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경멸하다 비구니가 된 왕비 ‘케마’⓵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6년, 고따마 부처님이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죽림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부처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귀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이 이어지자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 대한 라자가하 사람들의 찬사와 공경은 날로 더해져 하늘을 찌를 듯했다. 특히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의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신심은 더더욱 깊어졌다. 잠부디빠를 지배하는 강대국 꼬살라에서는 말라까 왕비가 왕과 친족들을 불법(佛法)으로 이끌었다면 마가다 국에서는 그 반대였다.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며 빔비사라 왕은 틈날 때마다 친족과 대신들을 거느리고 죽림정사를 찾았다. 그는 왕비와 왕자들에게도 부처님에게 귀의할 것을 늘 권했다.
빔비사라 왕에게는 세 명의 왕비가 있었다. 첫째 왕비는 마하꼬살라의 딸이자 꼬살라 국 빠세나디 왕의 누이인 위데히였다. 빔비사라 왕과 위데히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아자따삿뚜였다. 둘째 왕비는 웨살리를 중심으로 성립된 왓지 연맹의 중추 릿차위 족의 쩨따까 왕비의 딸 쩰라나였고, 셋째 왕비는 맛다 국 싸깔라 시의 공주 케마(Khemā)였다. 그 외에도 빔비사라 왕 주위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았다. 특히 빠두마와띠는 아완띠의 수도 웃제니의 기녀였는데, 절세미인이었던 그녀의 소문을 듣고 빔비사라 왕이 라자가하로 데려왔다. 그녀와 빔비사라 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바야 왕자였기 때문에 그녀는 아바야의 어머니로도 불렸다. 또 웨살리의 유명한 기녀 암바빨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위말라 꼰단냐라는 아들도 있었다.
미얀마의 한 수행처에서 걸음수행을 하고 있는 한 여성불자.(사진. 이학종)
“왕비여 웰루와나에 가 보시오”
빔비사라 왕의 계속된 권유에도 웰루와나(죽림정사)를 찾지 않은 왕비가 있었다. 황금빛 피부와 빼어난 미모를 가진 셋째 왕비 케마였다. 케마는 오랜 전생부터 청정한 삶을 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는 등 바라밀 공덕을 쌓아 좋은 곳을 윤회하다가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맛다 국 싸깔라 시의 왕가에서 태어나 ‘케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황금색 용모에 황금색 피부를 가졌는데, 성년이 되자 빔비사라 왕에게 시집 가 셋째 왕비가 되었다.
빼어난 미모에 대한 자신감으로 교만하기도 했던 케마는, 아내 야소다라를 버리고 출가했으며, 아리따운 여인을 더러운 종기나 피고름 덩어리에 비유해 설법한다는 부처님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것이 늘 주변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고, 자신에게 향하는 왕의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었기에 케마에게 인생이란 매우 즐거운 것이었다. 그런 케마였지만 어느 화려한 봄날, 웰루와나를 다녀온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고는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이것은 왕비를 부처님에게 귀의하도록 하기 위한 빔비사라 왕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부처님이 머무시는 대나무 숲
웰루와나를 보지 못한 불행한 사람은
천상의 환희 동산을 보지 못했네.
세상이 흠모하고 백성들이 사랑하는 통치자,
라자가하의 빔비사라 왕이 소중히 여기는 곳,
바로 그 웰루와나를 본 사람은
그곳에서 삭까 천왕의 환희 동산을 보았네.
많은 도리천의 천신들이 환희 동산을 떠나
잠부디빠로 내려와 웰루와나를 보고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네.
그들은 근심 걱정을 잊고
웰루와나에서 눈을 뗄 줄 모르네.
웰루와나는 왕의 복덕으로 생겨났으며
부처님의 장엄으로 치장되었으니
어느 시인이 이 한없는 공덕을 노래할 수 있을까?
어서 가보셔요 대나무 숲으로
나무도 아름다운 대왕의 동산
상큼하고 부드러운 것 좋아하는 당신
대숲 꽃동산에 지금 빨리 가보셔요.
가지가지 꽃송이에 기묘한 나무들
아름답게 수를 놓고 조화를 이룬 곳
다음에 가보리라 미루지 마셔요.
때가 지나면 다시 기회 있을까요?
사랑스런 케마 당신 혼자 남았네요.
하늘나라 동산처럼 아름다운 그곳
지금 빨리 가보셔요 대나무 숲으로
그곳에 가면 천녀처럼 즐거우리.
천상에서 꽃놀이하던 아리따운 천녀들도
향기 좇아 내려오는 인간의 동산
어서 가보셔요 그 대숲으로
기쁨에 취해 돌아올 줄 모르리.
