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나무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집에 왔을 때,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맥이 탁 풀렸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산에 가볼까?”
“......?”
“우리 스님이 자주 가시는 토굴이 있거든.”
토굴은 스님들이 절 이외에 산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공부하는 곳입니다.
“어디에.”
“산 꼭대기 조금 못 가서.”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곧바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희끗희끗 녹지 않은 눈밭을 헤치고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부지런히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림 이승민
“봐. 저기 두 분 발자국이 있잖아.”
정말로 질척거리는 흙길 위에 두 노스님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뭐해?”
“그냥 앉아 계셔.”
“그냥?”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여기 노루 발자국하고, 멧돼지 발자국도 있잖아. 저건 고라니 발자국이고.”
능금이는 어지럽게 나 있는 발자국을 보고 하나하나 정안 스님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 아래 사람들 말로는 여기에는 호랑이도 산대.”
“거짓말.”
“아니야. 나도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는 걸.”
“피이, 우리나라에 호랑이는 없대. 백두산에는 몰라도.”
산으로 올라갈수록 산은 산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을은 성냥갑처럼 점점 작아지고, 아득히 보이는 물길은 모두 실개천으로 보였습니다. 고개 너머 또 고개, 마을 너머 또 마을. 산은 우뚝 솟았다가 잦아들었다가 다시 솟아 있었습니다. 어느 한 군데 빈 곳이 없었습니다. 보이는 곳마다 무언가로 꽉 차 있었습니다. 멀리 학교도 보이고, 버스 터미널도 보이고, 아우라지강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개미들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안 스님은 피식 웃었습니다.“
“왜 웃어?”
“그냥.”
그러자 능금이도 웃었습니다. 옛날, 불암사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저 하루라도 빨리 산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산이 좋아졌습니다. 정안 스님은 참나무 숲 옆 양지바른 곳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런 데서 학교도 안 다니고 너하고 죽을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정안 스님의 느닷없는 말에 능금이의 볼이 빨개졌습니다.
“난 산이 싫어.”
“왜?”
“몰라.”
능금이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정안 스님은 보았습니다.
“다시 포리로 갈 거야?”
“난 그런 거 몰라.”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능금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야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살고 싶지만 포리암은 노스님께서 가장 아끼고 머물고 싶어 하는 절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이 졸참나무숲이 있는 포리암을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안 스님도 언뜻언뜻 포리암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꿈을 꾸면 꼭 포리암 꿈만 꾸었던 것입니다. 지금쯤 포리암 졸참나무숲엔 한창 봄이 오고 있을 터였습니다. 진흙 바닷가에는 안개가 끼고, 한껏 펼쳐진 갯벌 위엔 몇 마리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고 있을 터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불현듯 포리암이 가고 싶었습니다.
희진이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제 얼른 가자.”
정안 스님이 포리암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능금이가 길을 재촉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죄지은 듯 얼굴을 붉히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한가로운 바람, 따스한 햇빛이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등 뒤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라가도 올라가도 두 노스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 녹은 산 뿐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슬그머니 화가 났습니다.
“아직 멀었어?”
능금이가 싱긋 웃었습니다.
“아직도 십 리는 더 가야 할 걸.”
“뭐야?”
정안 스님은 또 발끝에 채이는 돌멩이를 힘껏 찼습니다. 정안 스님에게 그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능금이는 가만히 정안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왜 그래?”
정안 스님이 오히려 능금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순한 줄 알았는데......”
능금이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곰곰 생각을 하였습니다. 능금이는 왜 내가 돌멩이를 차는 것 때문에 놀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돌멩이 차는 게 나빠?”
정안 스님이 다시 능금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노스님은 산에 올라갈 때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아. 이제 갓 태어난 새 새끼나 새싹들이 놀랜다고... 그런데 그렇게 세게 돌멩이를 차면, 사람인 나도 놀랬는데...... 아마 우리 노스님이 보셨으면 엄청 혼났을 거다.”
정안 스님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발로 땅바닥을 긁고, 걸리는 돌은 차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새싹들이 놀랄까 봐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은 별안 노스님, 정안 스님은 별안 노스님이 왜 이런 깊은 산중에 살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물도 파지 않고 계곡의 물을 길어다 먹는 까닭을 알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갑자기 힘이 솟아났습니다.
“능금아,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이지?”
“그럼.”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능금이가 말한 까치고개를 지나자 어디선가 낮은 독경소리가 들렸습니다. 틀림없는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이었습니다. 능금이가 정안 스님을 보고 싱긋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능금이를 보고 싱긋 웃었습니다.
