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성지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장소를 꼽는다면, 싯다르타가 대각을 이뤄 부처님이 된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가 아닐까. 지금도 붓다가야의 마하보디대탑 옆에 서 있는 보리수 주변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불자들과 수행자,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은 경건함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철제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는 보리수를 향해 절을 하거나 울타리 틈으로 붓다가 앉았던 금강보좌를 보기 위해 마치 부나방처럼 끝없이 모여든다.
붓다가 된 더없이 위대한 자리, 신성한 기운이 가득한 그곳에는 황금색 방석이 놓여 있다. 저 황금색 방석이 놓인 바로 저 자리에서 사문 싯다르타는 꾸샤(Kusha)를 깔고 18시간을 앉아 목숨을 건 용맹정진으로 대각을 성취해 마침내 붓다가 되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꾸샤(사진출처=아마존)
수자따 여인의 우유죽 공양으로 고행으로 탈진되었던 기력을 얼추 회복한 사문 싯다르타는 ‘최후의 승부’를 걸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실 그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없었다. 오직 죽음을 무릅쓰고 벼랑 끝 승부를 거는 밖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대각을 이룰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전정각산(前正覺山)에 있는 한 동굴[有影窟]에 들른 싯다르타는 이곳이 사색과 사려와 통찰을 갖추기 위한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먼동이 트자 지체 없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기슭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싯다르타는 네란자라 강가를 향해 걸어갔다. 강 건너 저편 동산에 쾌적해 보이는 장소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특히 그 동산의 한복판에는 가지를 늘어뜨린 장엄한 아자빨라(Ajapāla) 나무가 짙은 잎사귀를 드리우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저곳이 좋겠다!” 싯다르타는 그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네란자라 강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강을 건넌 싯다르타는 아자빨라 나무가 있는 동산의 숲으로 향했다. 숲속으로 가는 길에 싯다르타는 솟티야(Sotthiya)라는 이름의 소년 목동과 마주쳤다. 솟티야는 싯다르타가 고행을 끝낸 후 삡빨라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든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이미 마음속으로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존경하는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솟티야는 향긋하고 싱싱한 길상초를 한 다발 베어와 싯다르타에게 건넸다. 아자빨라 나무 아래에 앉아서 수행을 할 때 깔개로 사용해달라는 의미였다. 솟티야의 선한 마음을 읽은 싯다르타는 그를 향해 밝은 미소로 고마움을 전했다. 싯다르타는 아자빨라 나무 아래로 다가가 길상초를 깔았다. 그러고는 나무를 등진 채 동쪽을 향해 앉았다.
이렇게 아자빨라 나무와 함께 대각의 순간을 지켜본 식물, 꾸샤는 붓다가 탄생하는 순간, 붓다의 몸을 지탱해 준 성스러운 풀, 길상초(吉祥草)가 되었다. 길상초, 즉 꾸사(kusha)는 인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신성한 식물로 여겨졌다. 꾸샤는 벼과 식물로 풀의 끝이 ‘卍’자와 닮았다. 길상초가 연원이 된 卍자는 불교를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되었고, 불제자들은 불상의 가슴에 만자를 새겨 넣기도 했다. WFB(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불교기를 제정하기 전까지 卍자기는 불교기를 대신했다.
<자따까(본생경>에는 ‘길상초의 전생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전생 이야기는 붓다가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 급고독 장자(수닷따)의 친우에 대해 말한 것이다.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보살은 그 궁정(宮定)에 난 길상초(吉相草) 덤불의 초신(草神)으로 있었다. 또 그 궁정에는 마침 왕좌(王坐)와 멀지 않은 곳에 줄기가 곧고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진 행(幸)나무[행수]가 있었다. 왕의 근신(近臣)들은 항상 그것을 받들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뭇카카 나무였다. 이 나무에 큰 위력을 지닌 신왕(神王)이 있었는데, 보살은 그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어느 때 범여왕은 외기둥의 궁전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외기둥이 흔들리자 신하들이 그 사실을 왕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목수들을 불러 말하였다 “목수들이여. 내 외기둥 궁전의 기둥이 흔들린다. 다른 나무 기둥을 가지고 와서 갈아 넣어라.”
