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뒤늦게 찾은 고귀한 길…부지런히 걸을 것
“이 기자님은 사야도 페야께 궁금한 점이 있을 텐데요. 이제 한 달 수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지만 수행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이번 수행의 마지막 인터뷰라고 생각하고 여쭈어볼 것이 있으면 어서 여쭈세요.”
귀국 인사 차 사야도채에 들른 내게 혜송스님이 돌연 인터뷰를 권하신다. 시작과 끝은 우리들의 관념이 만들어 놓은 것일 뿐, 수행에 시작과 끝이 없다는 뜻이리라. 사야도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반겨하시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오직 수행에 대한 질문과 지도라고 혜송스님은 설명하신다.
미얀마 불교를 상징하는 쉐다공 대탑. 뜨거운 불심의 현장이다.
“사야도 페야, 저는 수행 마지막 일주일 동안 등의 통증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통증을 관찰하는 것도 훌륭한 수행의 하나라는 가르침이 있었기에 그에 따라 정진을 했습니다만, 막상 수행센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수행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또 통증이나 기타 다른 현상이 나타나면 어찌해야 할 지 약간의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수행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수행센터를 떠나기 직전에 이루어진 인터뷰였지만, 사야도께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을 해주신다. 먼 나라에서 찾아온 풋수행자에 대한 연민이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통증을 바라보고 들여다보는 수행은 어떤 면에서는 수행을 하는 데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관찰하다보면 일체의 망상이나 잡념, 혼침 등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직 일어나는 쑤심, 찌름, 저림 등의 느낌 등을 알아차리는데 충실하면 집중도 잘 되고 사띠를 잘 놓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통증이 찾아오면 짜증을 내거나 수행에 해태심을 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증이 찾아오면 집중해서 알아차림을 할 아주 좋은 환경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사띠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야도는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는 한국인 제자를 위해 이전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이어나간다.
“사실 수행이 어려워지는 것은 통증을 극복하고 난 후입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이 극복되면, 즉 몸이 수행을 할 수 있는 좋은 상태로 만들어지면 그때는 신수심법 4념처에 대해 집중력을 갖고 더 세밀하게 사띠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이치는 활을 쏠 때 과녁이 크고 작음에 따라 더욱 더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통증을 관찰하는 것은 과녁이 아주 큰 경우에 해당합니다. 과녁이 크므로 잘 보이고 활을 쏠 때 조금 주의가 흐트러져도 과녁에 화살을 쉽게 꽂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녁이 작아졌을 때, 즉 통증과 같은 강력한 느낌이 아닌 호흡의 흐름,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미세한 느낌과 마음의 조화 등을 관찰하는 것은 아주 작은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과녁을 맞힐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진전이 될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증을 관찰하는 수행을 통해 집중력과 정진력을 일단 크게 신장시키고 사띠의 힘을 길러놓는다면 나중에 과녁이 작아져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국해서 일상생활로 돌아가더라도 사띠를 놓치지 않도록 세심히 정진해야 합니다. 오랜 전생부터의 공덕으로 나렌다(필자의 비구명)는 이곳 미얀마에와서 수행을 배우고 정진하는 공덕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더 정진하고, 다시 이곳에 와서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담마마마까에서의 마지막 수행은 이렇게 끝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동안 공양 준비를 해주었던 공양간 봉사자들이 아쉬운 눈길로 배웅의 손짓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거듭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하나 같이 선량한 눈길, 선량한 표정들이다. 부처님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을 만큼 불심이 두터운 나라의 이 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담마마마까 수행센터의 정문을 나서면, 하루 동안의 미얀마 주요 수행센터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인솔자인 김진태 교수와 도이 법사님의 배려로 준비된 프로그램이다. 빤띠따라마, 마하시센터, 따따마란디, 참매, 모곡 센터 등 양곤 일대의 주요 수행센터를 돌아보며 수행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오늘 밤에는 쉐다공에 오르는 것도 예정이 되어 있다. 한 달 내내 수행센터 안에서 지내다가 마지막 날 수행센터 순례와 양곤 인근 불교성지 순례에 나서니 마치 소풍을 가는 듯한 느낌이다.
마하시센터에 있는 마하시 선사께서 생전에 사용했던 꾸띠의 모습.
차에 오르니, 피곤이 밀려온다. 담마마마까에서의 마지막 날인 어제 밤 김진태 교수님께서 나의 꾸띠로 찾아와 이런저런 가르침을 주셨고,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기록하느라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이다.
