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비밀1

 봄은 남녘에서 북녘으로 올라왔다.

 들판에서 산꼭대기로 올라왔다. 

 날마다 퐁당 수로에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마리산 기슭의 땅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퐁당 수로가 엔 푸르스름한 쇠뜨기와 제비꽃이 피었다. 제비꽃은 종류가 많았다. 마리산 기슭의 화개암 양지바른 언덕 위에는 노루귀, 복수초, 설앵초가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올라왔다. 눈을 뚫고 올라오는 풀이라 하여 눈색이풀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제비꽃, 할미꽃과 노란 매미꽃들은 수북이 쌓인 가랑잎 사이로 피어났다. 

 그러나 중국에서 넘어온 누런 모래 먼지가 온 하늘을 덮어서 햇볕이 빛을 잃는 시간이 많았다. 민우의 마음처럼. 

 재희가 떠난 지도 한 달이 훨씬 지나갔다. 

 다행히 그 아저씨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지만, 아저씨들이 들이닥친 그날 집을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민우는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이들과 마음대로 어울려 놀 수도 없었다. 수업 시간에도 멍청하게 창밖을 내다보기 일쑤였다.

 혼자 밥을 해먹고, 혼자 빨래를 하고, 그리고 시계추처럼 집과 학교를 오갔다. 가끔씩 아버지 생각이 났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밤이고 낮이고 또 그 아저씨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민우의 상태를 선생님이 모를 리 없었다.    

 드디어 특별활동이 있는 수요일 둘째 시간에 민우는 선생님과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절대로 교무실로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교실에서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날 때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민우야......”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민우의 이름을 불렀다.

 민우는 그냥 가만있었다. 

 “벌써 다른 아이들은 모두 급식비를 냈는데......” 

 민우는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예?”

 민우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학년이 바뀌면 가정환경 조사서를 꼭 써가야 하는데, 민우는 그것을 자신이 썼던 것이다. 엄마 아버지가 엄연히 있는 것으로. 당연히 선생님은 민우가 엄마 아버지와 함께 사는 걸로 알고 있었다. 민우는 선생님에게 단단히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밥 먹고 왔니?”

 뜻밖이었다. 

 민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손이 민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에게 모든 걸 얘기해 줄 수 없겠니?”

 민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선생님은 민우의 볼을 어루만졌다. 선생님의 눈빛이 젖어 있었다. 민우는 그런 선생님이 부담스러웠다. 그냥 선생님이 모든 걸 모르는 척 해주기를 바랐다.

 “집에 엄마 계시니?”

 그제야 민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그제야 민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선생님이 민우를 꼭 안았다. 민우는 아이들이 볼까 봐 마음을 졸였다. 싫었다. 선생님이 자기에게 갖는 관심이 싫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선생님의 품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민우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버지도 없어?”

 “아버지는 있어요.”

 “아버지는 뭐 하시는데?”

 “모르겠어요.”

 민우는 건성으로 말했다. 

 선생님이 긴 한숨을 쉬었다.

 “급식비는 해결했다. 교장 선생님께 민우 사정을 말씀드렸거든.”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선생님은 혹시 민우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조심을 하였다. 그러나 민우는 부끄러웠다. 정말로 부끄러웠다. 민우는 꼿꼿하게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선생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면 너 혼자 학교 다녀?”

 선생님이 다시 민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민우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 내가 민우네 집에 한 번 가보면 어떨까?”

 그제야 민우는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민우의 눈에도, 선생님의 눈에도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선생님이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민우는 선생님이 야속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물어보지 않는 말을 자기에게만 하는 선생님이 싫었다. 이제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민우의 마음을 선생님은 이미 읽고 있었다.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선생님이 민우네 집으로 찾아간다. 절대로 결석을 하면 안 돼. 선생님하고 약속할 수 있어?”

 민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민우가 모든 걸 선생님에게 다 얘기해 줄 때까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마. 그 대신 선생님은 언제나 민우 편이라는 건 알고 있어야 된다. 약속할 수 있지?”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청하게 서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