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인내할 줄 알라(Khanti)  

살다 보면 참고 견뎌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갈 리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부릅니다. 사바의 원어가 사하(sah)인데, 여기에는 참다, 견디다, 버티어 나가다 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사바는 인토(忍土) 또는 감인토(堪忍土)로 번역됩니다. 꾹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세계라는 뜻이지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욕(忍辱)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인욕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인욕은 동·서양의 격언이나 속담에서도 한결같이 현명한 삶의 방식으로서 강조됩니다. 공자는 ‘이것만큼은 도무지 참을 수 없다’고 발끈하는 사람에게 “인내는 참지 못할 것을 참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인내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좌절하는 사람에게는 “인내는 모든 문을 연다.”거나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서양 격언은 매우 유용합니다.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에서는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우리 속담이 적절한 처방이 될 것입니다.

인욕의 참 의미를 잘 알려주는 라훌라와 그의 스승이었던 사리뿟따 존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리뿟따 존자와 라훌라가 함께 탁발을 나섰다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갑자기 한 사내가 나타나 길을 막아서더니 사리뿟따 존자의 발우에 모래를 끼얹으며 조롱합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당신의 그 표정과 몸짓이 아니꼬워 견딜 수 없단 말이야. 자, 이래도 아무렇지 않아?” 이어 사내는 주먹으로 라훌라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얼마나 세게 얻어맞았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얼굴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렸지만 사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대체 스승님과 내가 저 사내에게 무슨 못된 짓이라도 했단 말인가? 사리뿟따 존자님이야 워낙 수행이 깊은 분이시니 참아 넘긴다고 해도 난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다.’ 라훌라는 솟구치는 분노로 치를 떨었습니다. 복수심이 불같이 일어났지요. 그때였습니다. “라훌라,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고 있구나.” 은은한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사리뿟따 존자였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라훌라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인욕이네. 참는 일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신을 분노로 불태워서는 안 되네. 어서 얼굴을 씻고 오게.” 

라훌라는 강으로 내려갔습니다. 허리를 굽히자 시뻘건 피로 얼룩진 얼굴이 강물에 비쳤습니다. 핏물 사이로 피보다 더 붉게 상기된 분노에 찬 얼굴이 보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참느라 두 눈이 충혈되었습니다. ‘그 녀석,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두지 않겠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내가 못나서 참는 줄 알아?’ 수도 없이 찬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라훌라는 속으로 외쳐댔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외치다 보니 묘하게도 사내의 폭력 자체보다는 ‘나’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자신이 더 얽매여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끔하게 씻은 얼굴이 강물에 비쳐졌습니다. 분노도 차츰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누굴까? 어떤 나는 신자들의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하고, 어떤 나는 봉변을 당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 나라는 것, 대체 무엇을 가지고 나, 나 하면서 사람들의 존경에 흡족해하고, 비난에 분노하는 것일까? 강물에 비친 얼굴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나브로 라훌라의 마음속에서 사내를 향한 분노는 사라졌습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강 언덕을 올라오는 라훌라에게 사리뿟따 존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여야 하네. 아까 그 사내는 고요하게 걸어오는 우리를    보고 뭔가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네. 빈정거리고 모욕을 줌으로써 그 사내도 자신의 ‘나’를 내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세상에는 너나없이 그런 마음을 지닌 생명체들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네. 봉변을 당한 자신이 가엾고,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야 하는 자신이 안타깝듯이 아무 죄 없는 타인에게 해를 끼쳐야 속이 풀리는 사내에게도 가여운 마음을 품어주게. 그래서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성냄을 죽이면 평온하고, 성냄을 죽이면 후회가 없다. 성냄은 독의 근본이어서 모든 선근을 없애 버린다. 성냄을 죽이면 성자들이 찬탄하고, 성냄을 죽이면 근심이 없다.’라고.” 

