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를 위하여 24 

“파도에 배가 뒤집혀서 박 서방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네.”

그녀는 울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게 다 천운이네. 누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박 서방이 내 일로 이런 지경을 당했으니 뒤 책임은 내가 맡아야지 별 수 있겠나. 그러니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진정하게나. 죽은 사람을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양반집 아들은 미리 할 말을 준비라도 한 듯 잘도 읊어대고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양반집 아들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에 파아란 광채가 일었다. 그러나 오로지 그녀에게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양반집 아들은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그런 눈빛이 전보다 더 그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이 마을에 이런 보물이 있었다니, 흐흐흐!” 그는 그녀에게 몇 마디 더 위로하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가, 밤에 술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왔다. 예상한 일이었다.

“사내대장부가 체면도 생각하지 않으시고 왜 이렇게 조급히 구십니까? 이왕 꾸미신 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진행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남편의 부음을 들었는데, 그 사람의 아내 된 도리로서 어떻게 경망스런 짓을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해산일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세상천지에 의탁할 곳도 없고, 마음을 의지할 사람도 없습니다.”

술을 핑계로 은근슬쩍 그녀의 손목을 휘어잡는 양반집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차근차근 말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나 말에 슬픈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저는 서방님의 호의를 깊이 감사하고 있던 터이오매, 속심으로 저도 다 생각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오늘은 저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십시오. 오늘이나 내일 해산을 하고 나서 보름 정도 말미를 두어 조용히 서방님을 모시기로 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는 저녁, 세 번 등잔불이 깜빡일 것입니다.”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더 높였다.

“흐흐!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그려. 하여간 나도 죽은 박 서방 뒤는 끝까지 돌보아 주겠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틀림없이 내가 맡아서 기르겠네. 그럼 자네 말대로 오늘은 내가 그냥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 같으이. 흐흐!”

그는 기쁜 낯을 감추지 못하고 한참이나 더 횡설수설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갔다. 양반집 아들이 돌아간 후 그녀는 비로소 목을 놓아 울었다. 그 구슬픈 울음소리는 그녀의 외딴 초가집을 빠져나와 청리산은 물론 외설리 인근 마을까지 굽이쳤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 그 인간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았다. 자신들끼리는 오직 아름다움으로만 사는 줄 알았던 그 인간들의 불빛 뒤에 숨어 있는 검은 그림자를. 그녀는 이를 갈아붙였다. 

인간의 탈을 쓴 족속은 그 어느 누구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마을의 인간이란 인간은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그녀는 아랫마을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녀의 울부짖음을 듣고 달려온 건, 그녀의 동족 ‘어둠의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소굴을 빠져나와 그녀의 외딴집으로 모였다. 소복을 입은 그녀는 천천히 노랑바위로 올랐다. 처음 하늘에게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곳이었다. 늑대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렀다.

“하늘이여, 무정한 하늘이여! 나는 이제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을 알려드리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인으로 살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죽고자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자탄하기 위해 이곳에 섰습니다. 하늘이여, 나의 남편 박 서방은 죽었습니다. 그것도 몹쓸 인간들의 흉계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나 때문입니다. 바로 나 때문에 그는 비명에 갔습니다. 나는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의 권능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의 법칙엔 순리가 없습니다. 정도가 없습니다. 무순리와 무정도가 실상 당신의 참 법칙인 줄 몰랐습니다. 나의 뻔뻔스러움이나 무례함이 당신의 그 무책임을 당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여, 나는 당신께 한 가지 청을 올리기 위해 이곳에 섰습니다. 저를 죽이고 난 다음에 다시 동족 곁으로 돌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뱃속에 들은 아이를 늑대의 형상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모인 내 동족들 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름다운 인간의 말과 글, 그리고 따사로운 불빛, 그러나 그곳에는 질서를 가장한 온갖 무질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질서를 지키기 위해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요. 나는 더 이상 그런 무질서에 동참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인간들과의 처절한 전쟁으로 내 목숨이 끊어지면 본래의 내 모습대로 돌려주십시오. 원망스런 하늘이여, 내 새끼에게는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이 어리석은 어미의 과거를 알지 않게끔 선처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천에 가서도 당신을 원망치 않고 영영 당신과 결별할 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쳤다. 늑대들은 두려움에 울부짖었다. 그리고 벼락이 쳤다. 그 벼락을 맞고 그녀는 실신했지만, 그녀의 몸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그녀의 소원대로 늑대 새끼였다. 그녀는 그 핏덩어리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아가야, 너하고의 인연은 처음이 마지막이 되었구나. 돌아가는 길이 있다면 돌아가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다. 운이 좋아 동족의 다른 어미들 품에서 제대로 자란다고 한들 곳곳에 놓인 죽음의 함정들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만 목숨을 다하고 사는 그날까지 날이 새면 일어나 뛰어라. 달이 뜨면 목청을 놓아 울어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늑대의 일원으로. 그리고 돌아가면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목숨을 가진 죄 많은 육신의 형상을 갖지 마라. 아가야, 그렇지만 슬퍼하지 마라. 하늘과 땅 사이, 이 천지 간에 우리 같은 이별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라. 너의 쫑긋한 머리로는 하늘을 이고, 야무진 네 다리로 땅을 딛고 사는 그날까지 풀섶에 성긴 이슬의 고마움을 잊지 마라. 아가야, 다만 네 아비와 내가 너의 앙증맞은 속닥임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구나. 이제 떠나라. 영원히! 영원히!”   

주위에 몰려있던 늑대들이 그녀의 새끼를 물고 모두 돌아간 다음, 그녀는 인간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그녀가 켜두고 간 따스했던 등잔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등잔불을 꺼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눈도 닫았다. 다만 그녀의 코만이 끊임없이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온통 별빛 천지였다. 그녀의 눈도 두 개의 별이었다. 초록색의 별. 

그녀는 아랫마을의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길을 재촉했다. 그녀는 박 서방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 냄새는 청리산 기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녀의 예상대로라면 양반집 아들은 분명히 윗못에 박 서방을 밀어 넣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소복한 차림 그대로 그 윗못을 찾아가고 있었다. 낯익은 길이었다. 그녀의 늑대 시절, 신바람 나게 달렸던 바로 그 길이었다. 초가을 길 위엔 마른 잎들이 흩날렸다. 그녀는 새벽이슬을 밟으면서 박 서방의 얼굴을 생각했다. 박 서방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랫마을 사람들 중 다른 누구를 만났다면……,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그나마 박 서방을 만났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나. 처음 만났던 사람, 그리고 등잔불 아래 처음 함께 속살거릴 수 있었던 사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던 사람……. 그녀는 지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마침내 청리산 밑 윗못에 다다른 그녀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리고 돌처럼 굳어져 물속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나온 붉은 피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미동도 않던 그녀는 그대로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얼음보다 맑고 차가운 물, 그녀의 예상대로 박 서방은 그 물속에 처박혀 있었다. 새끼줄로 매어진 박 서방의 몸뚱이, 그 새끼줄에는 커다란 돌이 묶여져 있었다. 그녀는 박 서방을 안고 순식간에 물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퉁퉁 불은 박 서방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녀는 그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품속에 꼬옥 안았다. 그러나 목 놓아 울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일, 그녀는 환하게 날이 밝을 때까지 죽은 박 서방을 그렇게 안고만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