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판01) <붓다 발자국(Buddha Pada)>, 기원전 2세기 이후, 40x60cm,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붓다이시여! 같은 여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어떤 여자는 얼굴도 못생기고 가난하며 신분도 천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여자는 얼굴도 예쁘고 재산도 풍부하며 신분도 높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까?”
-말리까 왕비의 질문,「말리까 경 Mallikā-sutta」
말리까 왕비, 붓다에게 ‘업’을 묻다
붓다 당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사위성 일대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 (급고독 장자와 제따 태자 이외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는데, 그는 빠세나디 왕이다. 전법하는 지역의 국왕을 교화시키는 것. 이는 교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겠다. 붓다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 친부인 카필라 성의 슈도다나 왕(정반왕)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한 데 이어,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까지 교화시키고 또 열렬한 후원자로 만들었다. 빠세나디 왕의 교화에 있어, 왕비 말리까 부인의 중간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말리까 왕비는 왕의 5백 명의 여인 중에 제1부인으로, 독실한 붓다의 신자였다. 그녀는 붓다의 현명한 말씀을 남편 빠세나디 왕에게 부지런히 전했다. 처음에는 그 내용에 반신반의하던 왕도, 부인의 지혜로운 인도로 결국 붓다가 진정 깨달은 성자임을 납득하고 그의 신자이자 역대의 손꼽힐 후원자가 되었다.
“저는 왜 못생기고 가난합니까?“
말리까 왕비는 말리화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천한 신분의 여인이었다. ‘말리꽃(자스민)’에서 이름을 따와 말리까로 불렸다. 그리고 얼굴도 못생기고 재산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제1왕비의 지위에 올랐으며,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말리까 왕비 관련 초기 경전들을 찾아 읽다 보면, 그녀는 따듯함과 배려심이 있고 현실적 판단에 빠른 총명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마침 말리화원을 찾은 심신이 지친 왕에게 따듯한 배려를 했고, 그녀는 왕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의 주변은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들로 항상 넘쳐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바라문 계급의 높은 신분 출신들. 그들의 영향력에 휘둘리면서, 제1부인의 지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기와 질투, 무시와 음해 속에서 일상이 심란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아하고 빛나는 여인들을 보면서, ‘나도 저랬으면’하는 마음과 ‘나는 무슨 이유로 저렇지 못할까’하는 원망의 마음들이 교차했다. 결국 말리까 왕비는 붓다에게 가서 “도대체 무슨 원인과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고 가난하며 게다가 소유물이 적고 재물이 적고 영향력이 적습니까?” 물론 질문 속의 ‘여기 어떤 여인’은 말리까 왕비 자신을 비유한 것이겠다.
"말리까여! 여기 어떤 여인은 성미가 급하고 격렬하고, 사소한 농담에도 노여워하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분개하며, 분노와 성냄과 불만족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탈것과 화환과 향과 바르는 것과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하지 않고, 게다가 그녀는 질투심을 가졌습니다. 남들이 이득을 얻고 존경받고 명성을 얻고, 존중받고 칭송받고 예배 받는 것을 질투하고 시샘하여 질투심에 묶여버립니다. 그녀는 거기서 죽어서 현재의 이러한 상태로 다시 오게 되나니, 태어나는 곳마다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고 가난하며, 게다가 소유물이 적고 재물이 적고, 영향력이 적게 됩니다."
-「말리까 경」, 『앙굿따라 니까야』
업의 원리, 자업자득! ‘한 대로 받는다!’
‘자신이 저지른 그대로, 자신이 받는다’라는 인과응보의 철칙을 말리까 왕비는 금방 알아듣는다. 내가 낸 거친 마음과 거친 행동이 그대로 거친 용모와 거친 환경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성을 잘 내지 않고, 흥분을 잘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많이 비난받더라도 상대를 모욕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악의를 가지지 않고, 분개하지 않고, 분노와 성냄과 신랄함을 드러내지 않겠습니다!”라며 앞으로 절대 화를 내지 않겠으며, 보시를 많이 하고, 또 질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전생에 그러한 마음을 내어, 현생에 자신의 (가혹한 운명이라 믿었던) 조건이 이러하거늘, 이것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겠다. 이것을 간파한 그녀는 매우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된다.
