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조실 법타스님 

 은해사 가는 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군위서 영천으로 가는 국도 위는 온통 가로수 은행잎의 천지였다. 날렸다. 이리저리 흩날렸다. 노란 잎사귀들이 하얀 눈처럼 마구 춤을 추고 있었다. 한껏 가을이 깊은 것이다. 이제 정말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마련해야 할 시간, 시간이 없다. 그런데 겨울을 재촉하는 세찬 바람 속에서 저렇게 퍼붓는 봄날 같은 햇볕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소리 없는 아우성, 마지막 햇볕의 시간에 빨리 집을 마련하라는 하늘의 명령. 그러나 기실 이 땅에 사는 어느 생명이나 집이 어디 있던가? 잠깐, 그것도 아주 잠깐 찰라일월의 빛 동안 잠시 다녀갈 뿐인 것을. 그래서 한 조각 볕과, 그래서 한 줄기 바람이 귀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볕바람의 소중함을 조금 생각한다. 그리고 눈보라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아는 것처럼.

 자타공인 이 나라 최고의 통일스님

 기대가 컸다.

 그 공과야 두 번째다. 그가 지니고 있는 무서운 열정과 의지는 투철했다.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정권이야 바뀌든 말든 그는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사업?에만 전념했다. 이 땅엔 북한학을 전공한 스님도 그가 유일하다. 불제자로 그는 왜 북한학을 전공했을까? 기대 만발, 가슴이 뛰었다. 오랜만에 보는 은해사의 안부도 궁금했다. 벌써 20여 년  만의 해후. 집필실에서 겨우 한 시간 거리를 두고도 자주 찾아오지 못한 미안함. 

北摩訶(북마하) 

南雲浮(남운부)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북쪽은 금강산 마하연이 최고 수행처이고 남쪽은 운부선원이 최고라는 뜻이다. 운부암은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555 번지 팔공산에 자리 잡은 은해사의 작은 암자다. 물론 여기서 남운부라 함은 통칭 은해사를 일컫는다. 팔공산은 인근 경북 지역을 아우르는 명산이다. 왕건이 견훤 군대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울 때 여덟 명의 충신이 목숨을 대신  바쳐 살아났다 하여 그 공을 기려 팔공산이라 이름하였다. 

一道銀色世界(일도은색세계))

如海重重(여해중중)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 신라의 진표율사의 언급처럼 은해사는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처럼 물결친다. 교구 본사 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수와 불사를 거듭한 은해사는 한국을 빛낸 여러 고승을 배출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새 장을 연 화쟁국사 원효스님과 해동 화엄종의 초조인 의상스님이 있고, 고려 시대에는 현재 조계종의 종조이신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보각국사 일연스님 등이 있다. 하여 일연과 원효스님의 추모 다례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홍진국사가 머무른 뒤부터 선교양종의 총본산으로 그 격이 고양되었고 화엄학의 대강백이신 영파성규 스님이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의 본산으로서 그 명성이 높았다. 최근에도 향곡, 운봉, 성철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대중포교 사업은 물론이지만 특별히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통일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은해사만의 남다름이다. 덕목이다. 참으로 한 사찰 한 사람의 힘은 장엄하다. 누가 있어 이 외진 곳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가? 모두 돈오와 돈수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어느 누가 수행을 통일로 잡는가? 더구나 수좌의 본분과 거리가 멀다고 바라보는 눈먼 시선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에게는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울스런 일이다. 어느새 동강난 허리의 상처가 아문다고 반신불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38선 앞에서.

 북이여 오라. 

 우리가 간다. 

 이 구호를 외치며 절규하던 청춘들은 이미 이승의 늪을 건넌 이들이 많다. 그들이 왜 그 당시 그렇게 목놓아 울었던가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로 하여 우리가 얼마나 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입에 넣은 달콤한 알사탕을 굴리기만 하면 된다. 촌스럽게 아직도 통일을 이야기하는 못난이들이 있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어찌하는가? 분단으로 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알고 싶지 않다. 알량한 달러 몇 푼에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매일 세계 몇 대 강국, 경제 몇 위, 그리고 대한민국을 외친다. 그러나 한 사찰, 오늘 우리에게 가장 당연한 것,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일이라는 화두를 이끌어가는 가람, 그 은해사의 중심에 법타스님이 있다.  

(사진=황명라) 

 법타스님은 1965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추담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67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그는 1969년 월남전에 참전했다. 바로 그것이다. 그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곳에서 보았을 것이다. 전쟁의 참화, 그것이 그를 변하게 하였을 것이다. 

 물론 훗날 목도한 광주에서의 비극에서 그는 부처님 법은 결코 '홀로 법이 아니라 모두 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빠졌다. 부처님 일로 바쁜 것이 아니라, 세상 일로 바빴다. 그러나 부처님 일이 따로 어디 있는가? 부처님은 한 번도 자신의 일에 바쁘지 않았다. 부처님 법은 남의 일에 바쁜 법이다. 그것이 온당한 불법이다. 그 불법의 중심.

