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졸참나무숲으로 

정안 스님과 별안 노스님, 그리고 능금이가 포리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때였습니다. 마당에 노스님과 공양주 할머니가 나와 계셨습니다. 노스님은 언제 병원에 있었느냐 싶게 건강해 보였습니다. 

 “왔구나.”

“작은 스님!”

공양주 할머니는 정안 스님을 한 번에 안아버렸습니다.

“좋구나!”

별안 노스님이 아랫녘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능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이제 여기서 살아야 한다.”

별안 노스님이 능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보살님, 얘가 능금입니다.”

 공양주 할머니가 능금이를 꼭 안았습니다.

 다섯 사람은 모두 툇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그제야 정안 스님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능금이도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저기 바깥에 나가서 놀다 오너라.”

그렇지 않아도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졸참나무숲으로 갔습니다. 숲 아래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작은 나무 그늘 아래 나란히 앉았습니다.

 “여기 좋지?”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누구보다도 더 능금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고 온 친구들 때문에 그렇지?”

“그것도 그렇지만...... 또 새로운......”

“걱정하지 마. 이곳 친구들은 내가 잘 알잖아.”

그러면서 정안 스님은 문득 희진이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어떻게 변했을까?’정안 스님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학교며, 염전이며, 소금집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이사 안 가면 좋겠다.”

능금이가 물끄러미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 안 갈 거야. 오늘 밤에 노스님께 말씀드릴 거야.”

“정말?”

“정말이지 않구.”

 그제야 능금이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네, 능금이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정안 스님은 그런 능금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능금이는 항상 친구 하나 없이 산 속에서 별안 노스님과만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갈매기가 날아온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다시 포리암으로 돌아왔을 때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 그리고 공양주 할머니는 그때까지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법당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가 급하게 일어났습니다.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저녁 공양을 깜빡했네."

할머니가 공양간으로 가고 난 후에 노스님이 능금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노스님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능금이가 살 곳이 여기다."

 그러나 능금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기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이사 갈 필요 없지."

"정말요?"

 그제야 능금이가 살며시 물었습니다.

 "그럼......"

노스님은 능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별안 노스님은 물끄러미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두워진 바닷가에는 정말 몇 마리의 갈매기가 날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의 얼굴이 밝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 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렇지만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선 할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여기 대장은 할머니니까. 알았지?"

"예."

능금이가 곱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에도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노스님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습니다. 많은 잔주름과 검은 점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어쩐 일인지 늘 활달하시던 별안 노스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포리암을 몽땅 덮을 무렵, 모두들 할머니가 해 준 국수로 저녁 공양을 마쳤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총총한 밤.

 정안 스님은 문득 정선의 까치구멍집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능금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있는 곳을 떠나면 떠나온 곳이 그립고, 떠나온 곳으로 돌아오면 다시 있던 곳이 그리운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정안 스님은 노스님과 함께 머물던 여러 절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제 방을 구경하러 가야지요." 

정안 스님과 능금이를 데리고 할머니가 앞장을 섰습니다. 대웅전 뒷마당의 작은방이었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이백 년도 훨씬 넘는 늙은 회화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는 방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방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우와!"

능금이의 입이 벌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네모 반듯한 방안엔 아담한 책상과 걸상, 그리고 책꽂이에 빼곡히 꽂힌 동화책들이 능금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벽의 벽지도 흐린 개나리색으로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할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능금이의 방이 확실했습니다.

 "능금이는 좋겠다."

 정안 스님이 싱긋 능금이를 놀렸습니다. 정안 스님도 그런 혼자만의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뒤뜰 화단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노스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공주님이 쓸 방이라며."

 능금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런데 작은 스님은 계속 노스님과 함께 방을 써야 한대요."

정안 스님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섭섭했습니다. 그리고 쓸쓸했습니다. 노스님이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능금이가 살며시 정안 스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잠만 노스님과 함께 자고 매일 이 방에서 나하고 놀면 되잖아."

정안 스님도 할 수 없이 웃었습니다.

"그럼, 작은 스님과 하고 능금 공주님 여기서 놀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자 능금이는 재빠르게 책상에 앉았습니다.

 "멋지다."

정안 스님이 손뼉을 쳤습니다.  

“나 이렇게 좋은 방은 처음이다.”

능금이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래, 내가 봐도 그렇다.”

정안 스님도 활짝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방 가운데에 마주 앉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정말 기뻤습니다. 이렇게 능금이와 둘이만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이제 정말 이사 안 가도 되겠다.”

능금이의 눈에 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럼. 다시는 아무 데도 안 갈 거다.” 

 정안 스님이 능금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정안아, 고마워.”

“학교에서는 정안이라고 하면 안 돼. 꼭 명구라고 불러야 돼. 김명구.”

 “알았어.”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포리 초등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짝꿍이었던 희진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바깥은 아주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사방이 너무 조용했습니다.

 “우리 밖으로 나갈까?”

능금이가 일어났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절 마당으로 나왔을 때...... 아, 하늘에는 한여름 저녁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박혀 있었습니다. 하늘은 초록의 별들로 꽃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 저 별들 좀 봐.”

능금이가 손으로 북두칠성을 가리켰습니다.

 “저게 무슨 별 인지 알아?”

정안 스님이 빙긋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바보, 별에 대해서는 내가 너보다 몇 배 더 잘 알아. 우리 노스님 법명이 왜 별안 노스님인 줄 알아. 별 속에 살고 싶다고 그렇게 법명을 정했대.”

 “정말?”

“우리 노스님은 모르는 게 없어. 너희 노스님과 달라.”

“뭐야?”

정안 스님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우리 노스님도 모르는 게 없어.”

“호호, 너희 노스님 싫어한다고 하더니...... 미안, 미안.”

“우리 노스님은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게 하나도 없어.”

정안 스님은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그건 자신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능금이가 또 웃었습니다. 멀리 소금집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소금은 안 만든다고 했잖아?”

“그래도 저 안에 사람이 살아.”

“거지들?”

“응.”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바다 쪽을 바라보며 절 마당 탑 앞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짭짤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볼 위를 스쳐갔습니다.

 “내일부터 학교 갈 수 있지?”

“지금은 방학이잖아.”

“내 정신 좀 봐. 우린 방학숙제 안 해 가도 되겠다. 호호.”

 

밤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공양주 할머니 방에도 불이 꺼지고, 노스님들 방에도 불이 꺼졌습니다. 그런데도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밤하늘에는 별이 몇 개가 있을까?”

“저 별들은 어디서 솟아나서 어디로 질까?”

“저 별들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러나 정안 스님이나 능금이 누구도 그것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정안 스님도 능금이도 많은 별들 속에서 엄마, 아버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정안 스님은 은학리에 있는 늙은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