(도판02 좌) <붓다 발자국>의 세부 문양들. 법륜, 삼보, 연꽃. (도판01)의 부분. (도판03 우) <법륜 석주> 높이 솟은 석주 위에 거대한 법륜을 묘사했다. 이는 붓다의 진리의 설법이 온 누리에 가득하다는 상징이다. 석주 좌우로는 아쇼카왕과 왕비 및 당시 뭇사람들이 합장하고 우러르고 있다. 산치대탑.
‘붓다의 설법’은 어떻게 (미술로) 표현되는가?
<붓다 발자국>(도판01,02)은 사람 형상의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인 ‘무불상 시대’에 붓다를 상징하는 도상이다. 발바닥에는 진리의 설법인 수레바퀴, 성스러운 삼보, 만물의 청정한 근원 및 그것의 작용을 나타내는 연꽃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열 개의 발가락에는 만 자(卍字)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우주의 배꼽이 회전하는 모습이다. 만자는 삼라만상의 본질적 현상을 나타내는 도상이다. 우리 몸에서 돌아가고 있는 차크라(총 7개)의 모습의 형상화이다. 차크라는 우주의 기운과 우리 몸이 소통하는 문(門)이다. 만 자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에서도 ‘신(神)의 운영 또는 작용’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만 자는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고, 브라만교 또는 힌두교 등의 사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관에서도 둥글게 둘러 만자 모양이 발견되어,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사용했던 인류의 보편적인 공통의 문양임을 알 수 있다. 단, 불교에서는 ‘신의 작용’으로서의 상징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 만났을 때’ 그 원심력으로 회전 현상이 일어나는 에너지의 근원적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과 저것이 만났을 때’라는 것을 ‘연기緣起’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이것과 저것이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조건 지어진) ‘임시적 현상(假相)’이라고 정의한다. 나의 몸과 마음은 ‘연기緣起–연생緣生-연멸緣滅’의 현재 진행형의 ‘무상無常’함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영원불멸의 고생이 또는 실체는 없기에, ‘공空’이라고 한다.
‘회전하는 법륜’ 그 내용은 무엇인가?
붓다의 설법은 그때 그때 인연에 따라 대상도 천차만별이고 또 그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붓다는 중생의 근기根機를 통찰하시고, 설법을 듣는 상대 또는 군중의 수준에 맞추어 설법을 하신다. 아집이 강한 사람에게는 무아無我의 원리를 말씀하시고, 분별이 강한 사람에게는 평등관平等觀을 설하신다. 욕망이 강한 사람에게는 그 욕망이 바로 고통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또 재물에 탐착하는 사람에게는 그 인색함의 과보를 말씀하시고, 보시의 공덕을 강조하신다. 욕정이 강한 사람에게는 부정관을, 집착이 강한 사람에게는 업의 인과를 설하신다. 이 같은 눈높이 교육을 불교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한다. 막무가내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이끌어 교화를 하는 것이다. 물론, 붓다는 대상을 통찰하는 직관력이 남달랐기에, 언제나 자유자재로운 ‘방편의 묘妙’가 발휘되었다. 그리고 불교를 탄압하려는 외도外道들을 제압할 때는, 필요에 따라 신통 또는 기적을 보이기도 하셨다.(쌍신변 및 천불화현의 기적에 대해서는 다음 호 <연재20>에 실릴 예정이오니 참조) 이렇듯 다양한 설법의 방법과 내용은 모두 달라도, 붓다의 결론은 항상 같다. 다채로운 내용들을 관통하는 수행의 요지는 하나! ‘생멸법生滅法’을 ‘관觀’하는 것이다. 즉, ‘나’라고 착각한 것은 연기緣起된 것이니, 그 ‘무상無常’함을 보아 (‘무아無我’인 줄 알고) ‘고苦’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무상·고·무아 삼법인의 진리이다. 그래서 붓다는 “연기를 보는 자, 나(부처님 또는 깨달음)을 본다”라고 말씀하셨다.
