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소설가)

                          집착 없는 보시의 공덕이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검푸른 하늘에 빗발이 희끗희끗했던 것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내린다고 한다. 1일 1식 하는 행운이 아침을 주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보니 빗줄기가 암막새에서 간단없이 떨어지고 있다. 소나무 솔잎과 이불재의 잔디인 질경이가 더욱 푸르다. 사람은 자연에게 상처를 주지만 자연은 사람에게 조건 없이 베풀기만 한다. 빗소리를 통해 자연의 무정설법을 듣는다. 자연의 무주상보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의 크기와 모양은 다 다르다고 한다. 똑같은 것이 단 한 개도 없다는 것이다. 빗방울은 모두 같겠지 하는 생각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이 지구상의 어떤 사람과도 똑같을 수 없듯이.

 <화엄경>에 나오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구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뜻이다. 비 한 방울이 빗발이 되고, 빗발 속에는 한 방울의 비가 스며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인 것이다. 의상대사께서 지은 <법성게> 제8구도 일즉일체 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도 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라는 비슷한 뜻이다. 

 일즉다 다즉일의 도리 속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서로 다툼이 없다. 빗소리도 인간의 다투는 소리와 달리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오랜 만이다. 나뭇잎을 흔드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맡기고 있는 아침이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전체가 하나가 되는 조화로우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세상이 되기를 발원해 본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부처님께서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들과 함께 사밧티(舍衛城)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였다. 이른 아침 걸식을 마치고 발을 씻은 뒤 좌선을 하고 있는데, 많은 대중이 부처님 곁에 모여들었다. 그때 장로 비구인 수부티(須菩提)도 자리를 같이했다. 그는 부처님께 합장하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다, 수부티여.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잘 들어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 세상의 뭇 생명들, 즉 알에서 난 것, 모태에서 난 것, 물에서 난 것, 도깨비나 신처럼 아무 근원도 없이 갑작스레 난 것, 형체 있는 것, 형체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 지각이 없는 것, 지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것과 같은 온갖 중생을 내가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도록 하리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였으나, 실제로는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수부티여, 보살에게 내가 ‘나’라는 생각(我相), 내가 ‘개개의 사람’이라는 생각(人相), 내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衆生相), 내가 ‘영원히 살아가는 영혼’이라는 생각(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은 또 어떤 대상에도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 보살은 이런 식으로 보시하되, 보시한다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보시하면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수부티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쪽과 서쪽과 북쪽과 위아래에 있는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부티여, 그와 같다. 보살이 어디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한 공덕도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보살은 마땅히 이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 『금강경金剛經』

 갈무리 생각

 작가는 독자와 공생하는 존재인데 주로 출판사에서 인세를 받아 생활한다. 물론 내 경우는 매년 한두 매체에 연재를 하면서 수입원을 삼아오기도 했다. 40대 중반부터 평생을 인세와 원고료를 받아 세끼 걱정하지 않고, 두 딸아이를 미국과 영국에 대학원 유학을 보내며 살아왔으니 나는 작가로서 행운아인 셈이다. 그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세를 받고 챙기기만 했던가? 그건 아니다. 입으로는 보시를 얘기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 입적하신 조계종 원로의원이셨던 동춘 노스님께서 이불재로 찾아와 나의 책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법보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하신 일이 있다. 그래서 나는 2009년부터 인세를 받지 않기로 하고 동춘 노스님께서 법보시 출판을 하는데 동의했다.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발간했던 출판사에는 절판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노스님께서는 사비로 30만 부 이상을 출판하시어 법보시를 하셨다. 물론 다른 분들도 법보시 출판을 했지만 부수가 1천부 내외여서 밝히는 것을 생략하기로 하겠다. 어쨌든 나는 40만 부 가까이 법보시 출판에 작가로서 동참하여 무주상보시를 한 셈이다. 그래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었으니 행운의 작가라는 생각이 거듭 든다. 

 노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난 뒤 때마침 모교인 동국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제목을 <굿모닝 관세음보살>로 바꾸어 재출간하자는 제의가 와서 허락했다. <굿모닝 관세음보살>은 중국의 희귀고서 <관세음보살본행경>을 내가 국내 최초로 소개하고 난 뒤,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등 편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