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충만의 마음

                                         정찬주(소설가)

이불재 아래에 있는 쌍봉사에서 템플스테이하고 있는 

시중(時中) 정현인 선생과 함께 산책했다. 시중이 말했다.

“형님, 진공묘유에서 묘유란 관세음보살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중, 묘관음(妙觀音)이란 말이 있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불자인 정현인 선생은 진도 부군수를 역임하고 정년퇴임한 분이다. 

묘유(妙有)에서 정현인 선생은 유(有)를 관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눈 속의 눈’으로 보았다고나 할까. 

그런 논리가 허용된다면 

유(有)는 지장보살도 되고, 비로자나불도 되고, 

아미타불도 되지 않을까 싶은 영감이 들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산책하는 동안 침묵하는 즐거움을 깨뜨리지 않고 싶어서였다.

분명한 것은 정현인 선생이 관세음보살이란 

화두를 들고 사유하고 있구나 하는 점이었다. 

다만 그는 의도적으로 관세음보살을 외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러기보다는 저절로 관세음보살이 그에게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의 취향이거나 어떤 인연일 수도 있었다. 

불자들이 절에 들어 먼저 들어가는 전각이 각기 다르듯 말이다. 

대웅전으로 가는 있고, 관음전으로 가는 이도 있고, 

극락전으로 가는 있고, 지장전으로 가는 있고, 

나한전으로 가는 이도 있지 않은가. 

법정 스님은 진공묘유를 ‘텅 빈 충만’으로 풀이하셨다. 

텅 비어 있는데 마음에는 무언가 충만해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데, 

그럴듯하게 설명하지만 ‘억지춘향’이 아닌가 싶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과학이고 종교는 종교, 번지수가 다른 것이다.

물론, 묘유가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하느님일 수도 있을 터이다. 

또한 토속신앙에서는 산천에 깃든 신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진공즉묘유(眞空卽妙有), 묘유즉진공(妙有卽眞空)이다.

위의 글에 최진석 철학자가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작가님 덕분으로 늦은 오후에 묘유즉진공(妙有卽眞空)을 만납니다.

갑자기 혼도 그러겠구나 싶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혼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혼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런 것들을 통솔하는 큰 힘을 내죠. 마치 어머니 같습니다.’

이번에는 위의 글을 페북에 올리자, 이병욱 선생이 긴 댓글을 달았다. 

공감하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과학으로 불교를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으로 공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학과 불교는 엄연히 다른 영역입니다. 

자연과학은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특히 미시 물리학은 물질을 쪼개고 쪼개서 궁극을 보고자 합니다. 

그래 보았자 물질을 탐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자연과학은 물질을 탐구합니다. 

물질에서 벗어난 자연과학은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과학은 유물론이 됩니다.

유물론 하면 부처님 당시 육사외도 스승 중의 하나인 

아지따 께싸깜발린이 생각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유물론으로 환원했습니다. 

정신도 물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무너져서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멸론이고 허무주의입니다.

물질을 탐구하는 과학은 유물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음을 탐구하는 불교와 영역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불교인들은 과학으로 불교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두 분의 글을 보니 시인과 불교학자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시인도, 불교학자도 아닌 그냥 소설가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