 역시 은해사는 은해사다. 아직까지 몇 알 모과가 달린 법당 뜨락엔 가을 햇볕이 가득. 행자스님께 법타스님의 방을 묻자 의외로 종무소 근처였다. 이상한 일, 스님 정도의 법랍이면 산중 은밀한 암자에 상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가 그리 사랑하는 운부암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니었다. 광주에서 온 거사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광주 원효사에서 오래 주지 소임을 맡은 적이 있다. 사진으로야, 간간 기사로야 만났지만 대면은 처음. 그러나 조금도 어색함은 없다.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터. 그가 이야기를 나누던 광주 거사들을 인사시켰다.

 "네 시간 걸렸습니다."

 "오래 걸려야 의미가 있지요."

 처음 만나도 우리는 환하게 웃었다. 

 그는 그야말로 인터뷰를 너무 많이 했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까닭이 있다. 그에게 물어볼 말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다 알고 있다. 필자도 그런 인터뷰는 사절. 그저 그 눈빛을 보고 싶었다. 이미 청춘이 지난 시절, 그가 그리도 염원했던 통일은 저만치 멀어졌다. 이 시점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 그의 고향이 북한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법주사 근처 청주가 고향이다. 출가 동기는 여느 스님과 사뭇 다르다. 그는 당시 이 나라에 흔히 있었던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사고무친이서도 아니었다. 그저 불교가 좋아서 불교 학생회 활동을 했고, 자연스럽게 스님이 되었다. 그저 평범한 과정이다. 그냥 좋아서. 그게 그의 인생 논지다. 그가 어째서 통일운동에 그리 목을 맸을까? 그것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 그저 좋아서. 우리에게 통일은 가장 절박한 일상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

 우리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남북 모두 가장 외로운 섬에 갇혀있다. 그것을 누구도 그리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에 겪는 고통의 거의 대부분은 분단으로 인한 참화다. 통일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분단의 책임은 오롯이 우리 책임이다. 정권을 위해서 분단을 적절하게 이용해 온 남북 모두의 원죄다. 

 통일은 밥이다.

 밥이 없으면 굶는다.

 우습고, 이상한 말. 그는 꼭 무슨 기업의 대표처럼 말한다. 가난에 찌든 시장 번영회 회장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 한 마디는 그의 이번 생 모두를 압축한다.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리 가난해 본 적이 없다. 이념, 정치, 명분, 그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밥이 없어 슬프단다. 그 밥을 북녘 동포에게 맥이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단다. 토를 달 수 없다. 그저 죽을 때까지 그 일만 하고 죽겠단다. 

 하여 그를 이 나라 최고의 진불제자라고 필자가 지칭함에 조금도 부담이 없다.

 의당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가장 먼저 해결하는 것이 책무다. 부처님이 인간해방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은, 그리고 그 진불제자들이 바로 그 책무를 목숨 바쳐 안고 간 것은 불교 본연의 가치가 고통을 고통으로 모르고 사는 대중을 향한 맹렬한 측은 때문이다. 지심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불교가 남았다. 그 까닭을 명백히 아는 그의 수행과정은 그래서 거창하지 않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다. 그것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그 한가운데서 그저 좋아서 그 일을 묵묵 수행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이면, 아니 10만 불이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잘못 짚었다. 국민소득이 100만 불이 되어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작은 반도 허리에 둘러쳐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총칼이 맞서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다른 것 다 빼놓고 감히 그를 가리켜 이 나라 제일 진불제자라고 함은 바로 그런 이유다. 까닭이다. 그는 선을, 불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회적 가치실현.

 그것이 불교다.

 흔히 팔만대장경 속의 부처님이 아주 거창한 언설을 한 것처럼 보이나, 전혀 그것이 아니다. 대중들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그 상황에 따라 다문다문 이야기를 하여 주었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쉬운 말로. 법타 스님은 부처님께서 일러준 인간해방의 기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지식이다. 이 땅을 진정 불국토로 일궈내야 한다면 그 첫 번째가 통일이다. 그것이 진부하다면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서울에서 전철로 겨우 한 시간 이내로 갈 개성을 우리는 반세기 이상을 갈 수 없었다. 물론 개성공단으로 간간 들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소통도 아니고, 해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정권의 수호를 위해 우리의 동의 한번 거치지 않고 하루아침에 폐쇄해버린 무능하고 무지했던 지난 정권, 그러나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말 정치인 답지 못한 정치인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다시 되었다. 국정도 없고, 철학도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한 탕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끝나면 그만이다. 분단을 만든 옛날의 원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나무를 심어야지요.

 북녘산은 벌거숭이에요.

 아하, 은해사 가는 길에 보았다. 

