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엮음 『한글 아함경』게송 중심으로.
수행본기경 하권
4. 유람하는 품(遊觀品)
왕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다니면서 유람이나 하여라.”
이에 태자는 생각하였다. ‘오랫동안 깊은 궁전에 있으니 나가서 유람하고 싶었는데, 참으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구나.’
동쪽 성문으로 나가자, 난타팔라는 노인으로 화현(化現)하여 길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살갗은 늘어지고, 얼굴은 주름지고, 몸은 야위고, 등은 굽고, 뼈마디는 휘어져 있었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람으로 세상에 사는 데에 이런 늙음이라는 근심이 있었구나. 어리석은 사람이야 탐내고 애착하겠지만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태자는 탄식하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늙으면 빛깔이 쇠하고
병이 들면 윤기가 없어지고
피부는 늘어지고 쭈그러들어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누나.
늙으면 모습이 변하여
마치 낡은 수레와 같을 것이니
법은 능히 괴로움 없앨 수 있으므로
마땅히 힘써 배워야 하리.
목숨은 밤낮으로 다하려 하므로
언제나 부지런히 힘써야 하리.
세간의 진리는 덧없는 것이므로
미혹하여 어둠 속에 떨어지지 말아야 하리.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등불을 켜고
스스로 익히면서 지혜를 구하여
번뇌를 떠나 더러움에 물들지 말며
촛불을 밝혀 도의 경지를 살피리라.
태자는 해가 바뀌어 다시 유람하고 싶어 수레를 타고 남쪽 성문 밖으로 나가자,
천신(天神)이 병든 사람으로 화현하여 길옆에 있었다. 그의 몸은 파리하고 배는 불룩하고 몸은 누렇게 뜬 채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였다. 온갖 마디는 쑤시고 아홉 구멍은 문드러져 부정(不淨)한 것이 저절로 흘러나와 몸을 적시고 있었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부귀하게 살면서 지극히 값진 음식을 먹고 마음을 제멋대로 하여 욕락에 빠져 스스로 깨달지 못하였구나.”
이에 태자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몸이야말로 단단하지 않구나.
언제나 네 가지 요소와 함께하고
아홉 구멍에서는 부정한 것이 흐르며
늙음이 있고 병이 있도다.
천상에 태어남도 모두 덧없고
인간은 늙음과 병듦의 근심거리이며
몸을 살펴보니 마치 물거품 같으니
세간에서 무엇을 즐길 수 있으리.
해가 바뀌어 또 다시 유람하고 싶어 태자가 서쪽 성문 밖으로 나가자, 천신이 화현하여 죽은 사람으로 나타났다. 시종이 태자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였다.
죽음이란, 수명이 다하여 정신이 떠나가는 것이니, 네 가지 요소가 흘어지고 혼신은 편안하지 못합니다. 바람의 요소가 떠나가서 숨이 끊어지고, 불의 요소가 소멸하여 몸이 차가워집니다. 바람이 먼저 떠나고 불이 그 다음이며, 다시 혼령이 떠나 신체는 빳빳해지고 더 이상 아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에 태자는 길게 탄식하며 게송을 말하였다.
늙음 병듦 죽음을 자세히 살피면서
나는 마음으로 길게 탄식하노라.
인생에는 영원한 것이 없으니
나의 몸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이 몸이 죽게 되면
정신도 그 형상이 없을 것이니
가령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죄와 복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세상으로 끝날 것이 아니건만
어리석어서 오래 살기를 애착하니
이로 인해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며
몸은 죽어도 정신만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허공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며
산이나 돌 틈에 들어가도 안 되리니
죽음을 벗어나서 더 이상 받지 않을 곳
그 어디에도 없어라.
해가 바뀌자 다시 유람하고 싶어 수레를 준비하여 북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 그때 천신이 다시 사문(沙門)으로 화현하여 나타났다. 그는 법복을 입고 발우를 지니고 차분히 걸었다.
태자가 시종에게 사문에 대해 묻자, 시종이 사문에 대해 말하였다.
“사문이란, 집과 처자를 떠나 애욕을 버리고 육정(六情)을 끊고, 계율을 지켜 번뇌를 일으키는 않으며, 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태자는 말을 하길, “훌륭하구나. 오직 이것만이 즐길 만한 일이로구나.!
이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애달프도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있다니,
정신은 지은 죄에 다시 들어가
여러 고통 겪으며 지나는구나.
이제는 모든 고통 없애고
태어남과 늙음 병듦 죽음 없애며
다시는 갈애와 만나지 않고
영원히 열반을 얻게 하리라.
왕은 태자가 밖을 나갔다 오면 음식조차 먹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자, 생각을 흩어지게 하려고 농사짓는 일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태자는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서 밭갈이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흙덩이가 부서지면서 벌레가 나왔다. 그런데 천신이 다시 변화를 부려 소에게 목으로 흙덩이를 휘저어서 벌레들이 우르르 떨어지게 하여 까마귀가 따라가 쪼아 먹게 하였다.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고 공작이 그 뱀을 쪼아 먹고 매가 날아 와 공작을 채어가고, 다시 수리가 와서 그 매를 잡아먹게 하였다.
태자는 잠부나무 아래서 일심으로 선정에 들고 있었다. 왕은 즉시 태자를 마중하러 갔다. 그런데 멀리서 태자를 보니, 나뭇가지가 굽어서 그늘을 만들고 신령스럽게 빛남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태자에게 예배하였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