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재보살의 조견은 삼매다
정찬주(소설가)
일러스트 정윤경
텃밭에서 배추와 무들이
밤낮으로 몸을 불려가는 늦가을이다.
서리가 내린 날의 낙엽은 구르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산중 농부들은 무는 햇볕에 자라고
배추는 달빛이 키운다고 말한다.
25년 전에 후배 윤제림 시인과 동행하여 처음으로
부처님이 흘린 그림자를 좇아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 성지순례였다.
인도 말로 ‘깃자꾸따(gijjhakuta)’라고 부르는
영취산(靈鷲山)에서 만났던 인도 경찰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무렵만 해도 영취산 계곡에 강도가 출몰하던 때였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콧수염을 기른 그 경찰은
배낭여행 중인 우리를 안내했다.
혹시나 무엇을 바라고 그러는 줄 알고 경계했지만
그는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신 향실(香室) 터 초입의
아난존자 굴까지 우리를 순수하게 안내했다.
마침 산 정상에 독수리 몇 마리가 날고 있었는데
나는 영취산이 한자 뜻대로 독수리가 깃든 산임을 알았다.
그가 나에게 농담을 하여 놀라게 한 것은
향실 터 가는 도중이었다.
앞서가던 그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내게 물었다.
“불교 신잡니까?”
“그렇습니다. 당신도 불교 신자입니까?”
“힌두교 신자입니다.”
그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나는 아침마다 붓다가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침마다 눈을 뜨니까요.”
그제야 나는 붓다의 어원이 ‘눈을 뜬 이’임을 깨달았다.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를 볼 때마다 ‘눈을 뜬 이’라는
구절에서 마음을 적시는 울림이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아! 하고 느꼈던 것이다. 2500년 전의
‘눈을 뜬 이’라는 언어가 아직도 인도인들에게 ‘붓다’라는
단어로 살아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장님이다.
눈을 뜨지 못한 채 코끼리의 어느 한곳을 만지며
코끼리가 그렇게 생겼다고 얘기하는 장님인 것이다.
시공을 초월해서 인과관계로 얽힌 현상을 관통하는
즉 완벽하게 통찰할 수 있어야만 ‘눈을 뜬 이’가 될 것이다.
단순하게 사물을 보는 눈(肉眼)이 아니라
‘눈 속의 눈(慧眼)’을 가진 이가 된다는 말이다.
혜안이 법안(法眼)이 되고 불안(佛眼)이 되지 않을까.
관자재보살의 눈은 육안을 벗어난 눈일 터.
때로는 혜안이 되었다가 법안이 되고
때로는 불안이 되는 눈이 아닐까.
눈이란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행심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을 외면서
내 눈을 끄는 것은 ‘행심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密多時)’나
‘오온개공(五蘊皆空)’이 아닌 ‘비추어본다’라는 조견(照見)이다.
한 줄기 빛기둥 같은 조견이란 단어는 참으로 오묘하다.
비출 조(照) 자는 거울을 바로 연상케 한다.
거울은 모든 실상을 굴절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춘다.
거울은 실상을 왜곡시키는 일은 없다. 성철 스님이 법문한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이다.
볼 견(見) 자는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본질까지 씨줄과 날줄로 통찰한다.
따라서 조견은 삼매와 의미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깊은 산중에서 어느 선사와 문답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선사가 삼매란 말씀을 할 때
<반야심경>의 조견이란 말을 떠올렸던 것이다.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입니까?”
“삼매에서 지혜가 생깁니다. 삼매란 원효스님께서 정확하게
설명하신 것처럼 정사찰(正思察), 일념을 놓치지 않고
바르게 생각하고 살펴보는 일입니다.
바른지 아닌지를 살펴본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일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서 집중하는 것은 진정한 삼매가 아닙니다.
그것은 몰입일 뿐입니다.”
“삼매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누구나 인생을 진지하게 궁구하면 삼매가 일어납니다.
꼭 출가하여 화두를 들고 참선해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도 어떤 문제를 일념으로 지니되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순간순간 놓치지 않고 살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삼매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삼매에 들면 ‘산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송장’입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를 항상 깨어서 생각하고 살피며 산다면
산 사람이고, 생각하고 살피는 일을 놓치고 산다면 송장입니다.”
선사의 말씀을 바꾸어본다.
“조견에서 지혜가 생깁니다.
누구나 진지하게 궁구하면 조견이 일어납니다.
조견에 들면 ‘산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송장’입니다.”
써늘한 소슬바람에 배추는 속이 실하게 차고
무는 바람결에 매운 냄새를 풍긴다.
된서리를 맞을수록 배추나 무의 잎들은 더욱 파래진다.
배추와 무들이 파랗게 파랗게 삼매에 든다.
우리도 마땅히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중인 배추나 무이듯
시련에 흔들리거나 꺾이지 말고 싸목싸목 극복해 건너가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