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스무 가지 어려움이란?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인생을 1년 단위로 쪼개서 사신다는 이왈종 원로화백님께서 오셨다. 이번 1년은 몇 달 남지 않았다고 하신다. 오늘을 마지막인 듯 사시는 분이 틀림없다. 18개월 전부터 고찰을 순례하시는데, 취지는 지은 죄가 많아서 부처님을 자주 뵈면 좀 덜어질까 싶어 지금까지 80여 군데를 다니셨다고 한다. 제주도 서귀포 사시는 분께서 뭍으로 나와 순례하시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
철감선사 사리탑을 보시더니 감탄하신다. 그리고 옆에 있는 탑비의 거북이 발, 즉 한 발은 땅을 딛고, 또 한 발은 쳐든 모습인데 '다리에 쥐가 났거나 아파서 그런다'고 하시어 웃음을 짓게 한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이 정중동(靜中動)을 표현한 거라고 설명하는데, 예술가와 학자의 '상상력 차이'이리라.
화백님은 이불재로 올라오시어 차를 한 잔 하신 뒤 바로 광주공항으로 떠나셨다. 화백님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손을 올리신다. 누가 ‘지옥에 갈 사람?’ 하고 묻는다면 자신이 먼저 손을 들겠다고 하신다. 나는 손을 올리지 않았는데, 좀 머쓱해지곤 했다. 모르긴 해도 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허물을 짓지 않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부처님은 삶의 덫이라고나 할까, 스무 가지 삶의 어려움을 말씀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사람에게는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다.
가난하고 궁핍해서는 보시하기가 어렵고,
돈 많고 지위가 높아 가지고는 배우기가 어려우며,
목숨을 버려 죽기를 기약하기 어렵다.
살아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의 경전을 얻어 보기 어렵다.
색심과 욕심을 참기 어렵고,
좋은 것을 보고 갖고 싶은 생각 내지 않기 어려우며,
욕을 먹고 성내지 않기 어렵다.
권세를 가지고 뽐내지 않기 어렵고,
일을 당해 무심하기 어렵다.
널리 배워 두루 연구하기 어렵고,
스스로 뽐내는 마음을 버리기 어려우며,
무식한 사람을 깔보지 않기 어렵다.
마음을 평등하게 쓰기 어렵고,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선지식(善知識)을 만나기 어렵고,
자성(自性)을 보아 도를 배우기 어려우며,
형편 따라 교화하여 사람을 제도하기 어렵고,
어떤 경우를 당해 움직이지 않기 어려우며,
방편을 잘 알기 어렵다.”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갈무리 생각
산방 연못가 불단석(佛壇石) 앞에 무리지은 하늘나리들이 당당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세상의 누구라도 보란 듯 거침없이 활짝 만개해 있다. 꽃도 캐릭터가 있는 듯하다. 녀석들은 산중암자의 청빈한 수행자처럼 고귀한 느낌을 준다.
애당초 향기가 없으니 향기를 파는 법이 없다. 연못가 소나무 둥치에서 이미 져버린 백합꽃과 존재방식이 다르다. 백합꽃은 향기로 유혹하더니 곧 누렇게 시들어버렸다. 그러나 하늘나리꽃은 향기는 없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의(威儀)가 있다. 필 때를 알고 질 때를 알기 때문일까? 생사를 모르는 우리 같은 미혹한 중생과 다르다. 부처님은 우리가 왜 미망 속에서 사는지, 스무 가지 이유를 열거하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