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칼럼18 

‘바지사장’의 어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실제 업주가 저지르는 불법을 일정한 대가를 받고 뒤집어쓰는 ‘총알받이’ 하는 데서 ‘받이’를 따와 발음대로 ‘바지사장’이 됐다는 설이다. 나머지 하나는 ‘바지저고리 입힌 허수아비’라는 표현에서 바지저고리란 말이 나왔고, 여기서 다시 ‘바지’만 따왔다는 설이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도 ‘바지저고리’가 등장하는데, 줏대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렇듯 바지사장은 회사 경영과 관련된 용어지만, 실권이 없는 수장을 뜻하는 표현으로도 의미가 확대돼, 특히 언론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숙박 앱 '여기어때' 심 아무개 대표가 음란물 유토 방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경찰은 시 대표가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웹하드 업체를 운영한 것으로 보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MBC 방송화면

“최씨는 성남의뜰 초대 대표를 맡아 2년 5개월간 등기에 올랐지만 자신은 속칭 ‘바지사장’이었다고 했다. 법무사 자격을 가진 최씨는 성균관대 법대 후배인 이 아무개 화천대유 대표 소개로 성남의뜰이 설립된 2015년 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성남의뜰 대표를 지냈다.” -조선일보 2021년 9월 보도기사

결론적으로 바지사장은 어떤 특정 조직에서 겉으로는 리더로 보이거나 직위는 제일 높지만, 실권은 없는 사람을 지칭한다. 바지사장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figurehead’ 또는 ‘rubber stamp’이다. figurehead는 원래 대항해시대 목제 범선의 앞부분에 달려있던 선수상(船首像)을 뜻하는데, 겉보기에는 선박의 맨 앞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각상에 불과함을 빗대어 실권 없는 명목상의 최고위자를 조롱하는 표현이다. rubber stamp는 고무도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실권자가 시키는 대로 도장만 찍어주는 바지사장 또는 거수기를 비꼬는 별칭이다.

바지사장이 탄생하는 배경은 대개 부도덕하다. 운 좋게 톱에 올라갔으나 실무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어 부득이 현장을 잘 아는 사람에게 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허울 좋은 간판 역할을 하는 경우, 또는 조직의 실세가 만약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기 위하여 방패 역할로 내세우는 경우 등이 바지사장의 등장 배경이다. 이런 경우 대개 문제가 불거지면 바지사장이 책임지고 처벌을 받는다. 바지사장을 시켜준다고 해서 넙죽 받아먹는 것이 바보짓에 지나지 않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바지사장 역할을 한 왕을 거론할 때면 흔히 연개소문 집권기 고구려의 왕들이나 무신정변 시기 고려의 왕들, 조선 제2대 왕 정종, 조선 말기의 철종이나 흥선 대원군 집권기 및 을사조약 이후의 고종, 순종 등이 언급된다. 전두환의 12.12쿠데타로 잠시 대통령직에 앉았던 최규하도 대표적인 바지 대통령이었다. 김영남은 2019년까지는 북한 헌법상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으나 사실상 김정일과 김정은의 바지사장이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3선 연임이 안 된다는 러시아의 헌법 조항의 허점을 이용해서 2선과 3선 사이에 내세운 바지 대통령이었다. 

이 경우와는 반대로 바지사장 신세였으나, 기회를 노리다가 실권을 빼앗고 본인이 최강자(?)가 된 경우도 상대적으로 드물기는 하지만 더러 있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은 견훤이 경애왕을 죽이고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바지왕이었지만, 견훤이 왕건과 공산전투를 치르기 위해 떠나자마자 실권은 잡았고 능동적인 외교를 펼치면서 고려와의 평화통일을 주도했다. 고려 현종은 강조에 의해 옹립되어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신세였지만, 강조가 전쟁 중에 거란군에 처형당하자 바지사장 신세를 벗어났다. 현종은 ‘바지’를 벗자마자 엄청난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강감찬을 기용해서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려의 전성기를 여는 성군으로 거듭났다.

최근 법원은 조계종 총무원이 박정규 종무원을 해고한 것은 부당하므로 복직시키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조계종은 법원의 판결에도 아직까지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조계종은 지난 1월 26일 비정상적인 종단 상황에 대해 비판하면서 종무원 노조 홍보부장으로서 언론에서 ‘바지종정, 총무원장’ 등의 발언한 것을 이유로 박정규 종무원을 해고했다. 그러나 ‘바지’라는 표현은 2019년 원행 총무원장 본인이 공식 발언하면서 종단 안팎에서 회자된 말이었다. 당시 총무원장의 발언은 자승 전 총무원장이 종단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의혹 등 비정상적인 종단 상황을 에둘러 비유한 이야기라는 해석이 분분했다. 원행 총무원장의 바지저고리 발언이 불교닷컴에 보도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키자 조계종 총무원은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서둘러 해명에 나섰지만, 그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이제 두 달 남짓 뒤인 9월이면 현 총무원장의 임기가 끝난다. 교단자정센터 등 교계 재야단체들은 원행 총무원장이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정상적인 총무원장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성명 등을 통해 촉구한 바 있다. “자승 강남원장의 야비한 ‘해종’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해서 해고까지 강행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이며, 노조활동에 대한 탄압이다. 또한 ‘바지’ 총무원장임을 스스로 또다시 고백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이의 행위는 반드시 기록되게 마련이다. 부디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불교사에서 ‘바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말기를 바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