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열반을 실현하라(The realisation of Nibbāna)   

봄이 깊어지면서 복숭아꽃도 거의 다 졌습니다. 꽃이 사라진 매화나무엔 새순이 대신 자리를 채웠습니다. 매화꽃과 복숭아꽃에서 노닐던 꿀벌들은 도처에 피어난 민들레꽃과 찔레꽃,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리저리 오가는 꿀벌을 바라볼 때면 제자들에게 ‘꿀벌처럼 살라’고 가르치셨던 부처님이 생각납니다. 꿀벌과 꽃은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윈-윈 (win-win) 관계라고 합니다. 꽃씨를 만들기 위해서는 꽃가루가 옮겨져야 하는데, 꿀벌이 꽃가루받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꽃들은 주로 곤충들에게 꽃가루받이를 맡깁니다. 꿀벌이 꽃가루 옮기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 그 보답으로 꽃으로부터 맛나고 영양가 풍부한 꿀과 꽃가루를 제공받습니다. 꿀벌은 제 먹이뿐 아니라 애벌레와 여왕벌을 위해 꿀과 꽃가루를 가느다란 뒷다리에 매달고 집으로 나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꿀벌과 꽃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출가수행자들에게 “꿀벌처럼 살라”고 가르치신 것이지요. 비구는 꿀벌처럼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것을 취하고 많은 것을 되돌려주는 최상의 이타주의자여야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꽃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꿀을 취하는 벌처럼, 

성자는 마을에서 그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 <법구경>

세속의 즐거움을 포기한 진정한 비구라면 마땅히 비구 생활의 범위 내에서 사심 없이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으려는 숭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청빈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출가수행자가 세속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그 기준을 꽃과 꿀벌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 것이지요. 사람이 꿀벌처럼 이타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도 욕망을 완전하게 소멸시켰을 때, 즉 완전한 열반을 성취했을 때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다 알다시피 열반(Nibbana)은 불교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렇기에 열반이라는 두 글자를 대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언제나 나는 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면 별 진전이 없는 것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열반이 불교의 최종 지향점인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불자들이 열반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다고 해도 번뇌가 소멸된 경지, 정도로 단순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완전한 열반, 즉 아라한의 열반은 ‘갈애의 완전한 소멸을 통한 완전한 해탈’이라는, 즉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라는 것조차 선불교의 ‘깨달음 지상주의’에 밀려 희미해진 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이 모든 수행자가 성취해야 할 최종 목적지임을 <쌍윳따니까야> ‘마라의 경(Māra-sutta)’에서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하여 바르게 봅니까?”

“라다여, 염오하기 위하여 바르게 봅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하여 염오합니까?”

“라다여, 탐욕의 빛바램[離欲]을 위하여 염오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하여 탐욕의 빛바램을 합니까?”

“라다여, 해탈을 위함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하여 해탈합니까?”

“라다여, 열반에 들기 위함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하여 열반에 듭니까?”

“라다여,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버렸습니다. 그대는 질문의 한계를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라다여,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열반으로 귀결되고, 열반을 궁극으로 하고, 열반으로 완결되기 때문입니다.” - <쌍윳따니까야> 제23장 라다 상윳따(Rādha-saṁyutta)

행복해지는 38가지 지침을 담은 <망갈라숫따>에서 34번째 지침인 ‘열반의 성취’는 사실상 목표지점에 해당합니다. 이제까지 살펴온 33가지의 행복 지침들은 사실 ‘열반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열반은 오염된 마음을 일으키는 삼독심(三毒心), 즉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된 경지입니다. 소멸은 산스끄리뜨 니로다(nirodha)를 번역한 말입니다. 소멸의 경지가 열반이고, 따라서 열반은 탐·진·치가 소멸한 경지를 말합니다. 탐·진·치의 완전한 소멸은 일체 괴로움의 소멸로 이어지기에 완전한 열반은 생사윤회의 멈춤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불교의 목적은 완전한 열반을 성취하여 생사윤회로부터 완전하게 해탈하는 것입니다. 반야를 얻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도(道)와 과(果)의 대상이 열반입니다. 그러므로 열반에는 수다원의 열반, 사다함의 열반, 아나함의 열반, 아라한의 열반이 있습니다. 번뇌의 소멸 정도에 따라 그만큼 윤회에서 멀어지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성인의 흐름에 들어 얻어지는 도과(道果)의 대상이 열반이고, 궁극의 경지인 아라한 도와 과의 대상이 완전한 열반이며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은 어리석어서 자신을 애착하고 세상을 탐착하며 번뇌에 휩쓸려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을 행복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 곧 그것들을 모두 놓아버린 해탈의 즐거움을 외려 두려워합니다. 대상을 지향하고 욕망 충족의 삶을 추구하다 보니 대다수의 중생들은 열반의 증득과 해탈의 실현은커녕, 열반을 자신의 삶의 허무와 끝장으로 생각합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버리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아무리 배우고 쓰고 외워도 실재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놓지 못하는 것이지요.  

<맛지마니까야> ‘갈애 멸진의 긴 경(Mahā taṇhāsaṅkhaya Sutta)’에서 부처님은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나쁜 견해[惡見]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설법을 하십니다. 사띠 비구는 부처님께서 <자따까(Jātaka)>를 설하실 때, 여러 전생에서 보살행을 하실 때에 여러 존재들로 태어나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이 물질과 느낌과 지각과 심리현상들은 거기서 소멸하지만 식(識)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치달리고 윤회한다.’라는 상견(常見)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상견에 빠질 것을 우려해 열반, 즉 ‘완전한 소멸’에 대해 상세하게 설법하신 것입니다.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 혐오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몸에 대한 사띠(Sati, 마음챙김 또는 알아차림)를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출세간의 마음)을 갖는다.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을 버려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든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는다. 그가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을 때 느낌들을 즐거워함[愛]이 소멸된다. 그 즐거워함이 소멸하므로 취착[取]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므로 존재하고자 함[有]이 소멸한다. 존재하고자 함이 소멸하므로 태어남[生]이 소멸한다.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참조

이 경은 이어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노로 법을 인식하고 사랑스러운 법에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법에 혐오를 일으키지 않는 혜해탈의 경지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내가 간략하게 설한 이 갈애의 멸진을 통한 해탈을 잘 호지하라. 어부의 아들 비구 사띠는 갈애의 큰 그물과 갈애의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라는 말로 설법을 마무리하십니다. 물론 상세한 설법을 들은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지요. 

불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 중의 하나가 중생(衆生)입니다. 중생이란, 한 존재에게 수많은 시간 동안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갖가지 업력이 중첩되어 태어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에는 윤회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생명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끝없는 고통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이고 해탈이며, 궁극적인 행복입니다. 열반으로 이끄는 이 길이 바로 부처님께서 발견하고 걸어갔던 모든 부처님의 옛길인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