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 자식을 화목하게 돌보라
안빈낙도의 삶을 호언하면서 산골로 귀촌해 3년 넘게 살고 있지만, 가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 게 영 쉽지가 않습니다. 하긴 이런 삶이 쉽다면 공자(孔子)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정신일 리가 있겠습니까. 공자의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는 안빈낙도를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연구와 수덕에만 전념하여 공자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었고, 제자 가운데 겸허한 구도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안회쯤 되는 내공을 갖추었다면 모르되, 함부로 호기를 부려서는 큰코다친다는 걸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중에서(사진=염정우)
신라 자비왕 때의 음악가로 알려진 백결(百結)선생은 금성(지금의 경주) 낭산 기스락에 살던 빈한했으나 세상일에는 달관하였던 인물로 전해집니다. 가난하여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서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해 백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요. 어느 해 연말 이웃에서 곡식을 방아 찧었는데 백결의 아내가 절구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방아질을 하는데 우리만 곡식이 없으니 어떻게 해를 넘길까?”라며 한탄하자, 백결이 “살고 죽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라! 오는 것을 거절할 수 없고, 가는 것은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인데 당신은 어찌 마음 상해하시오? 내 당신을 위하여 절구공이 소리를 지어 위로해 주리다.”라며 거문고를 탔는데, 그 노래가 ‘방아타령’이라고 합니다. 백결의 아내가 남편의 미안함을 담은 거문고 소리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런 남편이 가정을 온전히 돌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맹자(孟子)>의 가르침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인 것입니다.
어쩌면 안빈낙도는 무능한 자의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출중한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섣부른 만용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본인이야 그런 삶이 좋을지 모르겠으나 가족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촌해 사는 저희 가족의 삶이 실패했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안빈낙도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체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지중한 인연을 꼽는다면 단연 가족일 것입니다. 부부는 숙세의 인연이 있어야 맺어질 수 있고, 자녀는 피와 살을 나눠 이루어진 관계이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입양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오랜 전생부터 이어온 인연이 아니라면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족은 사회 형성의 근본이자 토대에 해당되므로, 가족의 상황은 사회와 국가의 상황을 좌우하는 근거가 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대학(大學)>의 가르침도 이런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가족상은 아마도 화목(和睦)한 가정일 것입니다. 화목은 가족 구성원들의 뜻이 맞아 사이가 좋고[harmony],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 애정이 묻어나는 것(lovely eyes)을 말합니다. 가족이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대해야 하는 것이지요. 가족이 화목하면 사회도, 나라도 안녕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화목한 가정이란 가족의 행복 이상의 가치를 갖습니다. 같은 논리로 규모가 큰 집단에서는 화합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상가(Sangha)가 외도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화합’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비구들은 마땅히 화합해야 하며, 상가의 화합을 해치는 행위를 크게 경계하셨습니다. 오늘날 승단에서도 특히 화합을 크게 해치는 행위를 했을 때, 멸빈의 징계를 내려 상가 밖으로 추방하는 것도 부처님의 화합 중시 원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가의 화합을 매우 중시하고 역설하셨던 부처님께서는 재가불자에게는 ‘가정의 화목’을 강조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열두 번째 행복 체크리스트로 ‘아내와 자식을 화목하게 돌보라(the cherishing of spouse and children).’고 하신 것이지요.
부처님께서 제정한 계율을 살펴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행을) 삼가는 것’,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계목이 정해지다가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선행을) 행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막 출가하여 이작 수행의 힘이 일천할 때에는 당연히 악행이나 삿된 버릇을 금하도록 통제하는 것이고, 일정한 기간 정진을 통해 수행력이 높아졌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성평등이 강조되고 구현되는 오늘날에 부처님께서 제시한 12번째 체크리스트는 ‘배우자와 자식을 화목하게 돌보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내(wife)’보다는 ‘배우자(spouse)’가 더 시의적절한 표현이겠지요.
가장의 바람직한 태도는 배우자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소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휩쓸리다보면 때때로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잊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고, 배우자가 그 ‘느낌’을 느끼도록 할 수 있다면 이 부부의 삶은 평범함에서 마법에 걸린 듯한 환희로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삶은 자신과 배우자가 행복해지는 최상의 결과를 낳는 것은 물론이고, 최상의 자녀교육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우자를 소중히 대하는 삶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막상 현실 속에서 배우자를 존경하고 칭찬하려면 몇 가지 난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첫째,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모든 가족구성원도 소중히 여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다보면 어느 순간 배우자가 자신이 소중히 여겨지는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부부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아예 습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습관화에는 당연히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는 예기치 않은 방해와 집중을 잃게 하는 요인들이 많은 만큼 찰라 찰라에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잘 돌보는 방법 가운데 최고는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평소 일상에서 훌륭한 부모, 존경받는 부모, 닮고 싶은 부모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수승한 자녀교육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실험이 미국의 한 연구팀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돈이 든 지갑을 줍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고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50달러가 든 지갑을 떨어뜨려 놓고 이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놀랍게도 120개 중 80개의 지갑이 그대로 주인에게 돌아왔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른 행동을 한 것이지요. 지갑을 돌려준 사람들에게 ‘왜 돈이 든 지갑을 그대로 돌려보냈나요?’라고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이 “어릴 적 부모님한테 그렇게 하라고 배웠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부모의 행동과 가르침에 따라 자녀의 도덕성은 길러진다는 좋은 사례이자 ‘자식과 부모는 서로를 비치는 거울’이라는 실험결과인 것이지요. 이 실험을 보면서 ‘부모의 맘대로 되는 자식은 없지만, 부모를 본받는 자식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존중받고 존중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일방적인 존중과 보살핌은 존재하기 어렵고, 존재한다고 해도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과거에는 가장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가족의 의사를 대변했고 그대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하고 있고, 서로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현대사회는 양성평등을 적극 실현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흐름이기도 합니다. 자칫 가장의 권위를 내세웠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시대입니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중에서(사진=염정우)
우리 시대에 많은 남편들이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며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가정 내에서 자신의 위치는 사라졌고, 그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을 뿐이라는 하소연입니다. 연애시절이나 신혼시절과 달리 아기가 태어난 후의 아내의 태도는 엄연하게 달라집니다. 모든 일상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크면 좀 나아질까 기대하지만 커서도 의미를 둘만큼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엄마의 관심은 모두 아이에게 있고 아이들 역시 중요한 결정부터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모두 엄마와 상의합니다. 아버지는 번번이 배제될 때가 많은 것이지요. 실제로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버지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렇게 된 책임이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습니다. 소외된 가장의 삶에서 탈출하는 길은 배우자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배우자와 자녀를 화목하게 돌보는 것의 출발점은 남편이 아내를,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