이 이야기에서 보듯 인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사리뿟따와 라훌라의 경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리뿟따는 황당한 경우를 당하고도 분노를 일으킬 마음조차 내지 않았고, 라훌라는 분노를 참고 삭이느라 애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사리뿟따는 ‘인욕바라밀’을 완성한 것이고, 라훌라는 말 그대로 ‘인욕’을 실천한 것입니다. 

인욕은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인욕은 참고, 견디고, 용서하는(patience, forbearance and forgiveness) 것입니다. 욕(辱)된, 즉 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것들을 견뎌내고, 나아가 자애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망갈라숫따(행복경)>에서 제시한 28번째의 행복지침 ‘인내할 줄 알라(Khanti)’를 대하며, 한국테라와다 교단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빤냐와로 스님의 ‘실천수행’를 주제로 한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이 매우 명쾌했기 때문입니다. 법문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다 보면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실천 수행하라.’는 것이다. 불교가 수행의 종교라는 것이야 잘 아는 것이지만, 막상 ‘실천 수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막연해진다. 요긴한 지침을 듣고도 왜 불자들은 막연해지는 것일까? 구체적인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칸띠- 빠라망- 따뽀- 띠��-카- 닙-바-낭- 빠라망- 와단띠 붓-다-(Khantī paramaṁ tapo titikkhā 　Nibbānaṁ paramaṁ vadanti Buddhā).’ 이 빨리어 문장의 뜻은 ‘침착한 마음과 인내는 최고의 수행이다. 열반이야말로 최고라고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이다. 칸띠(khantī)는 ‘인내’의 의미와 함께 ‘침착’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침착하게 하는 것, 평온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들뜰 것도 없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끙끙거리며 걱정할 것도 없고, 냉정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매우 조심해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좋은 일이 있으면 들떠 버리고, 나쁜 일이 닥치면 곧바로 낙담해 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혼란스럽지 않고,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내를 의미하는 말은 ‘띠��-카-(titikkhā-)’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매우 다양한 괴로움을 맛본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다. 아무리 나쁜 것에 부딪혀도 인내할 줄 아는 것이 ‘띠��-카-’다. 괴로움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밖으로부터 다양한 재난이 덮쳐 온다. 이럴 때면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불평불만의 마음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인내하는 것이 ‘띠��-카-’다.”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에 따르면, 부처님은 ‘이 칸띠와 띠��-카-, 두 가지가 최고의 수행’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동안 들어오고 배워왔던 일반적인 수행의 이미지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최고의 수행이 바로 인욕(忍辱)이라는 것이지요. 미얀마 수행처에서는 ‘인욕이 없으면 열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격언처럼 통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행을 한다며 며칠씩 단식을 하거나 잠을 자지 않는 등으로 일부러 스스로를 괴롭히며 인내력을 기를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에서도 침착한 마음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장면과 인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 ‘수행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불교의 답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수행은 신앙이라든지 기도 등 타력적인 것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칸띠-와 띠��-카-라고 하는 2가지 실천에 의해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최고 상태가 ‘닙바나(열반)’입니다. 

두루 알다시피, 인욕바라밀, 즉 인욕을 완성한 경지는 남방불교의 10바라밀과 북방불교의 6바라밀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방불교에서는 <법구경 주석서> 등에 관련된 교훈적인 일화가 들어 있고, 북방불교에서는 <금강경> 등에 자세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인욕, 즉 인내의 중요성이 큰 것이지요. 

세상에 인욕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반드시 갖가지 고행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인욕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초보 수행자들은 인욕 없이는 수행의 진전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고행과 고행주의는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부처님은 고행주의자가 아닙니다. 정진하는데 어느 정도의 고행은 필요한 것입니다. 윤회의 고통을 끊임없이 겪어야만 하는 차안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인 피안으로 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인욕이 있는 이유기도 합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약무인행(若無忍行)하면 만행불성(萬行不成)이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 가르침이지요. 수행의 길이 어렵고 때론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자비와 인욕이 그 난관을 극복하는 근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