“여기서는 소리를 질러도 되겠지?”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노스님!”
“노스님!”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목청껏 노스님들을 불렀습니다. 가파른 까치 고개 위에 조그만 오두막이 있었습니다. 멍석을 깔아놓은 마당에서 노스님들은 번갈아 가며 금강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몇 번이나 읽은 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그 내용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읽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구우, 우리 강아지들이 여기까지 왔나?”
별안 노스님이 양쪽 팔을 벌렸습니다.
그러자 능금이는 대뜸 그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멀뚱멀뚱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너도 이리 온.”
별안 노스님은 정안 스님도 한 아름 안아주었습니다.
“사람, 어린애같이... 허허허!”
노스님은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래, 학교생활은 재미있었나?”
농담을 잘하시는 별안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양 볼을 꼬집으며 물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녀석은 이렇게 숫기가 없어서 뭣에 쓰누.”
별안 노스님이 웃으면서 혀를 차자 노스님이 대뜸 받았습니다.
“밥하고 빨래는 잘하거든.”
정안 스님은 능금이에게 창피했습니다. 밥하고 빨래는 여자들이 하는 일인데...... 정안 스님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습니다.
“얘들아, 늙은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르지?”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동시에 별안 노스님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별안 노스님의 얼굴도 온통 주름살 투성이였습니다. 가느다란 주름살 옆엔 커다란 검버섯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안 스님과 능금이를 보고 웃는 모습은 꼭 어린 아기 같았습니다.
“애들이 뭘 안다구?”
노스님이 별안 노스님의 말을 막았습니다.
“얘들이 어린애같이 보여도 생각은 어른이야. 자네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
“왜 여기 오셨어요?”
능금이가 물었습니다.
두 노스님이 마주 보았습니다. 노스님들의 눈동자엔 구름이 떠가고, 주름살로 패인 얼굴엔 엷은 웃음이 맴돌았습니다. 아마도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스스로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 대견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능금이 혼자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역시 둘이니까 달라.”
노스님이 싱긋 웃자 별안 노스님이 천천히 말을 하였습니다.
“여기 지금 새싹이 돋는 나무들은 너희들과 똑같다. 우리말을 알아듣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 그런데 우리 집이 있는 저 밑에까지 우는소리가 들리는 거야.”
“예?”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동시에 외쳤습니다.
나무가 울고 웃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별안 노스님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었습니다.
“우리만이 말을 하고, 우리만이 이곳에 살고, 우리만이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인 우리 말고도 우리 옆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른단다. 그것은 이 땅뿐만 아니다. 저 하늘 또한 마찬가지야. 멀고 먼 별들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지. 그런데 우리 사람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어. 오직 우리만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너희들은 지금 이 시간부터 사람만이 우리라는 생각을 버려라. 지금 우리 옆에서 지저귀고 있는 새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과 심지어 죽은 듯 박혀있는 저 바위와 구름까지도 모두 우리라는 생각을 해야지.”
그러나 그것은 정안 스님과 능금이에게 너무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별안 노스님의 말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림 이승민
이번에는 노스님이 말을 받았습니다.
“저쪽의 나무들을 보아라. 사람들이 나무줄기 가운데에 호스를 박았지.”
아! 정말 수많은 나무들의 가운데에 호스가 박혀있고, 그 끝에는 대롱대롱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게 뭐에요?”
“강원도 고로쇠나무가 제일 좋다는 소문이 돌았지. 그래서 이 깊은 산간의 나무들이 피를 흘리고 있지. 밤낮으로.”
별안 노스님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 나무가 바로 고로쇠나무란다. 사람들이 저 나무의 물을 먹기 위해 구멍을 뚫은 거지.”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아무리 나무라고 하지만 저렇게 몸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면...... 능금이가 재빠르게 호스가 달린 커다란 나무로 뛰어갔습니다.
“저걸 뽑아내려고 오셨어요?”
“그렇지. 너희가 오자마자 나무들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니?”
그제야 정안 스님은 지나온 산길에서 만났던 나무들에 구멍을 뚫린 이유를 알았습니다. 두 노스님들이 고로쇠나무에 달린 호스들을 몽땅 뽑아준 것입니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달래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들이 매일 예불을 드리고, 목탁을 두드리는 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씻어내기 위해서야. 너희 둘 내 말 알겠지?"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느새 능금이는 몇 개의 호스를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빠른 손놀림으로 나무에 박힌 호스들을 뽑았습니다. 두 노스님은 정안 스님과 능금이 뒤에서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난 노오란 풀꽃들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봄이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