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칼럼17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한다. 그래서 불교수행을 마음공부라고도 부른다. 선불교에서는 ‘부처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이라고 답한다. 그만큼 마음은 불교에서 핵심적인 주제라는 이야기이다.
마음을 해석하는 것은 불교에서 핵심적인 문제였다. 부처님 입멸 후 몇 세기 동안 상가가 벌인 위대한 사업 가운데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세하고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다양한 때와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설한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로 취합하는 과정은 상가가 직면한 매우 시급한 과제였다. 이러한 시도는 아비담마라고 불렸다.
기원전까지 불교에는 두 주요 아비담마 체계가 생겨났다. 북인도에서 지배적인 부파였던 설일체유부에서 생겨난 체계는 티베트와 동아시아 불교에서 지금도 학습하고 있는 <아비달마구사론>에 전해지는 버전으로 요약되었다. 또 다른 체계는 동남아시아에서 성행하는 테라와다 체계로, 이 체계는 여전히 생명력 있게 남방의 불교국가에서 교리의 분석과 명상을 선도하고 있다.
거의 2천년 동안 북방과 남방의 불교인들 사이에는 접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 두 위대한 체계들은 각자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두 지역들 간에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동아시아의 불교인들이 남전의 문헌과 수행법을 공부하고 있고, 남아시아의 불교인들도 동아시아에 전해지는 북전의 문헌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근 20여년 사이에 한국의 불교인들 사이에도 테라와다 불교가 열풍처럼 확산 중이다. 천년을 이어온 간화선 수행전통은 점차 그 자리를 위빠사나 수행에 내어주고 있다. 재가불자들의 수행에 관한한 위빠사나 수행은 이미 대세가 되었다고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영향으로 테라와다 불교의 특징인 매우 세밀하면서도 분석적인 교의가 한국불교인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경우가 마음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명료하고 간결한 설명들에 눈 밝은 불자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은 대상의 인식이고, 업을 짓는 작용이다. 찰나에 생성되고 찰나에 소멸되며 상속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은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아주 세세하게 분류, 분석한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마음은 89가지 또는 121가지 마음인 찟따(cita, 心)와 52가지 마음작용인 쩨따시까(cetasika, 心所)로 구분한다. 육근이 육경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것이 마음(찟따)이다. 이 마음을 보는 훈련을 하면 마침내 내 마음이 탐내는 성질과 어울려 탐욕의 성질이 있음을, 성내는 성질과 어울려 성냄의 성질이 있음을, 어리석은 성질과 어울려 어리석음의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산만하기도 하고, 집중하기도 하며, 옹졸했다가 대범해지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마음은 선정과 지혜 수행을 통해 마침내 해탈의 마음까지 알게 되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수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통의 원인은 번뇌이다. 번뇌를 일으키는 갈등과 마찰을 줄이려 노력하고, 도덕적이고 건전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면 어느 정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 뿌리까지 완전히 뽑은 것은 아니다. 번뇌를 완벽하게 끊어내지 않는 한 불쑥불쑥 닥쳐오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번뇌를 뿌리째 끊어내 청정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칼이 바로 반야이다. 다시는 고가 되살아날 수 없도록 만드는 것, 고가 완전하게 해결되는 것, 이것은 오직 완성된 지혜의 칼로써만 가능하다.
마음에 대해 언급하자면, 책 한 권이라도 부족할 것이지만, 비교적 길게 마음을 거론한 이유는 최근 한국불교계에 ‘마음의 방생’ 또는 ‘마음방생’이라는,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전에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불교에는 방생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방생은 갇힌 생명을 놓아주는 숭고한 선행이다. 그러므로 방생은 최고의 적선행이기도 하다. 방생은 사무량심 가운데 비, 즉 연민을 바탕으로 한다. 때때로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죽을 운명에 놓인 물고기, 새 등을 구해 강물에 풀어줄 때의 그 마음은 지극히 선할 수밖에 없다. 잡혔던 생명에게 새 생명을 구가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신성하기까지 한 일인가. 이렇듯 방생은 생명을 놓아주거나 살리는 행위를 말한다. 방생은 불살생의 대승적 버전이며, 적극적인 공덕 짓기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마음의 방생’, ‘마음방생’이라는 생소한 용어는 아마도 새롭게 만들어진 조어, 또는 합성어로 보인다. 처음에는 방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행을 베푸는 것을 편의상 마음방생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자비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살린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의 마음방생은 자비심 방생이다.
작은 규모의 단체에서 마음방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야 편의상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이해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거종단적 행사를 마음방생이라는 이름으로 행할 때에는 사정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마음방생이란 용어가 갖는 불교적 의미와 이 용어를 도입하게 된 교학적 배경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방생이 어떤 의미를 가진 용어일까? 갇힌 마음을 바깥으로 자유롭게 내보내준다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글자 그대로 죽을 위기에 있는 마음을 살린다는 뜻은 아닌 것 같고, 혹여 번뇌망상이나 탐진치와 같은 것을 내려놓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등의 갖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교계언론의 보도기사를 찾아 여러 차례 읽어봐도 그 의미가 애매모호하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언급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취지와 방법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거가 약한 단정의 남발과 논리의 비약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생이며, 세상의 평화로 나아가는 바탕이자 첫걸음.”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마음의 자유, 곧 마음의 방생이며, 마음의 방생을 바탕으로 평화순례가 지대한 원력과 실천으로 이어지고 뭇 생명과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의 시대에 맞는 신행과 수행문화를 만들어나가길….”
“차별 없는 생명 존엄의 가르침은 내 마음의 평온에서 시작된다. 시대에 맞는 신행문화와 인류평화의 공심을 걷기수행의 마음방생으로 시작하자.” -한 교계신문 기사 중에서 인용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왜 최상의 방생인지? 세상의 평화를 위한 마음의 자유는 무슨 의미인지? 그것이 왜 마음의 방생과 같은 것인지? 순례가 시대에 맞는 신행문화로 지칭되는 근거, 순례가 걷기수행으로 등치되는 논리는 무엇인지? 등등의 숱한 물음들이 일어난다.
불교 수행법 중에 걷기 수행이 있다. 좌선이 수행의 전부처럼 여겨져 온 한국불교에서 걷기 수행은 다소 생경하다. 반면 위빠사나 수행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테라와다 불교 권에서 걷기 수행의 중요성은 좌선(앉음)수행과 거의 대등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걷는다고 걷기수행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걸으면서 육근을 통해 인식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특히 발바닥에 전해지는 느낌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걷기수행의 핵심이다. 걸으면서 주변경관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거나 감탄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밝고 건전하며 자비스러운 마음을 갖고 걷는 것이야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지만 열반으로 향하는 불교의 수행과는 그 결이 다르다. 이것 역시 또 다른 감각적 쾌락에 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방생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길을 걷거나 일정 구간 순례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좋은 정신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걷는 것은, 악한 짓을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수행이 아니다. 수행과 극기는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는 매우 과학적이며, 논리적이고, 치밀하며 예리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개념이나 정의가 애매하거나 논리 없는 주장이나 주창을 하는 것은 불교적이지 않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수의 대중이 모여 거종단적 차원에서 어떤 행사나 시도를 할 때에는 보다 깊은 사전 연구와 치밀한 준비로 탄탄한 이론적 근거와 토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이든 하려면 제대로 하라. 그럴 듯한 선전과 화려한 수사로 거창하게 행사를 치른들 거기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