분부를 받은 목수들은 적당한 나무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적당한 나무는 다른 데에는 없고 궁정 안 뭇카카나무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궁정 안에서 나올 때 왕이 물었다.
“어디 적당한 나무가 있던가?”
“대왕님. 보기는 보았습니다마는 우리는 그것을 벨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우리는 다른 데서는 적당한 나무를 발견할 수 없어 궁정 안에 들어갔다가 거기에 있는 행수[뭇카카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벨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다. 어서 가서 그것을 베어 저 궁전을 튼튼하게 하라. 내가 다른 행수를 심으리라.”
목수들은 분부를 받고, 공물(供物)을 가지고 궁정에 들어가 행수에 공양하며 내일 베겠다고 알리고 돌아왔다. 그 나무의 여신(女伸)은 목수들의 말을 듣고 “내일이면 우리 천궁이 없어진다. 나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면 좋을까.”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으므로 아이들의 목을 안고 울었다. 그의 벗들인 여러 나무의 신들아 와서 어찌하여 우는가를 물어 그 딱한 사정을 알았지만 그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할 뾰쪽한 방법이 없어, 그 여신을 안고 함께 울기 시작했다. 그때에 보살이 그 여신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듣고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나는 이 나무가 베어지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니. 내일 목수가 왔을 때 내가 어떻게 하나 지켜보시오.”
보살은 이렇게 그 여신을 위로하였다. 이튿날 목수들이 왔을 때 보살은 카멜레온으로 몸을 변하게 하고, 목수들보다 먼저 가서 그 행수의 뿌리를 파고들어 나무를 구멍투성이로 만들어 놓고는, 그 나무 중간쯤에서 뻗은 가지의 꼭대기에 올라가 머리를 흔들며 앉아 있었다.
목수의 우두머리는 카멜레온을 보고 손으로 나무를 두드리면서 “이런 구멍투성이인 나무로는 틀렸다. 어제 우리는 이것을 전혀 모르고 부질없이 공양만 하였구나.”하며, 하늘에 높이 솟은 나무를 원망하며 되돌아갔다.
그 나무의 여신은 보살의 덕으로 천궁의 여왕이 되었다.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모든 나무의 신들이 몰려왔다. 여신은 그 천궁을 차지하게 된 일에 만족하며, 나무신들을 향해 보살의 덕을 칭송하였다.
“우리는 위력을 가졌으나 미련하게도 그런 방편을 몰랐다. 그러나 이 길상초의 신은 그 구족한 지혜로 나를 이 천궁의 주인이 되게 해 주었다. 실로 같은 이나 나은 이나 못한 이나 다 벗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벗은 그 각자의 힘에 의해 벗들에게 고통이 생겼을 때에는 그것을 구해 주어 안락하게 한다.”며 벗을 찬탄하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나와 같은 이도 낫다고 생각하며
나보다 못한 이도 낫다고 생각하라
그들은 어려울 때 큰 도움을 주리니
행수가 길상초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그러므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나와 같은 이, 나보다 나은 이만 가릴 것이 아니라
나 보다 못한 이도 벗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행수는 이 게송으로 여러 신들에게 설법하고 일생 동안 길상초 신과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죽어서는 그가 지은 업을 따라 날 곳에 났다. 붓다는 이 설법을 마치고 다시 전생과 금생을 결부시켜 말했다.
“그때의 그 여신은 지금의 저 아난다요. 그 길상초는 바로 나였다.”
-자따까[本生經] 길상초에서
사문 싯다르타가 붓다로 탄생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한 순간에, 붓다의 몸을 떠받친 꾸샤! 이 위대한 풀이 ‘길상’으로 명명되어 길이 존숭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