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은 천 개의 연꽃잎이 열리는 것

                                                   정찬주(소설가)

사립문 대나무를 바꾸었다. 

5년에 한 번씩 치르는 작업이다. 

작업할 때마다 나는 노동의 신성함을 느낀다. 

다산 정약용이 왜 텃밭을 일구며 채소를 가꿨는지 이해가 된다. 

빼어난 글을 읽고 고상한 말을 들을 때와 

전혀 다른 땀의 가치를 절감하는 것이다. 

내 글도 궁극에는 신성한 노동의 무게와 같았으면 좋겠다.

산중농부 마을 노인이 새 대나무를 베어 와서 

나와 함께 작업하곤 했는데, 마을 노인도 어느 새 85세다. 

그러니까 마을 노인이 80세에 작업한 썩어가는 

헌 대나무를 빼내고 오늘 푸른 대나무로 짱짱하게 바꾼 것이다. 

마을 노인께 내가 다음에 오실 때는 90세입니다. 

앞으로 3번만 오시면 100세가 되시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분은 좋으신 듯 웃으신다. 

철제대문을 설치하지 않고 굳이 사립문을 고집하는 것은 

나의 산방 이불재를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이다. 

손님들은 어린 시절 보았던 문이라면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런 이유로 사립문 앞은 포토 존이 돼버렸다. 

이제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은 내 소유가 아니라 

손님들이 향수에 젖는 추억의 공동소유물이 된 듯하다.

불교로 개종한 손님이 내 산방을 찾아온 적이 있다. 

대나무 사립문을 들어선 그분의 첫 질문은 “불교를 알고 싶은데 

무슨 경전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난감해진다. 

불교뿐만 아니라 타종교도 비슷할 테지만 

종교는 지식보다는 체험으로 접근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그래도 그분은 뭘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경전이나 경전해설서 등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금언이 있다. 

가톨릭에서는 일정 기간의 학습해야 정식신자가 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삼귀오계(三歸五戒)를 다짐하는 순간 불자가 된다. 

지식보다는 마음의 발원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첫 마음이 곧 부처마음(初發心時便正覺)이란 말처럼 초발심에서 

바로 깨달음으로 수직상승하는 것이 불교 논리이기도 하다.

할 수 없이 나는 <반야심경>을 추천할 때가 많다. 

한문으로 된 <반야심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한 것을 비교하면서 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의 <반야심경> 해설서를 추천하느냐가 

정말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나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틀린 해설서나 주해서 등이 넘쳐나서가 결코 아니다. 

<반야심경>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곧 인정하겠지만 

하나같이 나름대로의 깊이와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초보자들에게 추천하기가 망설여지는 까닭은 

그 책들이 너무 심오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한 그루의 낯선 나무가 있다고 하자. 

초보자는 그 낯선 나무의 이름과 특성 정도가 궁금할 뿐인데, 

식물학자는 자신의 평생 연구 성과를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드니 

초보자에게는 소화불량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식물학자는 초보자에게 살아 있는 낯선 나무의 실체를 

추상적인 존재로 불분명하게 해체해 버린 셈이다.

<반야심경>의 해설서들도 마찬가지다. 

<반야심경>의 지혜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해설서들도 있지만, 

오히려 <반야심경>과 멀어지게 하는 해설서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해설서를 읽었는데도 모르겠습니다. 

그 <반야심경>해설서에서는 <반야심경> 요지를 못 찾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석지현 스님의 진단을 여기에 소개할 수밖에 없다. 

석지현 스님은 라즈니쉬가 강의한 <반야심경>을 번역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되고 있는 불교서적들은 

그 대부분이 추상적이며 너무 딱딱하다. 

한낱 구름 잡는 이야기의 지루한 연속이다. 

여기에 한자어의 애매모호함이 겹치게 되면 

불교에 대한 한 가닥 흥미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불교서적들은 너무 어려워 못 읽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왜,

왜 그럴까. 

영혼의 절정에서 나오는 소리가 왜 이렇게 녹슬어 버렸는가. 

그 새벽의 소리가 왜 이토록 늙어 버렸는가. 

그것은 결코 경전 자체에 문제점이 있는 게 아니다. 

대신 그 경전을 언어로 해석해 내는데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해석의 문제인 것이다. 

제 아무리 값진 보석도 보석을 다룰 줄 모르는 

돌팔이의 손에 잡히게 되면 아, 아,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하략).”

석지현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영혼의 절정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비유하고 있다.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직관적인 해석이다. 

비유로서 본질에 가 닿아 있는 정의이다. 

<반야심경>을 불교를 아는 시인들에게 시를 짓게 하면 어떨까. 

시인은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직관으로서 

마음과 마음을 닿게 하는 이심전심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차원에서 다가오는 소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음과 마음이 맞닿으면 이미 설명은 끝나버린 것이다. 

선사가 법상에서 주장자를 한번 쿵! 하고 쳤을 때 

법문은 이미 끝나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라즈니쉬는 말한다. 

‘공(空)은 피안의 향기다. 

공은 우리의 가슴이 초월을 향해 열리도록 한다. 

공은 천 개의 연꽃잎이 열리는 것이다. 

공은 인간의 운명 전체이다. 공의 향기로 가득 찰 때, 

그의 내면이 공의 방향(芳香)으로 넘칠 때, 

공이 그의 전체에 스며들 때, 

그리하여 그의 자신이 순수한 하늘(허공)일 때, 

인간은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 

그는 온갖 지식을 버리고 공(空) 속에 거주하라고 주장한다. 

타성과 편견을 벗어나는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사고의 대전환이란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 변화를 말한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