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과 집착을 없애려면

                                                           정찬주(소설가)

 마중물 생각

 꼭두새벽 4시다. 화목난로에 불을 피우고 책상 앞에 앉으니 컴퓨터 자판기 위에 아내가 보낸 편지가 놓여 있다. 아마도 어젯밤에 아내가 내 서실에 들어와서 놓고 간 것이 분명하다. 아내는 해마다 세밑에 손글씨 편지를 내게 보내곤 했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두 딸에게도 손글씨 편지를 써서 우체국을 통해 우송하곤 했다. 

 새해 첫 시간을 아내의 편지를 보면서 시작하고 있다. 나 같이 새해 첫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지구별 세상에 몇이나 될까. 허물이 많은 나는 아내의 편지 내용 중에 나를 책망하거나 민원성(?) 사연이 없어서 안도하고 있다. 오래된 부부의 심리란 사랑을 느끼면서도 뭔가 강박(強迫)을 걱정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범부 중생이란 삶에 누룽지처럼 달라붙은 업장의 괴로움이 아직 그악스럽게 남아 있는 사람이리라. 부처님은 괴로움과 집착을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2천5백 년 전에 말씀하셨는데도 나로서는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 아내의 글씨는 너무 사랑스럽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새해를 맞게 되네요. 올해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코로나로 서점의 문이 닫혀 타격을 입은 책의 판매량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당신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칠십을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집필을 하며 이 어려운 시국에도 지면을 마련하는 당신의 현명함에 감탄합니다. 아마 당신의 성실함과 작품 집필 능력 때문이겠지요. 이제부터는 아마 당신의 건강이 집필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할 것 같아요. 부디 운동시간을 좀 더 늘려서 건강 챙기시길 부탁드려요.

 제가 도자기를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지원하고 응원해 준 것, 또 동화 쓰겠다고 할 때 격려해주고, 가르쳐주고, 수정해주고, 그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것, 모두 감사합니다. 당신이 옆에 있으면 편안하고, 뭔가 새로운 즐거움이 생길 것 같아 기대를 하게 됩니다.

 며칠 후면 당신과 결혼한 지 40년이 되네요. 앞으로는 더 넓은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감싸며 행복한 추억만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작품 쓰시고, 부디 당신 작품 영역이 돼 ‘세계적인 작가’가 되시기를 빕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내의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 아내는 날마다 가는 쌍봉사 극락전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25년째 ‘108참회문’으로 시작하는 새벽기도인데, 기도의 내용 중 8할은 이웃을 위한 기도라고 전해 들었다. 그러나 이웃과 남을 위한 기도야말로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나는 믿는다. 타인(他人)은 ‘또 다른 나’이니까.

 부처님 말씀과 침묵

 괴로움과 집착을 없애는 방법(道)을 

 익히려는 이는 반드시 네 가지 진리를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해 

 오랫동안 바른길에서 벗어나 생사(生死)에 얽매여 

 헤매느라고 쉴 새가 없다. 

 네 가지 진리란 무엇인가? 

 첫째,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이니 이를 고(苦)라 한다. 

 둘째, 괴로움은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이를 집(集)이라 한다. 

 셋째, 괴로움과 집착이 없어진 상태를 말하니 이를 멸(滅)이라 한다. 

 넷째, 괴로움과 집착을 없애는 방법이니 이를 도(道)라 한다.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번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구하려 하지만 얻어지지 않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오온(五蘊)으로 된 이 몸이 곧 괴로움이다. 

 오온이 괴로움인 줄 알고 애욕의 집착을 끊으면 

 생을 마친 뒤에 다시 괴로움이 없게 된다. 

 괴로움이 없게 된다는 것은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상황을 

 끝없이 반복하는 상태, 즉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장아함(長阿含) 반니원경(般泥洹經)』

 갈무리 생각

 새해가 내 앞에 명명백백하게 놓여 있다. 새벽별들이 눈을 뜬 부처님 말씀처럼 또록또록 빛나고 있다. 아내의 손글씨 편지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 올해는 스스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팔만사천의 부처님 말씀이 있어야 할 곳은 사람들의 머리나 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한다. 성인의 말씀이 관념에만 머무른다면 신산한 우리 인생살이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인의 말씀은 새우깡이 아니라 새우여야 한다. 당의정이나 각성제가 아니라 마음의 번민과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입에 ‘쓴약’이어야 한다. 

 부처님 말씀은 오직 실천하는 이의 행위 속에서만 발현되고 실재(實在)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팔만사천의 부처님 말씀이 고해(苦海)를 건너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인생응원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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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 사람을 형성하는 물질과 정신작용. 물질(色)·느낌(受)·생각(想)·의지작용(行)·의식(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