 부수어버린 수행자는 윤회의 굴레에 중생들을 묶어두고 싶어 하는 악마의 손아귀는 물론 그의 시야를 넘어서므로, 위대한 불사(不死)의 경지 즉, 열반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이 시가 설해진 데는 다음과 같은 인연담이 있다.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사왓티 시에 계실 때, 명상 주제로 아지랑이를 택한 장로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한 수행승이 부처님으로부터 명상 주제를 받고 수행자의 삶을 이루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정진하였지만 거룩한 경지를 성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별도로 명상 주제를 받고자 부처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부처님을 찾아가는 도중에 그는 아지랑이를 보고서 ‘무더운 여름날 생겨나는 아지랑이는 멀리서는 실제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인식되지 않는다. 이 몸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이와 같다.’라고 아지랑이라는 명상 주제를 닦으며 와서 도중에 피곤하여 아찌라와띠(Aciravatī) 강에서 목욕을 하고 폭포수 근처 강 언덕의 그늘 아래 앉았다. 그는 거기에 앉아서 바위에 부딪치는 힘으로 생겨난 커다란 물거품들을 보면서 ‘이 거품처럼 존재도 생겨나고 부서진다.’라고 생각하여 이것을 명상 주제로 삼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향실[부처님께서 머무셨던 기원정사 안의 꾸띠]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고는 신통력으로 수행승 앞에 몸을 나투어 ‘수행승이여, 그렇다. 이 존재는 물거품이나 아지랑이와 같다고 깨닫는 님은 악마의 꽃들을 잘라버리고 죽음의 왕의 시야를 넘어서리라.’라고 설하셨다. 이 설법을 들은 수행승은 곧바로 네 가지의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이 시를 읽고 작은 감흥이라도 일어난 독자들이 계신다면, <담마파다 법구경> ‘꽃의 품’에 수록된 다른 시들도 함께 찾아 읽는 ‘수고’를 부디 사양치 마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