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근심과 슬픔 없는 마음을 유지하라(Asokaṃ) 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귀촌 한 사람들 대다수는 통과의례처럼 한동안 슬럼프를 겪습니다. 막 귀촌을 했을 때에야 집들이 등을 구실 삼아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오는 지인들이 있어 그럭저럭 지나갈 수 있지만, 일 년쯤 지나게 되면 차츰 사람들과의 교류가 뜸해지게 마련이고, 이와 같은 환경의 변화가 외로움, 서글픔 등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마저 뜸해지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 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으면, ‘드디어 잊혀 지는구나!’ 하는 탄식 어린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귀촌의 시작은 이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독함, 외로움, 잊혀짐, 주류로부터 벗어나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리 잡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 되는 것이죠. 조건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근심과 슬픔, 괴로움과 번민으로 삶이 점철된다면 귀촌은 실패로 돌아가기 십상입니다. 반면 새로운 환경에서 평정한 삶, 아니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귀촌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평온에서 만족을 느끼고, 이런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삶이라는 속성이 이런 평온과 행복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돌멩이가 던져진 호수처럼 파란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평탄한 길이 거칠고 굽은 길로 바뀌는가 하면, 예기치 않게 길이 끊기는 돌발사태가 닥치기도 합니다.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인생에서 파란(波瀾)과 곡절(曲折)은 늘 있는 것입니다.

파란곡절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소소하게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갖거나 후회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과 그때와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달라졌는데도 후회를 버리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후회는 오작(惡作: kukkuca)이고, 오작은 당연히 불선업(不善業)입니다. 

행위에 대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괴로움이고 후회할 일이라면, 불선업을 지었다고 알아야 합니다. 후회는 성냄[瞋心]에서 일어나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후회는 애탐을 불러와 오작으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애타는 것은 후회뿐만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 역시 애를 태우기는 마찬가지이지요. 후회와 근심으로 나날을 보낸다면 그 사람의 삶은 점차 시들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지나간 일을 슬퍼하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갈대처럼.”(S1.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인의 흐름에 든 사람은 어떤 일이 닥쳐와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팔풍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생멸의 원리를 아는 사람, 성인의 흐름에 들어 열반을 증득한 사람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성인은 세속팔풍을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으로, 극복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팔풍 가운데 이득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살펴볼까요.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어떠한 이유로 이득이 생겨나면 생겨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이득이 생겨났을 때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의 번뇌가 생겨나고 이득이 생겨났을 때 그것을 극복하면 곤혹과 고뇌의 번뇌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A8.7)

부처님의 가르침이 위대한 것은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아서입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며 생로병사 등의 팔고(八苦)를 제기는 것에 그쳤다면 염세주의자라고 비난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바로 여덟 가지의 고귀한 길, 팔정도이지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을 닦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온갖 현상에 대하여 무상, 고, 무아로 알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칭찬에 우쭐할 것이 아니라 내게 온 칭찬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명예도,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라는 긴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는 무려 다섯 단어가 합해진 말입니다. 슬픔(soka), 비탄(parideva), 고통(dukkha), 근심(domanassa), 절망(upāyāsā) 등이지요. 마치 괴로움의 5종 세트와 같습니다. 범부의 삶은 그것이 어떤 삶이든 간에 이 다섯 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로운 조건을 만들면 됩니다. 새로운 조건이란 수행입니다. 사띠(sati)하는 것이지요. 사띠는 선업의 결과를 얻습니다. 괴로움이 괴로움인 줄 알면 더 이상 괴롭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면 괴로움이라는 결과가 산출되지 않습니다. 괴로움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타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새로운 원인과 조건을 만들어야 가능합니다. 이것을 부처님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온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중생은 오취온적(五取蘊的)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오온에 집착하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조건을 새롭게 바꾸면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네 가지 고귀한 진리, 사성제입니다. 사성제의 출발점이 괴로움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순수한 우리말인 ‘슬픔’은 괴로움과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괴로움은 슬픔을 비롯하여 비통, 절망 등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정신적 고뇌입니다. 육체적 고통을 당해도 슬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성제에서는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다.”(S56.11)라고 합니다. 

세상에 슬픔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기록으로는 있었습니다. 바로 아소까 대왕입니다. 전인도를 통일하고 ‘담마에 의한 정복(Dhammavijaya)’을 천명했던 전륜성왕이지요. 아소까라는 말은 슬픔을 뜻하는 소까(soka)에 부정접두어 아(a)를 붙인 것으로 ‘슬픔 없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아소까 대왕을 무왕(無憂王)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슬픔이 없다’는 아소까 대왕도 슬픔과 근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역시 말년에는 슬픈 아소까가 되었습니다.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모든 땅을 정복하여

십억 금을 보시하고 행복한 자라도

최후에는 반 아말라까[열매]를 

자유롭게 얻을 뿐이다.

몸에 공덕이 다하면

그 슬픔을 여읜 왕도

죽음에 당면하여

마침내 슬픔에 이른 것이다.”(Vism.8.14)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아소까 대왕은 전인도를 승가에 보시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왕궁에 유폐되고 말았습니다. 게송에서처럼 “슬픔을 여읜 왕도 슬픔에 이른 것(asoko sokamāgato)”이지요. 중생은 구조적으로 괴로운 존재입니다. 태어난 모든 존재는 괴로움 그 자체입니다. 오취온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남은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절망으로 귀결됩니다. 죽음으로 귀결되는 괴로움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은 무명이고 무명은 괴로움의 근본적 원인입니다.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무명이라고 하는가?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일어나는 원인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S12.2)

위빠사나 수행처에서는 사띠를 놓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사띠 한 번 놓치는 것을 열반의 기회를 한 번 놓치는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사띠는 지혜를 발현시키는 조건에 해당합니다. 사띠는 실재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궁극적 실재는 조건에 따라 생멸하기 때문에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고, 이와 같이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이 불교적 지혜입니다. 수행을 하는 목적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수행승들이여,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게 하고,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게 하고, 바른 방도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길이 있으니, 곧 네 가지 사띠의 확립이다.”(D22.31)

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의 실현입니다. 수행은 근심과 슬픔을 떠나게 해주고, 특히 슬픔을 없애줍니다(Sorrowlessness). 수행을 하여 본성을 보게 되었을 때 무상, 고, 무아인 줄 알아서 “슬픔은 나의 것이 아니고, 슬픔은 내가 아니고, 슬픔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알기 때문에 슬픔에서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면 근심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걸음수행을 하면서 왼발, 오른발 하다 보면 근심과 슬픔이 끼어들 틈이 없어집니다. 일상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면 더 이상 근심과 걱정, 후회, 슬픔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3)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