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嚴)2

만공과 한암

이때부터 한암은 종횡무진으로 선풍을 떨쳤다. 한암은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에 있었고, 만공은 예산 정혜사(定慧寺)에 있었다. 둘은 그야말로 선(禪)의 쌍벽이었다. 그들은 가끔 만났다. 어느 날 만공이 한암에게 법을 물었다.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 되었다. 지장암 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스님의 업이 얼마나 되는가?”

한암이 대답했다.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마땅히 서른 방망이를 맞아야 옳다.”

만공은 다부지게 되물었다. 

“맞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고?”

한암은 여유를 두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 한창 잣 서리할 때가 좋으니 속히 올라오라.”

만공은 쉬지 않고 다시 말했다. 

“암두(岩頭)의 잣 서리할 때 참예하지 못함은 원망스럽지만 덕산(德山)의 잣 서리할 시절은 원하지 않노라.”

한암이 다시 응수했다.

“암두와 덕산의 명함은 이미 알았거니와 그들의 성은 무엇인가?”

이들의 문답은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도둑이 지나간 후 3천 리가 넘었거늘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성을 물어 무엇하랴.”

만공의 물음에 한암은 또 대답했다.

“금선대 속에 있는 보화관(寶花冠)이 금옥(金玉)으로도 비하기 어렵다.”

그러자 만공은 네모난 백지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한암에게 보냈다.

한암의 명성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명승 사또오(佐藤)가 한국 불교계를 전부 돌아본 후 마지막으로 상원사에 와 한암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한암은 조용히 안경집을 들어 보였다. 그러나 사또오도 만만치 않은 인물. 그는 다시 물었다.

“스님은 일대장경과 모든 조사어록을 보아오는 동안 어느 경전과 어느 어록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까?”

한암은 대답했다. 

“적멸보궁에 참배나 갔다 오라.”

한참 있다 사또오가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젊어서 입산해 지금까지 수도해 왔으니 만년의 경계와 초년의 경계가 같습니까, 아니면 다릅니까?”

한암은 잘라 대답했다.

“모르겠노라.”

사또오가 일어나 절을 하면서 활구법문(活句法門)을 보여 주어 대단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암은 말했다.

“활구(活句)라고 말해 버렸으니 벌써 사구(死句)가 되고 말았군.”

사또오는 훗날 한암을 가리켜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둘도 없는 존재라고 평했다. 그다음부터 일본 관리들이 상원사로 한암을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모두 한암과 몇 마디를 나눈 뒤 반드시 깊은 감명을 받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