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겨울의 초입 찬바람이 매운데 문무대왕과 신문왕을 친견하러 고도천년의 서라벌로 달린다. 떨어진 낙엽이 셀로판지처럼 발밑에서 부서지고, 폐허의 벌판 위로 장엄하게 서 있는 두 탑만이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웅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감은사지의 동탑·서탑. 신라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진압하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고 아들 신문왕 2년(682년)에 완성했다. 지금은 토함산터널이 개통되어 예전보다는 접근성이 가까워진 탓도 있지만, 영험한 장소로 알려져 전국에 무속인 들이 모여들어 굿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감은사에는 죽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 대왕암에 장사 지낸 뒤 용이 된 부왕(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 돌계단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용혈)을 뚫어두었다. 감은사 조성 당시에는 감은사 바로 앞까지 바다였기 대문에 용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구멍을 볼 수 있다. 금당터는 비교적 잘 보존 되어 지표에는 원형주자가 각출된1개의 초석이 있고 곳곳에 초석과 대석 장대석이 있다. 현재는 중문터와 화랑터는 대부분 밭이 되었고 화랑터는 민가로 변해있다.
이견대와 대왕암
이견대(사적 제159호)는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또한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곳이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초석에 근거해 최근에 지은 것이다.
이견대에서 보이는 문무왕릉 수중릉, 대왕암은 죽어서 까지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왕이 묻힌 곳이라는 가슴 벅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동해구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있다.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뜻이 더욱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