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것’에 집착하지 마라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손님들이 내 산방인 이불재를 왔다가 가면서 건너편 산자락 남향받이에 다듬어 놓은 집터를 보면서 한 마디씩 한다. 언제 집을 지을 거냐고 묻는다. 집터를 다듬어 놓은 지 벌써 몇 년째다. 그러면 나는 빚을 내 지을 생각은 없다고 답한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다. 작가가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세 끼 먹고 사는 것으로 자족하면 그만이지 않는가. 대표적인 비정규직인 작가의 미래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남향받이 집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 상상 속이지만 서재와 살림방을 두어 크게 지어졌던 집이 이제는 점점 줄어들어 몇 평대로 작아져 있다. 아내는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미니멀 하우스(Minimal House)라도 주문하자고 말한다. 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베스트셀러를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수행하듯 오직 쓸 뿐이다.
불가의 스승이신 법정 스님께서 나에게 무소유를 설명하실 때 “나도 없는데 하물며 내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부처님도 ‘나’와 ‘내 것’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니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나’와 ‘내 것’이라는
잘못된 소견이 일어날 수 있는 다섯 가지 경우가 있다.
그것은 물질(色)과 감각(受)과 생각(想)과 의지작용(行)과 의식(識)이다.
무지해서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은
이 다섯 가지 경우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나’이다’라고 생각하여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많이 배우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다섯 가지에 대해서 그와 같이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없어졌다고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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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실체도 없는 ‘나’에 집착하면
항상 근심과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있다면 내 것이 있을 것이고
내 것이 있다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 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세계와 내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소견이다.
이 가르침을 안 이들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들어서 물질과 분별을 싫어하고
욕망을 버리고 해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를 가리켜 장애를 벗어난 자,
장애를 부순 자, 번뇌의 기둥을 빼어버린 자,
걸림이 없는 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자,
속박을 벗어난 성자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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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너희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영원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너희 것이 아니란 것은 무엇인가.
물질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물질을 버려라.
감각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감각을 버려라.
생각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을 버려라.
의지 작용意志作用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의지 작용을 버려라.
의식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의식을 버려라.
어떤 사람이 이 숲속에 와서 풀과 나뭇가지를 날라다 불사른다고 하자.
“너희들은 이때 그는 우리 물건을 날라다 마음대로 불사른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것은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너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 『맛지마 니까야 알라갓두빠마숫따』
갈무리 생각
며칠 전에 제주도 추사 유배지, 추사가 유생들을 가르쳤던 대정향교, 추사가 한여름에 피서를 다녔던 안덕계곡 등을 다녀왔다. 정희성 농부시인 부부가 승용차로 안내해 주어 알뜰하게 답사했다. 추사기념관에서 세한도 모사품 족자를 두 개 사서 정 시인과 한 개씩 나누어가졌는데, 나는 추사의 세한도정신을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했다. 곤궁한 삶에 굴하지 않는 극복의지, 인간에 대한 그리움과 지조,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절대고독 등으로 내 나름대로 정의해 보았던 것이다. 비록 세한도 진품은 가져갈 수 없지만 세 가지 정신만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아내와 나, 정 시인 부부가 추사 유배지를 찾아간 뜻은 바로 그것이었다.
법정 스님께서 이곳을 여행 오셨다가 수선화 몇 뿌리를 얻어서 불일암 뜨락에 심으셨는데, 그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얼핏 짐작이 갔다. 스님의 법체를 다비하는 다비장을 떠나 불일암에 올라갔을 때 그 수선화가 때마침 노란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겨울 1월에 팽나무 열매는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지 팥알 껍질 같은 흔적만 있었고, 먼나무 붉은 열매가 홍보석처럼 선명했다. 멀구슬나무 노란 열매, 마치 작은 도토리 같은 열매를 개똥지바퀴 두 마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부지런히 쪼아대고 있었다. 이 또한 추사가 머물렀을 때의 풍경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었다.
산방산이 보이는 단산 산자락의 대정향교에서는 선비의 책무 같은 것을 느꼈다. 선비는 유배를 가더라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강학(講學)이 선비의 의무였던 것이다. 유교문화의 장점들 중에 하나이리라. 다산도 강진 유배지에서 18제자를 두었던 것이다. 안덕계곡에서는 아무리 신산한 삶에 처했더라도 한여름 피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조랑말 타고 먼 거리를 피서 온 추사의 알몸뚱이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추사는 여생을 어떤 집에서 보내고 싶었을까. 세한도 속에 나오는 집처럼 소박하고 단순했을 것 같다. 나 역시 한겨울에 더욱 푸르러지는 소나무 한 그루, 잣나무 세 그루가 있는 세한도의 그런 단순소박한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니 집착할 일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