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판01 좌) 금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기瑞氣, 제따 숲을 사기 위해 급고독 장자가 가지고 온 금 조각. <녹원전법상>의 부분,《통도사 팔상탱》, 1775년,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도판02 우) <사위성의 기적>의 부분, 아잔타 석굴 제7굴.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즐거운 느낌을 괴로움으로 보아야 하며, 괴로운 느낌을 화살로 보아야 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무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런 비구는 바르게 보는 자라고 부른다.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고, 족쇄를 풀었으며, 바르게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낸다.
즐거움을 괴로움으로 보고, 괴로움을 화살로 보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저 평화로움에서 그것의 무상을 인식한다면, 그 수행자야 말로 바르게 보는 자이니, 그는 느낌을 완전하게 안다. 그는 느낌을 완전하게 알아, 지금 여기서 번뇌를 여의니, 몸이 무너질 때에도 법에 확고하기에, 지혜의 완성자는 헤아릴 수 없다.”
-붓다께서 기원정사에 머무실 때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쌍윳따 니까야36』
죽음을 두려워하는 장자에게
급고독 장자가 말년에 중병에 걸려 극심한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는, 사리불 존자를 청해 와주십사고 간청한다. 사리불 존자와 급고독 장자는 참으로 오래된 인연의 각별한 사이였다. 급고독 장자가 죽림정사(왕사성)에 계신 붓다를 만나고 이곳 사위성의 기원정사를 건립하는 데 있어, 핵심적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이 사리불 존자이다. 사리불 존자는, 먼저 붓다를 사위성으로 모시는 여정의 사전 답사, 정사의 장소 물색, 기초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급고독 장자와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하였던 귀중한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장자여, 어떻게 견딜만합니까?”
이렇게 묻는 사리불 존자에게, 장자는 "시퍼런 칼로 머리를 쪼기는 듯, 예리한 칼로 배를 도려내는 듯 아픕니다.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다고 알아질 뿐입니다."라고 호소한다.
- 『급고독(아나타삔디까) 경』
장자가 나이가 들고 중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자 사리불을 찾게 된다. “죽어서 다음 생에 어찌 될지 무섭습니다”라고 고 몸이 무너지는 고통과 내생의 두려움을 호소한다. 그러자 사리불 존자는 장자에게 ”그대는 삿된 의견이 없고, 나쁜 계행이 없고, 삿된 사유, 삿된 말, 삿된 행위, 삿된 생계, 삿된 정진 등이 없으므로 죽어서 나쁜 곳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대는 계정혜를 지키며 정말 잘 살았기 때문에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초기 불전에는『아나타삔다까(급고독) 경Anāthapiṇḍika-sutta』라는 제명으로 유사한 내용이 경전이 약 3개(쌍윳따니까야55:26, 쌍윳따니까야55:27, 맛지마니까야143)에 나오는데, 본 글에서는 이들의 내용을 취합, 요약 제시함.>
“장자여, 부처님을 불신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그러한 형태의 불신이 그대에게는 없습니다. 대신에 그대는 부처님에 대한 아주 정확함을 지닌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있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나는 그러한 형태의 아주 정확함을 지닌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판03좌, 도판04우) 급고독 장자의 집터, <캇치치 쿠티(Kachchi Kuti)>. 기원정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자의 거주지. 남동쪽으로 100미터 지점에 <앙굴리말라 스투파>가 있다.
죽음의 순간, 몸에 집착하지 마라!
이에 사리불 존자는 ”그대는 부처님, 담마(법), 상가, 바른 계행에 대한 아주 정확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 믿음을 관찰하면 괴로운 느낌이 가라앉을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힘센 사람이 시퍼런 칼로 머리를 쪼기는 듯, 예리한 칼로 배를 도려내는 듯, 숯불 구덩이에서 굽고 태우는 듯”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장자에게 사리불은 “나는 눈에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앎은 눈에 의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으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귀, 코, 혀, 몸 등 6식, 6촉, 6느낌에 취착하지 말라 하고, 다음으로 4대와 5온, 세상과 무색계에 대해서도 취착하지 않으리라, 또 아는 마음이 의지하지 않으리라 라고 공부 지으라는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상기시켜 준다.