(도판04 좌) 붓다의 설법을 듣기 위해 기원정사로 행차하는 빠세나디 왕. 도판05의 부분. (도판05 우) 빠세나디 왕의 행차(Procession of Prasenajit of Kosala), 산치제1탑, 북문 패널 조각.
“세존이시여, 인간에게 안으로 어떤 법들이 일어나면 해롭고 괴롭고 편히 머물지 못합니까?”라고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은 물었다. 붓다는 이렇게 답하셨다. “자신에게 생긴 탐욕∙성냄∙어리석음 삿된 마음 가진 자신을 파멸시켜 버립니다. 갈대에게 생긴 열매 갈대 자신을 죽이듯.”
-「인간 경 Purisa-sutta」, 『상윳따 니까야』
빠세나디 왕, 현실적인 문제들을 묻다
『상윳다 니까야』의 「꼬살라 상윳따 Kosala-saṁyutta」 (꼬쌀라 사람들과 나눈 말씀)에는, 빠세나디 왕과 붓다의 문답이 집중적으로 나온다. 많은 내용 중에 인상에 남는 몇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먼저 「사랑하는 자 경 Piya-sutta」에서 빠세나디 왕은 “누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누가 자기 자신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붓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누구든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들은 미워하는 자가 미워하는 자들끼리 하는 짓을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자 경 Piya-sutta」
자신을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
특히 ”그들은 미워하는 자가 미워하는 자들끼리 하는 짓을,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 가슴에 와닿는다. 불선업不善業을 안팎으로 저지르는 자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사람이고, 반대로 선업 善業을 행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논지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엄경에 역설된 진리처럼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즉 ‘우리는 하나’다. ‘너와 나’를 나누어 보는 분별심의 세계 이면에는, 그런 분별심이 없는, 진리의 세계가 있다. 그 진리의 세계 모습은 모든 것이 하나로 유기적으로 통합된 중중무진의 세계이다. 그래서 사실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이것과 저것이 둘일 수가 없다. 우리는 함께 의존하여 공존할 뿐이다. 그러니 내가 못된 행동(불선업)을 하면, 본질의 세계에서는 주객이 없으므로, 결국 그 불선업의 에너지는 내가 받게 된다. 나는 불선업의 에너지를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낸 ‘마음’을 살 뿐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이다. 윤회 속에는 ‘인과의 철칙’이 있다. 내가 상대에게 선업을 하면 그 선업의 에너지는 그대로 (내 업식에) 남게 된다. 나는 다시 선업의 에너지를 체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선업) 공덕만이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나의 행복을 약속하는 의지처라는 말씀이시다.
“저승사자에게 잡혀 인간 세상을 버리게 된다면, 참으로 무엇이 그 자신의 것(내 것)입니까? 그때 그는 무엇을 함께 가지고 갑니까? 절대로 떠나지 않는 그림자가 그를 따르듯,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략) 그러므로 다음 생을 위한 저축으로 착한 일[善業]을 해야 합니다. 공덕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른 세상에 태어날 때 중생들을 위한 의지처입니다.”
(도판06) 코살라 국의 왕궁 사람들이, 성벽 위에서 국왕 빠세나디가 행차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도판05의 부분.
(도판07) 빠세나디 왕은 많은 시중들을 이끌고 화려하게 행차하는 것을 즐겼다 한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빠세나디 왕이다. 사방으로 호위하는 시녀와 하인들이 빼곡하다. 지금 궁궐을 나와서 사위성의 기원정사로, 붓다를 만나기 위해, 가는 모습이다. 도판05의 부분.
재산에 대한 강렬한 집착, 결국 대규환 지옥으로
「무자식 경」에서는 어떤 돈 많은 장자가 죽었는데 그는 자식이 없어서 그 많은 소유물이 모두 궁전으로 운반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장자는 (천만금을 소유했으나) 살아생전에 쌀겨 죽을 먹고 옷은 기워 입었고 나뭇잎 낡은 수레를 타고 다니는 인색한 삶을 살았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이 (본인은 자식이 없기에) 동생의 외아들에게 갈 것이 싫어 그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결국 재산 때문에 살생한 업보로 여러 천백 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고, 그러고도 업보가 남아 이번 생에도 계속해 자식이 없어 그의 소유는 엉뚱하게 헛되이 흩어져 버렸다. 이것을 목격한 빠세나디 왕은 허무함을 느껴 붓다에게 묻게 된다. 이에 붓다는 그 장자는 지금 대규환 지옥에 떨어져 불타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은 업業만이 진실로 내 것일 뿐이며, 그것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하신다.
