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작은 스님, 오늘은 김장하는 날입니다. 일찍 오셔야 합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절을 나서는 정안 스님의 등 뒤에서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겨울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안 스님의 학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생활은 즐겁지 못했습니다. 반 아이들 누구도 정안 스님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아이는 없습니다. 물론 짝꿍인 희진이만 빼놓고.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조금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편했습니다. 
 그 즈음 노스님은 아주 자리에 누워버렸습니다. 아침저녁 예불도 정안스님 혼자 드렸습니다. 밤이면 노스님은 밤새도록 기침을 하였습니다. 정안 스님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노스님은 끝끝내 병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할머니가 어렵게 병원에서 지어온 약으로 조금 낫기는 하였지만, 노스님의 얼굴은 그전보다 훨씬 야위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이 없는 정안 스님은 학교에서는 더 말이 없습니다. 
“쟤, 벙어리 아냐?”
“원래 절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대.”
“쟤 눈은 왜 저러냐?”
“바보 애꾸라서 그렇지.”
아이들이 저마다 찧고 까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공부만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몽땅 그대로 노트에 쓰는 아이는 정안 스님 하나뿐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다른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몸이 아픈데도 노스님은 저녁 공양을 마치면 꼭 노트 검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반 아이들은 모두 정안 스님이 자기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정안 스님을‘명구’라고 불렀습니다. 애꾸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럴 때면 정안 스님은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았습니다. 3학년 2반은 여자아이들이 12명, 남자아이들이 13명입니다.
 정안 스님은 며칠이 되지 않아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웠습니다. 어려운 천수경을 일주일 만에 몽땅 외운 정안스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반 아이들 이름을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림 이승민