“장자여, 이렇게 공부 하여야 한다! 즉, 눈에 집착하지 않으면 눈의 경계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고, 귀·코·혀·몸·뜻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들의 경계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는다. 빛깔에 집착하지 않으면 빛깔의 경계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고, 소리·냄새·맛·닿음·법에 집착 하지 않으면 그 것들의 경계에 의해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는다. 땅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면 땅 경계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고, 물·불·바람·허공·의식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 것들의 경계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는다. 몸에 집착하지 않으면 몸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들에 의해 탐욕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는다.”
연기緣起로 해체해서 통찰, 그러면 고통은 사라진다
이에 장자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너무 좋은 법문이라고 칭송하며, 더 이상 집착과 비탄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시다림 법문이 있을까! 마지막 순간에도 나(탐욕)를 덩어리로 보면 고통이지만, 연기緣起로 해체해서 보면 그 고통에서 분리될 수 있다는 요지이다. 죽음의 길목에서 자꾸만 고통에 떨어지는 장자에게 그는 통찰지의 마음을 친절하고 세심하게 계속 상기시켜 준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붓다 설법의 요지이건만, 이것이 가장 필요할 때 다시 들으니 감동이 남다르다. 오랜 친구를 위한 간절한 설법이 있은 지 얼마 안가, 장자는 드디어 몸이 무너져 죽게 된다.
(도판05) 급고독 장자(정면에서 보아 왼쪽)와 제따 태자(오른쪽). 붓다를 상징하는 간다 쿠띠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서 있다. 합장을 하고 붓다의 설법을 경청하고 있다. <사위성의 기원정사 Jetavana of Sravasti>의 부분. 산치대탑.
죽음의 순간, ‘알아차림의 확립밖에는 길이 없다’라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상기시켜주며 다잡아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니! 장자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인연이 부러울 뿐이다. 사대(四大: 지수화풍) 육신이 흩어지는 생생한 죽음의 순간, 사리불 존자의 이 같은 설법 내용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준다. 몸(지수화풍)이 해체되는 고통과 사후의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팔정도를 잘 지켜 통찰지를 열심히 닦아야겠다. 그래서 몸이 내가 아님을 알고, 나와 고통을 분리해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세존이시여, 수닷따(급고독 장자의 본명)라는 청신사가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아난다여, 수닷따 청신사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잃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 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으로 향하는 자들」『대반열반경(D16l)』
일래자(一來者)란,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돌아올 자라는 뜻이다. 10가지 족쇄를 몇 가지나 끊었나에 따라 예류자((預流者, 수다원), 일래자(一來者, 사다함), 불환자(不還者, 아나함), 아라한(阿羅漢)으로 나뉘게 된다. 예류자는 흐름에 든 자라는 뜻이고, 불환자는 정거천에 태어나서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자를 말하며, 아라한은 완전히 번뇌가 다 한 자를 뜻한다. 10가지 족쇄란, ①유신견(sakkāyadiṭṭhi)·②의심(vicikicchā)·③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계금취견, sīlabbataparāmāso)· ④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acchando)·⑤악의(byāpādo)·⑥색계에 대한 탐욕(rūparāgo)·⑦무색계에 대한 탐욕 (arūparāgo)·⑧자만(māno)·⑨들뜸(uddhaccaṃ)·⑩무명(avijjā)을 말한다.
급고독 장자는 살아생전 공덕의 과보로 도솔천에 천신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원력으로 만들어진 기원정사를 한 바퀴 돌며, 청정한 법과 법왕이 머무는 곳이라며 찬송(지난 <연재17> 일부 게재)을 남긴다.
붓다, 인생 후반의 안식처: 기원정사
붓다는 35세에 득도하시고 그 후 45년간을 인도 중원을 다니시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시다가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교화의 45년간은 크게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의 중생교화와 관련 깊은 곳이 왕사성의 죽림정사이겠고, 후반과 관련 깊은 곳이 사위성의 기원정사이겠다. 붓다가 기원정사에 머무셨던 때는 약 57세쯤이다. 그리고 인생의 말년 19년을 편안하고 쾌적한 이곳에서 보내셨으며, 어느 곳에서 보다 많은 설법이 하셨다. 그리고 그 내용은 무르익었을 것이다. 이렇게 교화의 설법이 꽃 피울 수 있게 그 환경을 마련해준 장본인이 급고독 장자이다. 물론 급고독 장자를 도와 땅을 보시하며 협조해준 제따 태자가 있겠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이 바로 태자의 아버지이자 당시 코살라 국의 왕인 빠세나디(프라세나지트Prasenajit, 한문으로는 파사익波斯匿) 왕이다. 빠세나디 왕의 전폭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붓다께서는 편안한 거주가 가능했으며, 제자들도 붓다의 교법을 체계화하는 초석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소중한 인연들의 전생의 서원과 현생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공덕으로, 결국 붓다의 소중한 가르침은 현재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지금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있다.
