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붓다

우봉규 장편동화 ‘마리산’13

2021-11-02 (화) 14:21	우 봉규 \|

네가 보고 싶은 날3

민우는 퐁당 수로 앞에서 할머니와 헤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오고 싶었지만 불현듯 빨리 집으로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 또 그 무서운 아저씨들이 집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그전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

정말 빠르게 달려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때까지 누워 있었다. 민우는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아주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아니면 파출소에 갖다가 주고 길거리에서 주웠다고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관 아저씨들이 분명히 수상하게 여길 것이고, 그러면 아버지가 경찰서로 끌려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민우는 아버지의 가방을 놓고 고민하다가 당분간 모른 척하기로 하였다. 아버지가 진짜 밀렵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민우는 아버지를 믿고 싶었다. 아버지가 밀렵꾼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달리 한낮에 방안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아버지, 정말 선착장에서 일해요?”

민우는 방문을 열자마자 대뜸 물었다.

“뭐냐?”

누워 있던 아버지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선착장은 낮에 일 안 하고 밤에만 일해요?”

“아니 이놈이!”

아버지의 오른손이 민우의 뺨으로 날아왔다. 그렇지만 민우는 울지 않았다. 그 대신 거친 숨을 내쉬면서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이제 보니까 이놈이 아주 나쁜 놈이야!”

아버지는 다시 민우의 뺨을 칠 자세였다.

그런데도 민우는 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역시 그 말 만은 할 수가 없었다.

“너 안 되겠다. 이젠 아버지한테 대들어. 너 같은 녀석은 학교 갈 필요도 없어.”

아버지는 아주 화가 나 있었다. 그렇지만 민우가 결석한 것은 모르는 것 같았다. 민우는 얼른 가방을 들었다.

“야, 민우야!”

아버지가 큰소리로 불렀지만 민우는 재빠르게 집을 나왔다.

민우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이 힐끔거리며 민우를 쳐다보았다. 상필이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선생님은 민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수업의 첫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조용히 민우에게 다가왔다.

“민우야, 나 좀 볼까?”

선생님은 작게 말했지만 민우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뿐이었다. 민우는 또 선생님을 따라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 있었다.

“민우야, 너 왜 늦었는지 선생님에게 말해줄 수 없겠니?”

선생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서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좀 만날 수 있을까?”

아버지 얘기 나왔을 때 비로소 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집에 없어요.”

그렇게 말해 놓고 민우는 그만 얼굴을 돌렸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민우의 등을 쓸고 지나갔다. 민우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훌쩍거리자 선생님이 민우의 손을 꼭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었다.

“그걸 선생님이 몰랐구나. 민우야, 오늘 말고 말이다. 꼭 오늘이 아니라도 민우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민우가 먼저 선생님에게 말해줄 수 없을까? 전번에도 말했지만 선생님은 항상 민우 편이다.”

민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떠들썩하던 교실이 민우가 들어오자 다시 조용해졌다. 민우는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상필이도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가만히 앉아 있는 상필이를 보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상필이가 민우에게 다가왔다. 민우는 멍청하게 상필이를 쳐다봤다. 상필이가 피식 웃었다.

“민우야, 미안했다.”

민우는 할 말이 없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상필이에게도 그렇지만 반 친구들 보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상필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젠 싸우지 말자. 이따가 수업 끝나면 축구하는 게 어때?”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필이도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민우와 상필이 때문에 팽팽하던 반 분위기가 금방 따뜻해졌다. 축구는 정말 재미있었다. 민우는 상필이와 같은 편이 되어서 신나게 뛰고, 신나게 공을 찼다. 민우는 오랜만에 아버지도, 재희도 잊고 신바람 나게 놀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없을 줄 알았던 아버지가 있었다. 교실에서 봄 눈처럼 녹았던 민우의 마음이 아버지를 보자 다시 얼어붙었다. 아무리 그렇지 않으려고 마음먹어도 아버지를 보면 가슴이 떨렸다. 민우는 말없이 가방을 방에 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민우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

아버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민우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쉬었다.

“조그만 녀석이 웬 한숨?”

“아버지, 여기 다람쥐 안 왔어요?”

따뜻한 햇살을 보자 쪼르르 마당을 가르 지르던 다람쥐들 생각이 났던 것이다.

“이제 다신 안 올 거다.”

“예?”

“쓰레기봉투를 물어뜯는 걸 내가 아주 혼을 냈지.”

“왜요?”

민우는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어떻게 했냐니까요?”

“무섭게 을렀으니까 얼씬거리지 않겠지.”

민우가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민우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 어려 있었다. 아버지에게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응어리가 뭉쳐 있었다. 말 못 하는 짐승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라는......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이 놈이?”

아버지 놀란 눈으로 민우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버지는 나빠요!”

민우는 그렇게 소리를 치고는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퐁당 수로도 지나고, 선두리도 지나고, 엿보기산 아랫녘도 지났다. 아버지가 미웠다. 두 얼굴의 탈을 쓴 악마 같았다.

마리 파출소 앞에서 민우는 망설이고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파출소 현관에는 그렇게 씌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수갑을 찬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면...... 민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민우는 길바닥의 돌멩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민우는 다시 마을로 걸어오고 있었다. 봄이라지만 오후의 햇살은 한여름처럼 더웠다. 어른들은 이상기온이라고 야단이지만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나았다. 서쪽 하늘로 빨갛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