 지옥 민둥산으로 가는 길엔 남녘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녘이야 살기 위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기 나무를 벴다지만, 남녘은 완전히 다르다. 살금살금 여태 금기처럼 여겼던 산의 나무들을 마구 잘라내는 바보들이 있다. 갖가지 이유로, 온갖 법망을 피해, 더구나 그것을 웃으며 허락하는 못난 위정자가 있다. 청정산하, 기후변화 대책 선진국을 운운하며 정작 제 나라 산하에는 관심이 없다. 무능하면서 교활하기 그지없다. 일단 많은 뉴스로 국민의 눈을 즐겁게 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그토록 미워했던 정치인 한 사람, 일제 부역과 끝없는 정권욕으로 하여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언뜻 그리운 것은 산을 볼 때이다. 다른 이유도 많지만 그가 있어 우리는 산다운 산을 가질 수 있었다. 

 뭉텅뭉텅 잘려나간 산허리를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이 좁은 국토 안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 살고 있는 것일까? 못난 주인을 만나 대대손손 고생하는 것은 역시 이 나라 강산이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남겨버려진 북녘 민둥산, 도락을 위해 아니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한 줌도 되지 않는 이리로 하여 무참하게 잘려나간 남녘의 부스럼산. 할 말이 없다. 곳곳 태양광이라는 표지 아래, 새로운 조림을 한다는 명분으로 무슨 영화 제목처럼 텅 비어버린 <마운틴 홀>을 바라보는 것은 괴롭다. 슬프다.

 이제 북녘에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스님의 말은 그래서 가슴을 친다. 그는 명찰 보현사가 있는 묘향산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쓰렸을 것이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 청년 학생제전에 처음 참가한 후부터 비롯된 수없는 북한 방문 동안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어려운 동포들과 어려운 산이었단다.  

 아직도 불교는 

 남과 북에 살아 있어요. 

북녘 대표 사찰에 근무하는 스님 아닌 스님들, 그들이 모두 타의로 임명된 기관원이기는 하지만 사홍서원을 4절까지 예를 갖춰하는 것을 보고 그는 희망을 보았단다. 그들의 태도와 눈빛에서 진심을 보았단다. 엄연 그곳에 불교가 살아있었단다. 그래서 아직도 그쪽 불교도 연맹 위원장과도 소통이 된단다. 이보다 더 좋은 통일운동이 어디 있는가? 이보다 더 우월한 포교가 있을 수 있는가? 부처님 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 믿음, 그것이 진불제자다.  

 북녘 동포에겐 무연자비. 

 우리 정치의 끝은 통일.

 의당 이 땅의 주인은 우리다. 우리가 손을 놓으면 이 땅은 무주공산이 된다. 온갖 발호가 끼어든다. 누구를 원망하랴. 남북이 하나가 되지 않고는 그 발호를 막을 어떤 방법도 없다. 진정성 없는 구호를 외치지 말라. 사진을 보여주지 말라. 교언영색으로 웃으며 통일을 논하지 말라. 통일은 하천한 정치인마저도 되지 못한 일부 모리배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절박한 모든 우리 민족의 염원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 정치의 끝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은 가라. 당장 함께 모여 어느 자리, 어느 누구라도 통일을 논해야 한다. 법타스님같은 이가 몇 명만 더 있었던들..... 결국 통일은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 

 그는 늘 진묵스님과 원효스님을 이야기한다. 까닭이 있다. 이유가 있다. 진묵이 누군가? 원효가 누군가? 그들의 관심은 오직 대중들이었다. 대중이 없다면 불교가 존재해야 할 까닭이 있는가? 그들이 알든 모르든 이 나라 대중들의 고통, 그것을 해소하는 일은 단 하나 통일이다.

 이렇게 하면 사진이 이쁠까?

 저렇게 하면 사진이 이쁠까?

 노오란 국화 옆에 앉아 포즈를 잡는 그의 얼굴은 마냥 애기다. 정말 사진이 예쁘게 나와야 될 텐데.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미당을 이야기한다. 국화 옆에서 좋지. 국화 옆에서. 그가 왜 통일문제에 그리 목을 매는 연유가 거기에 있었다. 사진이 예쁘게 나와야 될 텐데. 우리가 떠난 자리에 찍힌 사진이 정말 예쁘게 나와야 한다. 환하게 웃는 그 모습 그대로. 불행한 이 나라의 통일은 그렇게 노랗고 예쁘게 다가와야 한다. 

 안개의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은 꼭 싸락눈이 내릴 것은 같은 11월의 중순. 차창 밖으로 군데군데 산녘 어디서 연기가 오른다. 스님이 건네준 책 <북한불교 백서> 표지의 묘향산 보현사에 안개가 끼었다. 그 사진 속에 빼꼼 얼굴을 내민 스님 하나, 그가 아직도 보현사에 상주하실까? 이제 우리 산하의 모든 안개는 은해사에만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