‘교화의 꽃’ 피게 한 두 주인공: 급고독 장자와 제따 태자
“금화로 덮은 만큼 땅을 주겠다”라는 제따 태자의 농담에 실제로 급고독 장자가 금화를 마차에 가득 싣고 와서 덮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지난 <연재16>에 상세 소개함.)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하겠다는 장자의 저돌적이고도 간절한 행위에 태자는 크게 감동을 받고, 땅은 물론 정사를 짓는데 필요한 목재까지 기부하게 된다. 붓다의 사원을 짓는 보시의 영광에 급고독 장자의 온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의 가족들, 사업 친구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정사 건립이라는 축제에 참여하였다.
(도판06) 급고독장자(좌)와 제따태자(우), <사위성의 기적>의 부분, 산치대탑.
(도판07) 급고독장자(좌)와 제따태자(우), <녹원전법상>의 부분,《통도사팔상탱》
(도판08) 조선시대의 관모와 옷을 입고 신하들의 천개 시중을 받고 있는 모습의 급고독장자(좌)와 제따태자(우). <녹원전법상>의 부분,《송광사 팔상탱》
그래서 기원정사는 굳이 ‘제따와나 아나따삔디카사 아라마Jetavane Anāthapindikassa ārma’라고 불린다. 이는 ‘제따 숲 속의 아나따삔디카(급고독) 장자의 사원’이란 뜻이다. 붓다께서 직접 이렇게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제따 태자와 급고독 장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두 사람의 관대함이 모범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초기 불교미술인 산치대탑(기원전후 시기, 도판05 도판06)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정사의 묘사와 함께 두 사람이 항상 같이 등장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도상의 전통은 참으로 유구한 세월을 건너, 우리나라 팔상탱에도 그 모습을 어김없이 드러낸다(도판07, 08, 09).
(도판09) 우리나라 팔상탱 속의 ‘급고독 장자와 제따 태자’. <녹원전법상>의 부분,《통도사 팔상탱》, 1775년,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도판10) 금덩이에서 나오는 찬란한 빛. 제따 숲을 사기 위해, 코끼리가 등에 금을 실어 나르고 있다. (도판09)의 부분. 작품정보 상동.
두 사람의 ‘헌신의 영광’, 불교미술 속에 영원히 남아
현재까지도 전해오는 조선시대의『도해 팔상록』을 보면, 제7장「녹원전법상」에 기원정사(祇園精舍), 금을 깔아 절터를 사다(布金置地), 붓다를 뵈운 수달(급고독)장자(須達見佛)의 대목에 위에 소개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팔상탱의 한 구석에는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금을 까는 장면과 두 사람(급고독 장자와 제따 태자)’이 등장한다. 단, 초기 불교 미술에서 ‘금을 실은 우차牛車’였는데, 팔상탱에서는 ‘금을 등에 실은 코끼리’를 발견할 수 있다.(도판10, 11) 그리고 금에서는 상서로운 오색의 서기瑞氣가 뿜어져 나온다. 이러한 광채의 표현은 팔상탱에서 부처와 보살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기 표현과 동일하다. 이는 장자의 공덕이 그저 단순한 물질의 재보시를 넘어, 성스러운 법보시임을 나타낸다.
(도판11좌, 도판12우) 금을 실은 흰 코끼리, 그 오른쪽 밑으로 급고독장자와 제따태자가 보인다. <녹원전법상>의 부분,《쌍계사 팔상탱》 1728, 쌍계사성보박물관 소장.
(다음 호에 계속)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
<필자 소개>
강소연
중앙승가대학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성보문화재위원회 위원, 조계종 국제위원, 문화창달위원회 위원,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등. 30년 간 오로지 불교문화재를 연구한 베테랑 학자. (경력)홍익대 겸임교수(10년 근속),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BK연구원,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조선일보 공채 전임기자, 대만 국립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장학연구원, 교토대학 대학원 연구조교 역임. (수상) 일본 최고 명예학술상 ‘국화상’ 논문상,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 (저서)『명화에서 길을 찾다-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시공아트), 『사찰불화 명작강의』(불광출판사),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부엔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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