“곡식 · 재물 · 은 · 금 · 그 외 어떤 소유물도 하인 · 일꾼 · 심부름꾼 · 자기 가족까지도, 이 모든 것 다 가지고 떠나가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 다 버리고 가야만 합니다. 몸과 말과 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것이 진짜 자신의 것이며, 그는 오직 이것만을 가지고 갑니다. 그림자가 사람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이것만이 그를 따라갑니다.”
-「무자식 경 Aputtakaa-sutta」
국왕에게 알려주신 다이어트 비법 ‘알아차림’
그 외,「불방일 경」에서는 스스로에게 ‘유일하게 이익되는 것’은 ‘선업에 대한 불방일’뿐이다라는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선업(알아차림의 삶)만이 끝도 없는 윤회의 인생에서 가장 남는 장사이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고통이 없는) 다음 생을 약속하는 밑천이라는 요지이다. 또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자, 남을 해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말리까 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반대로 ‘남을 해치는 자는 진정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겠다. 남을 해치고 고통을 주는 자는 스스로 매우 불행한 사람이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그 사람이 불쌍해 보일 때, ‘자비’가 구현된다. 또 잔뜩 먹고 배가 불러 숨을 헐떡거리는 빠세나디 왕의 모습을 보고, 붓다는 “(먹을 때) 알아차림으로 적정량을 먹으라”고 충고한다. 이 말씀대로 왕은 먹을 때마다 알아차림을 하여 결국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다이어트 성공담은 「양동이 분량의 음식 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왕은 전쟁에서 이겼을 때나 또는 졌을 때나, 항상 붓다가 계신 기원정사로 퇴근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붓다에 고했다. 전쟁에서 패하고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왕에게 붓다는 “승리는 원한을 부르고, 패배는 원한을 낳는다”며 “둘 다 버리면 진정한 평화를 찾는다”라고 설법한다.(「전쟁 경」)
설법 집대성, 계기 마련해준 빠세나디 왕
이상,「꼬살라 상윳따」로 묶여 있는 다양한 경전들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빠세나디 왕과 붓다는 매우 친밀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왕은 붓다의 거침없는 직설에 항상 귀 기울였다. 빠세나디 왕의 전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불법의 체계화는 과연 가능했을까. 붓다가 사위성에 머물기 시작한 것은 성도 후 21년째 되던 해부터 43 년이 되던 해까지 24년 동안이라고 추정된다. 기원정사에 계시기 시작한 때가 57세쯤으로 환갑의 나이였다. 각묵 스님의 디가니까야 번역 서문에 따르면, 많은 초기불교 경들이 이 기원정사에서 설해진 것으로, 특히 『중부』 와 『상응부』 경들은 반에 가까운 정도가 이곳에서 설해졌다고 한다. 그는 “세존께서는 말년에 사리불과 목건련과 가전연과 아난다 등의 큰 제 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법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셨다고 봐야 할 것이다”라고 서술한다. “부처님의 가장 유력한 후원자였던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통치하는 사윗티의 기원정사와 녹자모 강당에 머무시면서 사리불 존자를 위시한 제자들과 교법을 체계화빼 불법대계(佛法大計)를 도모하셨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여 년이 넘는 이러한 법체계화의 큰 초석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입멸하신지 두 달 뒤에 가진 일차 합송은 별다른 무리 없이 7개월 만에 무난히 회향되었을 것이다.”(각묵 스님, 『디가니까야』역자 서문 중에서 직접 인용)
(도판08 좌) <붓다 발바닥>(도판01의 부분)의 법륜. (도판09 우) <법륜>, 붓다의 설법을 상징한다. 붓다가 깨달은 금강좌 위에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법륜이 있을 뿐이다. 산치대탑(서문). 무불상 시대에는 사람 형상의 부처님은 없고, 법륜 · 보리수 · 연꽃 · 발바닥 자국 등으로 깨달음의 존재를 상징한다.
