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조이거나 늦추지 마라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해마다 참나무 원목을 구입해 장작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부탁한 원목이 늦어져 할 수 없이 아내 도예 공방과 내 서실의 화목난로용 장작 2톤을 샀다. 기온이 영하 10도로 곤두박질치는데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산중은 작년 늦가을부터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으니 아무래도 내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방일하지 말라는 부처님 유언(遺言)은 나 같은 범부에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순간순간 유효한 듯하다.
2톤 장작을 아내 공방용과 내 서실용으로 나누어 분리해 쌓는 작업은 뜻밖에 힘들었다. 30여 분 정도의 노동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나 혼자서 하는데 휴식시간 없이 꼬박 4시간이 걸렸다. 쌀쌀한 기온인데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마을 이장을 불렀지만 그는 자신의 집에 방치된 소나무를 실어와 기계톱으로 토막 낸 뒤 장작을 만드느라고 내 일을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부처님 말씀이 절로 떠올랐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소오나 비구는 영취산에서 쉬지 않고 선정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진하는 성문(聲聞, 출가수행자) 중에 나도 포함된다. 그런데 나는 아직 번뇌를 끊어내지 못했다. 애를 써도 도를 이루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 보시를 행하면서 복을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부처님께서는 소오나의 마음을 살펴 아시고 한 비구를 시켜 불러오도록 하여 말씀하셨다. “소오나여, 너는 세속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다지?”
“네, 그랬습니다.”
“네가 거문고를 탈 때 그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떻더냐?”
“소리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었을 때는 어떻더냐?”
“그때도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거나 조이지 않고 잘 고르면 맑고 미묘한 소리가 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오나를 기특하게 여기면서 말씀하셨다.
“너의 공부도 그와 같다. 정진할 때 너무 조급히 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면 게으르게 된다. 알맞게 하여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아라.”
소오나는 이때부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 타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정진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 『잡아함雜阿含 이십억이경二十憶耳經』
갈무리 생각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을 이장은 힘든 기색이 전혀 없다. 작업이 끝난 뒤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권유하니 마을 이장은 이웃 마을 주민과 ‘술 약속’이 있다고 사양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먹으려고 둔 피로회복제인 한약 경옥고를 하나 선물했다. 그러자 그는 장모님 주어야겠다고 웃었다.
그가 떠난 뒤 아내와 함께 저수지 길을 산책하면서 마을 이장과 나의 일하는 스타일이 전혀 다름을 깨달았다. 그는 일을 즐겼고, 나는 일을 위한 일을 한 느낌이 들었다. 소오나가 수행을 위한 수행을 했듯이. 이장은 일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고, 나는 목표치를 위해서 몰입만 했던 것 같았다. 나는 일을 즐기기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만 했던 것이다.
벼락치기를 좋아하는 나의 병폐이자 악습이 분명했다.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즐기면서 도와주는 마을 이장의 행동이야말로 복 짓는 일이 아닐까 싶다. 부처님께서 소오나에게 조급함과 게으름을 버리고 정진을 즐기라고 말씀하신 것이 거문고의 아름다운 소리처럼 새삼 가슴을 적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