“우리 오늘 저기 소금집 아래로 놀러 가자.”
 수업이 끝날 때쯤 희진이가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정안 스님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왜?”
“오늘 일찍 가야 돼.”
포리 초등학교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걸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 옆으로 나 있는 길은 그야말로 물풀들의 천지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키보다 높이 자란 물풀들이 일렁이는 소금집 앞 들판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늘만?”
그러나 오늘은 김장날.
 절에 빨리 가서 공양주 할머니를 도와야 했지만 정안 스님은 희진이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희진이의 말이라면 밤하늘의 별도 따다 줄 정안 스님이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것입니다. 그것도 예쁜 단짝 친구.
 강원도 불암 초등학교 3학년은 정안 스님 혼자였습니다. 전교생이 12명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모두가 정안 스님보다 학년이 높은 누나, 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또래 친구가 없었습니다. 하기야 또래가 있다고 해도 친구가 되지는 못했겠지만.
 정안 스님은 희진이와 교문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맑아도 항상 안개가 끼어 있는 포리, 그러나 오늘은 그 안개마저도 없습니다.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맑습니다. 멀리 보이는 수리산의 전망대까지 똑똑히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매서웠습니다. 쌩쌩.
“둘이 사귀니?”
반에서 제일 개구쟁이인 성호가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지난여름에 서울에서 전학 온 희진이와 친해보려고 반 남자아이들은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워낙 새침데기인 희진이는 그 누구와도 잘 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정안 스님과는 처음부터 잘 어울렸습니다. 노란 가죽 잠바에 노란 신발까지 신은 희진이는 정말 병아리 같습니다.
“너는 상관하지 마.”
희진이가 톡 쏘아붙였습니다.
“잘해 봐. 까까중하고.”
성호의 입가에 비웃음이 지나갔습니다. 정안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 바보같이 그러고 있어?”
희진이가 씩씩거리며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또 고개를 숙였습니다.  
 교문을 벗어나자 곧바로 작은 저수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옛날에 바닷물을 가두어 소금을 만들던 저수지입니다. 정안 스님과 희진이는 큰길을 벗어나 좁은 소금밭길을 걸어갔습니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소금밭둑에 줄을 지어 서 있는 물풀들이 한없이 흔들렸습니다.
“절엔 누가 있어?”
“노스님하고 공양주 할머니.”
“공양주?”
“밥해주시는 할머니.”
"아, 그 때 그 할머니?"
희진이가 자꾸 말을 붙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한 번도 먼저 희진이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물어볼 말은 정말 많은데...... 정안 스님과 희진이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멀리 갯벌 위엔 밀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통통배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학원 안 가니?”
모처럼 정안 스님이 물었습니다. 절에 빨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노스님이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호호, 오늘은 땡땡이치는 날!”
희진이는 정안 스님의 마음도 모르고 깔깔거렸습니다. 소금밭에 있던 물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커다란 수로가에서 희진이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초겨울 바람이 정안 스님과 희진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희진이는 죽은 물풀들 무성한 밭둑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나 오늘 준비 많이 했다. 이리 앉아.”
희진이가 가방을 열었습니다.
 은박지에 쌓인 커다란 두 개의 햄버거, 우유 두 통, 그리고 처음 보는 과자들.
정안 스님도 희진이 옆에 앉았습니다. 군침이 돌았습니다.
“우와, 이거 엄마가 해줬어?”
그 순간 희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하얀 희진이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습니다. 정안 스님은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희진이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아, 아니, 우리 이모!”
정안 스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희진이도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안 스님은 엄마 아빠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희진이는 나란히 앉아서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기는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햄버거는 그래도 먹을만 했습니다. 조금 께름직하기는 했지만 맛은 좋았습니다.
 “산에 살면 무섭지 않아?”
“난 절이 좋아.”
“난 절에 가면 무섭던데.”
햇볕은 쨍쨍, 마른 나뭇잎들은 이리저리 흩날렸습니다.
“이런 데 나온 거 오늘 처음이야.”
희진이가 정안 스님을 쳐다보며 생긋 웃었습니다. 
 “절에 사는 사람들은 도술도 부린다고 하던데?”
“누가?”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머리 깎은 스님들이 주문을 이렇게 외우면서.”
희진이는 정말 합장을 하고 주문을 하는 흉내를 냈습니다.
정안 스님이 빙긋 웃었습니다.
“왜 웃어?”
“절은 공부하는 곳이야.”
“무슨 공부?”
막상 그렇게 말해 놓고 보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아마도 내일은 추워질 모양이었습니다.
바람결에 희진이의 긴 머리칼이 날렸습니다. 희진이는 정말 예뻤습니다.
  “이제 가야지.”
“난 집에 가기 싫어.”
“왜?”
“집엔 아무도 없어.”
희진이는 울상입니다. 정안 스님은 꼭 물어볼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습니다.
 “무서워서 그래?”
“아니. 오늘 우리 절 김장하는 날이야.”
“호호호! 너 김장까지 하니?”
  정안 스님은 또 얼굴을 붉혔습니다.
“김장할 때는 꼭 절에 있아야 돼.”
  날씨가 점점 추워졌습니다.
“춥지?”
정안 스님은 빵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희진이에게 모자를 씌워주었습니다. 너무 예뻤습니다.
 희진이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굉장히 따뜻하다. 그렇지만 난 머리칼이 많고 넌 없잖아.”
정안 스님이 싫다고 했지만 희진이가 강제로 모자를 씌워주었습니다.
 “오늘 김장 못해서 어떡하니?”
속 타는 줄 모르고 희진이가 정안 스님을 놀렸습니다.
 “이제 곧 방학인데 넌 뭘 할 거니?”
  정안 스님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던 몇 마리 갈매기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 방학이라도 갈 데가 없어.”
희진이가 울상이 되었습니다.
 “나도 그래.”
“그럼 나 니네 절에 가도 되니?”
  정안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안 스님과 희진이는 다시 뚝가를 걸어 나왔습니다. 
 둘은 나란히 소금집이 줄줄이 늘어선 수로 가를 건너 커다란 도로로 나왔습니다. 학교도 보였고, 포리암이 있는 졸참나무숲도 보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스님이 말한 졸참나무를 생각했습니다. ‘절 사람들은 모두 졸참나무처럼 살아야지’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그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하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늙으신 공양주 할머니가 혼자 김장을 하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너무 늦었다.”
그러나 희진이는 정안 스님의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너 오늘 나 바래다줘야 돼. 하중동까지.”
“하중동까지 매일 걸어 다녀?”
“히히, 오늘 처음이야. 교문에 학원 차가 오는데 이젠 너무 늦었잖아.”
포리산 꼭대기에 걸린 햇님이 정안 스님과 희진이의 얼굴을 비췄습니다. 정안 스님은 희진이처럼 예쁜 얼굴은 처음 보았습니다. 정안스님이 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소금밭에서 하중동까지는 길이 멀었습니다. 걷는 도중에 희진이는 끊임없이 재잘거렸습니다. 혹시 산에서 호랑이를 보지 않았느냐, 귀신을 보지 않았느냐, 그리고 노스님이 나쁜 사람은 아니냐.. 등등...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조금도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물었다면 벌써 한바탕 붙었을 텐데... 정안 스님은 그냥 히죽 웃고 말았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희진이가 하는 말은 조금도 밉지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과 희진이는 여우고개를 넘었습니다. 차들이 쌩쌩 달렸습니다. 고개 밑으로 하중동이 보였습니다.
“저기 제일 왼쪽 교회 옆에 빨간 벽돌집 보이지 저게 우리 집이야.”
희진이가 손으로 하중동을 가리켰습니다. 
 정안 스님과 희진이는 빨리 걸었습니다.
 금방 버스 정류장에 닿았습니다.

그림 이승민

바로 그 때였습니다.
“희진아?”
 멋진 외투를 입은 아줌마였습니다.
“이모?”
희진이가 얼른 뛰어갔습니다.
“어디서 뭘 하고 이제 와. 걱정했잖아. 학원도 안 가고.”
“응. 친구하고 놀았어. 어제 이야기했잖아. 내 짝꿍.”
아줌마가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얼른 고개를 숙였습니다.
“희진아, 그럼 짝이 쟤야?”
 “응. 절에 살아.”
희진이 이모는 정안 스님을 아래 위로 훑어보았습니다.
 “야, 친구 할 애가 없어서 저런 애하고 돌아다녀. 너 혼 좀 나 봐야겠다. 그러고도 주일날 목사님 어떻게 볼래. 앞으로 쟤하고 놀면 혼날 줄 알어!”
 아줌마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눈은 또 왜 저래?"
정안 스님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희진이 이모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정안 스님의 가슴속에 박혔습니다. 영영 지울 수 없는 흉터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