(도판10) <붓다 설법상> 4세기, 간다라, 편암,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도판11) <초전법륜상> 473년, 사암, 굽타, 사르나트 출토, 사르나트고고학박물관 소장. 유불상 시대에는 사람 형상의 부처님이 만들어지고, 여의주와 광배(깨달음의 빛)와 설법인의 수인 등으로 깨달음을 표현한다.
(도판12 좌) 설법인說法印(vitarka-mudrā)의 도해. (도판13 우) 전법륜인轉法輪印(Dharmaçakra-mudrā)의 도해.
설법하는 붓다는 어떻게 묘사되는가?
위에서 초기 불교미술 시대인 무불상 시대의 붓다 설법의 도상(도판01)을 잠시 살펴보았다. 진리의 설법은 가장 먼저 법륜으로 표현된다. 석가모니는 법신과 합일하였기에, 그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은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편의상 학계에서는, 무불상 시대라고 칭하고 있다. 사람 형상의 모습이 없었을 뿐이지, 깨달은 성품(불성佛性)의 모습은 보리수 · 법륜 ·금강좌· 족적(발바닥의 자국) 등으로, ‘없지만 있고, 있지만 없는’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오히려 진실한 법法에 가장 가까운 조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기원 전후 시기에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 응신應身으로서의 (법신法身을 품은) 사람 모양의 부처님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불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법신은 여의주(도는 원상)는 미간의 백호와 백회의 여의주로 표현되어, 사람 모습의 응신과 합일한 형태로 표현된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익숙한 부처님 모습의 시원이겠다. 진리의 설법(깨달음의 내용)은 무불상 시대에는 주로 ‘법륜’으로 표현되지만, 유불상有佛像 시대에는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을 한 각자覺者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유불상 시대의 ‘유불상’은, 임의적인 표현이며, ‘사람 형상의 불상’이라는 뜻에서 사용하였다.
붓다가 설법할 때의 손 모양, 설법인
붓다가 설법할 때의 손 모양을 설법인說法印(vitarka-mudrā) 또는 전법륜인轉法輪印(Dharmaçakra-mudrā)이라고 한다. 설법인과 전법륜인은 통용해 쓰기도 하지만, 전법륜인은 특히 붓다가 최초로 설법하는 <초전법륜상>의 전용으로 구분해 쓰기도 한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므로 전법륜(轉法輪)이라 한다. 전법륜인은 양손을 가슴까지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의 끝을 동그랗게 맞댄 후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다. 왼손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맞대고 검지는 자연스럽게 펴고, 약지와 소지는 안으로 말아 쥔다. 왼손 바닥은 가슴 안으로 향하게 한다. 오른손과 왼손은 맞대어 가슴에서 모은 상태이다.(도판11 <초전법륜상>의 수인과 도판13의 도해 참조.) 일반적인 <설법상>의 수인은 양손을 가슴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든 모습인데, 이때 어느 손가락을 엄지와 붙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의 수인으로 분파하기도 한지만, 여기서 설법인의 핵심은 동그랗게 말아 쥐어 법신과 그 작용을 의미하는 ‘원상圓相’을 만든다는 것이다. 원상(또는 여의주)의 형상은 ‘깨달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불교의 도상이다.
(도판14) 붓다께서 머무신 간다 꾸티에 촛불 공양을 올리는 모습. 기원정사.
(다음 호에 계속)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
<필자 소개>
강소연
중앙승가대학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성보문화재위원회 위원, 조계종 국제위원, 문화창달위원회 위원,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등. 30년 간 오로지 불교문화재를 연구한 베테랑 학자. (경력)홍익대 겸임교수(10년 근속),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BK연구원,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조선일보 공채 전임기자, 대만 국립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장학연구원, 교토대학 대학원 연구조교 역임. (수상) 일본 최고 명예학술상 ‘국화상’ 논문상,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 (저서)『명화에서 길을 찾다-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시공아트), 『사찰불화 명작강의』(불광출판사),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부엔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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