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스님
황룡사 가는 길.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군데군데 새어 나오는 불빛, 그러나 집집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짤랑짤랑 주장자 소리만이 어두워져 오는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신라 애장왕 시절, 그러나 13살의 어린 왕을 섭정하던 숙부 언승이 난을 일으켜 도적떼들의 난동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민심이 흉흉하였다. 노스님은 후회하고 있었다.
'삼랑사 주지 스님이 자고 떠나라고 잡을 때 그곳에서 그냥 묵을 걸 잘못했다.'고 뉘우치며 두려운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발길에 채이는 게 있었다. 스님의 온몸은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 고양이였다. 스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고양이가 혀로 스님의 손을 핥았다. 부드러웠다.
스님은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자 고양이도 스님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스님이 몇 번을 주장자로 내쫓았으나 고양이는 달아나려 하지 않았다. 길은 점차로 험해지고 있었다. 얼굴은 거센 눈보라에 얼었고, 눈길은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입으로는 연신 염불을 외웠다. 품 속에는 고양이를 안은 채......천엄사 근처에서였다.
바람결에 아기 울음소리가 실려 왔다. 처음에는 고양이 울음소린가 싶어 귀를 기울였으나 분명히 아기 울음소리였다. 그러나 사방 어디에도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스님의 몸에는 다시 소름이 돋기 시작하였다. 빨리 절에 당도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지친 몸, 얼른 눈을 들어 올려다 본 천엄사는 천만리나 멀어 보였다. 그러자 숲속에서 다시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왔다.
'설령 나를 홀리는 귀신의 속임수라고 해도 외면할 수는 없다.'
ⓒ장명확
노스님은 고양이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울음소리가 나는 풀숲으로 다가갔다. 어찌하랴. 붉게 물든 눈, 그곳에는 금방 해산을 한 여인이 아기의 탯줄을 거머잡고 있었다. 스님은 앞뒤 가리지 않고 아기의 탯줄을 끊었다. 찬바람은 쉴 새 없이 밀려왔다.
"정신 차려요."
다행히 여인의 얇은 치마저고리에 감긴 아기의 몸은 온기가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벌거숭이인 여인의 몸은 꽁꽁 얼어 있었다. 스님은 정신없이 여인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인은 아무런 요동이 없었다. 스님은 자신이 출가사문이라는 것도 잊은 채 여인의 코와 이마, 그리고 뺨을 문지르다가 결국엔 입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스님의 두루마기를 한 겹 더 두른 아기는 쌔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천엄사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여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숨은 붙어 있는데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업고서 천엄사까지 갈까도 생각했으나 의외로 여인의 몸은 무거웠다. 그만큼 노스님이 지친 탓도 있었다. 스님은 다시 필사적으로 여인의 전신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여인의 얼굴을 살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거지 여인이었다.
순간 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나머지 옷을 벗었다. 여인은 옷을 입게 되었고, 이제 스님이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제야 체내에 온기가 도는지 여인은 가느다랗게 숨을 몰아쉬며 신음소리를 냈다. 여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스님은 여인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짧은 비명과 함께 여인이 깨어났다. 그녀는 환히 웃고 있는 스님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은 내리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나?"
"아기는‥‥‥‥.”
옆에서 곤히 잠든 아기를 본 여인의 눈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쩐 일로 이 산골까지‥‥‥‥”
“아기 낳을 곳이 없어 천엄사를 찾아왔는데‥‥‥ 바람이 세서 그런지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그만 스님께 이런 은혜를‥‥‥‥.”
여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은혜는 무슨‥‥‥ 내가 이 벌거벗은 몸이라 빨리 절로 가야 할 텐데 움직일 수 있겠나?"
"이 옷을 입고 가셔야지요. 이 눈 속에‥‥‥‥.”
"나야 괜찮네. 어서 일어나서 천엄사로 가세‥‥‥‥.”
그러나 아무리 두들겨도 천엄사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기야 바람소리가 그들의 인기척을 모두 쓸어가버린 탓이었다. 스님의 몸은 점점 기력을 잃고 있었다. 여기서 쓰러져 새벽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여 황룡사로 가는 편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살은 요 문 뒤에 숨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게. 난 벌거숭이라서‥‥‥‥"
“스님!"
스님은 거지 여인의 외침을 뒤로하고 안간힘을 다해 다시 황룡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몸은 천근이었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황룡사에 이르렀을 때 스님은 절 문을 두드리려고 하였으나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마음뿐이었다.
그때 고양이가 스님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따뜻했다. 스님은 고양이와 함께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일주문을 돌아 헛간으로 들어선 스님은 거적을 몸에 감고 고양이와 함께 누웠다. 고양이의 체온이 스님의 언 몸을 녹였다. 후일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는 이 우습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떠돌았다. 애장왕은 그를 국사로 임명했다.
그가 바로 신라의 국사 정수 스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