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노래하는 개구리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불쏘시개가 고맙다. 화목난로에 불을 붙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땔감이 아니라 불쏘시개다. 불쏘시개가 있어야만 장작에 불이 붙는다. 내 하는 일도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글 한 줄이 누군가의 인생에 활활 불을 지펴주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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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산중 농부들에게는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한다.
나는 입춘방을 현관문, 사랑방 기둥, 부엌문 등에 풀을 묻혀 붙였다.
入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부터 크게 길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되도록 사는 것이 전제조건일 터.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입적하신 혜암 종정 스님께서는 내게 인과는 분명한 것이라고 늘 당부하셨고, 또 그것을 믿는 사람이 진정한 불제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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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들이 봄맞이를 노래하고 있다. 겨울비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웅얼거리며 내리고 있다. 마당가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목청껏 소리치고 있다. 작년에는 매화꽃이 피고 나서 개구리가 나왔는데 올해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혹독한 한파의 후유증 탓인지 매화꽃 소식이 늦어지고 있다. 개구리들의 반칙이라고나 할까.
개구리들의 소리는 청아하기 그지없다. 간밤 내내 꿈결에서 밀물인 듯 썰물인 듯 들었지만 질리지 않는다. 겨울잠을 자면서 꾹꾹 참았다가 터뜨리는 소리인지 절절하게도 들린다. 우리들의 말이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개구리들이 알려주고 있다. 보름 정도 지나면 내 산방 둘레의 산자락에 휘파람새가 찾아와 후이후이 하고 울 것이다.
나는 산중에 살면서 계절의 변화를 넘겨지는 달력을 보고 자각하는 것이 아니라 휘파람새 같은 철새나 개구리, 매화꽃 등으로 감지하고 있다. 개구리의 첫 소리와 매화나무의 개화는 아직 이른 봄이고 휘파람새가 새벽 무렵에 나타나 후이후이 하고 내 잠을 깨워야만 나에게는 비로소 봄인 것이다. 나에게 봄다운 봄을 알리는 전령은 휘파람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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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인 15대조 할아버지(遯齋 鄭汝諧)와 매월당 김시습이 주고받은 漢詩를 의역해 보았다. 할아버지는 정암 조광조의 스승인 한훤당 김굉필, 생육신의 한 사람인 추강 남효온 등과 함께 김종직의 가르침을 받은 동문이었다. 특히 남효온은 김시습과 교유가 깊었던 바, 그 인연으로 김시습이 할아버지가 은둔한 화순까지 와서 며칠 동안 사랑방에 들어 정담을 나누었던 것 같다. 4백여 전의 일이지만 티끌 한 점 없는 것 같은 사람과 사람 간의 아름다운 교유가 부럽다. 나이는 김시습이 할아버지보다 15세 위였다고 한다. 욕망과 야만, 이해관계가 판치는 요즘 세상이 천박하기만 하다.
寄東峯僧
雲水忘情閱幾秋
客窓夜夜夢浮邱
憑君遙憶東峯月
爲報病夫萬曲愁
동봉 스님께
운수승으로 세속의 정 잊은 지 몇 해나 되었습니까
객창에서 밤마다 신선 사는 마을을 꿈꾸셨겠지요
스님 그리워서 저 멀리 동봉의 달을 생각하며
병든 이 몸의 가지가지 수심을 시에 담아 전합니다.
-東峯은 김시습의 호
附金悅卿答韻
流落關東四十秋
金剛無處不丹丘
東峯月色前朝事
衲子何曾㥘外愁
김열경은 답시를 부칩니다
고향 떠나 관동을 유랑한 지 사십 년
금강 보리심에 신선 사는 마을 아님이 없었다오
동봉에 비치는 달빛은 앞 왕조부터의 일이거니
운수납자가 어찌 딴 수심을 두려워하겠습니까.
-悅卿은 김시습의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