빔비사라 왕의 의도는 적중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케마는 슬그머니 웰루와나가 궁금해졌다. 도리천을 다스리는 왕이 놀랄만한 동산이 부처님이 머물고 있는 웰루와나라니!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꾀를 낸 케마는 상가의 대중이 모두 탁발을 나가는 아침 시간에 몰래 대나무 동산을 찾아갔다. 꽃과 과일나무, 연꽃과 풀들이 조화를 이룬 웰루와나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그녀가 바람에 실린 꽃향기와 새들의 지저귐에 취해 시나브로 정사 깊숙이 들어갔을 때였다. 케마는 뜻밖의 장면에 깜짝 놀랐다. 라자가하의 거리로 걸식을 나갔으리라 여겼던 부처님이 웰루와나의 한 가운데 앉아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케마 왕비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신통력으로 천상의 요정과 같은 여인을 화작(化作)하여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자신에게 부채질을 하도록 하였다.
부처님에게 다가간 케마 왕비는 여인의 몸을 종기와 피고름 주머니로 생각한다는 그런 분의 발밑에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예배하고, 종려나무 잎을 들어 부채질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케마는 넋이 나간 채 부처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여인은 케마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부처님께 다가가 공손히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날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며 미모를 가꿔온 케마였지만, 젊고 아름다운 여인 앞에 서자 자신은 한낱 늙은 원숭이에 불과했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미모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케마였지만 젊은 여인의 눈부신 미모에 도저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놀란 만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분명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여인이 한순간에 중년의 여인으로 변하더니 이어 노년의 여인으로 차례로 변하는 것이었다. 중년의 여인의 모습일 때에는 나름대로 미녀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살결은 거칠어지거나 주름이 잡혀 있었다. 노년의 여인의 모습을 했을 때에는 허리도 굽었고 늙은 원숭이 피부처럼 볼살은 늘어졌으며, 머리카락은 돼지의 털처럼 뻣뻣했다. 이도 빠지고 성글성글한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영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를 상징이라도 하듯 종려나무 이파리가 말라비틀어져 땅으로 한잎 두잎 떨어졌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 늙음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하고 애써 아름답게 보이려 애쓰는 중년의 여인, 그 모든 노력이 통하지 않을 만큼 보기에도 안타깝게 늙어버린 여인을 한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목격하고 말문이 닫혀버린 케마를 향해 부처님께서 입을 열었다.
“왕비여, 자세히 보십시오. 케마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지혜의 눈이 없는 장님 같은 이들은 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아끼고 찬탄하지만, 자 보십시오. 이 몸은 쉽게 늙고 병들어 무너집니다. 화려한 옷과 향기로운 분으로 덮고 가리지만 아홉 개의 구멍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들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왕비여 돌아보십시오. 무너지지 말라고 아무리 애써도 그것은 무너지고 맙니다. 아름답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그것의 본성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의 육체를 사랑해 보듬지만 그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뿐입니다.”
빔비사라 대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는 빳빳이 목을 세우고 왕궁을 거닐던 도도한 여인, 케마.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씩 늘어가는 속살의 주름이 늘 안타깝고 두려웠다. 왕비는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얀마의 한 수행처에서 걸음수행을 하고 있는 한 여성불자.(사진. 이학종)
“아, 세존이시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비여, 그곳에 휴식은 없습니다. 케마여, 이곳에서 쉬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아 육체에 대한 집착과 갈애를 버릴 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케마여, 거미가 스스로 만든 그물에서 지내듯, 탐욕에 물든 자들은 스스로 만든 흐름에 떨어지고 맙니다. 소망을 여의고 일체의 괴로움을 버린 현명한 님은 이것을 끊고 나아갑니다.”
케마는 일어나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했다.
“어리석은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가엾이 여겨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연민의 눈길로 케마를 바라보던 부처님이 말했다.
“왕비여,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십시오. 케마여, 지혜를 닦으십시오. 당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보기 좋다고 여기는 것, 거기에 영원한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원래 없습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떨치고 자세히 보십시오. ‘나’와 ‘너’가 실재하는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너’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그로 인해 교만심을 일으켜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행동과 말씨와 마음가짐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예의를 갖추십시오. 공손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마음속 교만을 버리십시오. 그리하면 고요하고 편안한 열반에 곧바로 도달할 것입니다.”
케마 왕비에게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간파한 부처님은 게송을 읊었다.
욕정에 빠져 있는 존재들은
마치 거미가 자신이 지은 거미줄 안에 있듯이
자신이 일으킨 갈애(渴愛)의 흐름 안에 빠져 있다.
현명한 자는 갈애의 족쇄(足鎖)를 끊고,
모든 괴로움을 뒤로하고 결연히 떠난다.
-법구경 제347송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