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같이 흐르고 싶은데

바람같이 비우고 싶은데

달처럼 둥글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은

내가 나를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 ‘풍경소리’ 전문>

시인 이철수의 시는 쉽다. 난해한 시어나 비틀고 뒤튼 형식은 그의 시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같이 바람같이, 또 달처럼 원만하게 살아가고픈 시인의 시는 자신의 심연에 비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낼 뿐이다.

시 ‘풍경소리’는 이런 시인의 마음과 자세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한 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시를 적어 내려갔을 이 순백의 시인에게도, 에고가 남아 있었나보다. 시인은 고백한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은 내가 나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한 고백이 아닌 통음의 고백을 통해 이철수 시인은 마침내 한 조각 심연 속에 남았던 삼독의 흔적조차 지워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집 『섬 하나 걸어 두자』에서 보이는 이철수 시인의 시에서는 감정의 과잉을 자제하면서 내면을 맑게 탁마하며 인간사에 존재하는 헛된 욕심을 경계하려는 의지가 묻어난다.

세상사 야속한 일

없어야 하겠지만

혹여 서러움 쌓아 두고 가더라도

뱃길 잔잔하게 마음을 열어

강물에 떠가는 흰 구름 잡지 말자

돌아보는 눈빛 다르고

가슴에 박힌 목단 같은 그리움

바람이 지우더라도 그 자리에

파도가 쉬어 갈 섬 하나 걸어두자

기약 없는 내일 기다리지 말고

어제 그랬듯이

그래야 하는 오늘에다

쉬어 갈 섬 하나 걸어 두자.

<시 ‘섬 하나 걸어 두자’ 전문>

섬을 품고 있으니, 아마도 꽤나 큰 강을 배를 타고 건넜나보다. 그 강이 실재의 강이든, 심연 속에 그려놓은 강이든, 시인은 강을 건너며 강물에 떠가는 흰 구름조차 잡지 말자고 호소한다. 가슴에 박힌 목단 같은 그리움을 바람이 지우더라도 애태우지 말고, 그 빈자리에 파도가 쉬어갈 섬 하나를 걸어두잔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시인은 이미 보살의 경계를 보았거나, 그 경계에 이른 사람일 터이다. 이 경지에 탐진치는 머물 곳이 없다.

시는 흔히 마음의 거울이라고 비유한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발표하는 것은 마치 발가벗고 세상에 알몸을 내보이는 것과 같다. 이철수 시인의 알몸을 ‘섬 하나 걸어 두자’는 잘 드러내보이고 있다. 일면식도 없지만 시를 통해 본 이철수 시인은 아마도 보살 같은 사람일 듯싶다. 세상에 파도가 쉬어갈 섬을 생각하는 이가 있던가.

문학평론가 최광호 선생의 말씀마따나 이철수 시인의 시맥은 자연친화와 무욕의 시정신에 바탕하고 있다. 인간성마저 상실되어 가고 있는 산업화된 도시에서 삶의 질곡에 대해 무욕의 자세로 세상의 번뇌마저 겸허하게 수용하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글로 형상화돼 드러난 시집 『섬 하나 걸어 두자』는 거센 비바람에 흔들려 한껏 혼탁해진 못으로 흐르는 한 줄기 샘물같은 책이다. <한강.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