김 교수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사성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성제는 고(苦)와 고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이고, 고와 고의 소멸은 연기적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집성제가 원인이고 고성제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괴로움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므로 바꿀 수 없으며 다만 관찰할 뿐이라는 말씀이 귓전에 큰 울림으로 맴돈다.
그렇다면 고와 고의 소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와 고의 소멸은 쾌락주의나 고행주의로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직 ‘반야’, 즉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얻은 수혜(修慧)로서 이루어진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듣(聞)거나 사유(思)해서 생기는 지혜로는 고와 고의 소멸이 성취되지 않으며, 오직 목숨을 건 수행의 결과로서 생겨난 지혜(修慧)에 의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한 찰나 전 자기의 오온, 즉 내면의 흐름과 변화를 보는 수행이다. 까시나와 같이 내면의 표상을 만들어 집중하는 사마타 수행과는 그 목적지가 다르다. 부처님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오온을 관찰하셨다. 물질과 정신을 관찰하여 실재하는 성품을 보시고 반야바라밀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실재성품(Paramattha)를 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실재성품은 항상 있는 자성이나 실체가 아니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지혜로 보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김 교수는 이를 삼법인의 지혜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상의 지혜, 고의 지혜, 무아의 지혜다.
고의 소멸을 위해서는 삼법인의 지혜가 필요하고, 삼법인의 지혜는 듣거나 사유해서는 얻어질 수 없으며, 오직 수행을 해야만 얻어진다. 수행을 해서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야만 고의 소멸에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하여 김 교수는 세 가지 해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무상해탈, 무원해탈, 공해탈이 그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성자의 흐름에 든다는 것은 믿음, 집중력, 지혜의 성향에 따라 삼법인 중에 하나를 작의하여 삼해탈 중에 하나의 해탈을 성취하는 것이다. 무상, 고, 무아 이 세 가지 지혜 중에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해탈의 문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인상을 여읜 해탈(無相解脫), 바람을 여읜 해탈(無願解脫), 있음을 여읜 해탈(空解脫)로 구분할 수 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무상해탈에 대해 “무상하다고 정신활동을 일으키는 자는 확신이 강해져서 믿음의 능력이 생기는데,”(Vism.21.75)라고 하여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무원해탈에 대해서는 “괴로운 것이라고 정신활동을 일으키는 자는 안온이 강해져서 삼매의 능력을 얻게 되는데,”(Vism.21.75)라 하여 삼매를 강조하고 있다. 공해탈에 대해서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정신활동을 일으키는 자는 영지가 강해져서 지혜의 능력을 얻게 되는데,”(Vism.21.75)라며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 세 가지 해탈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지혜에 의한 해탈, 즉 공해탈이다.
‘상카루뻭카냐나(Saṅkhārupekkhāñāṇa: 行舍智)’는 위빠사나 16단계 지혜 중에서 범부로서는 최고의 지혜인데, 이 11단계 상카루뻭카냐나 단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성자의 흐름, 즉 수다원도에 들어선다. ‘돌이킬 수 없는 혈통전환의 앎(gotrabhuñāṇa)’이 성취된 단계를 이룬 것이다.
상카루뻭카냐나는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라고 번역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디빵까라부처님(燃燈佛) 당시에 성자의 흐름에 들어 오래지 않아서 윤회를 완전히 끝낼 수 있었으나, 멈추었다. 이유는 보살의 삶을 거쳐 부처가 되기 위해서였다.
범부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고의 소멸을 목표로 둔다면, 일차적으로 성자의 흐름, 수다원에 들어서야 한다. 일단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일곱 생 이내에 윤회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카루뻭카냐나 단계에서 성자의 흐름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혈통전환의 앎이 생겨난다.”(Vism.22.5)고 표현한다. 이 ‘혈통전환의 앎’을 ‘고뜨라부냐나(gotrabhuñāṇa)’라고 한다. 혈통전환이라는 것은 범부에서 성자로 계보가 바뀌는 것을 말하는데, 한번 혈통이 바뀌면 다시는 범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수다원과를 이루면 최대 일곱 생 이내에 아라한과를 성취해 윤회를 끝내고 마침내 고의 소멸을 실현하게 된다.
그런데 고와 고의 소멸을 실현하기 위해 성자의 흐름에 들려면 반드시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한다. 김진태 교수는 어젯밤, 반야심경 중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항목을 설명했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에서 ‘조견(照見)’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불교는 물론 동아시아 불교 권에서는 이 조견을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照見五蘊皆空)”라고 번역하고 있어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조견은 ‘오온개공’의 ‘앞’이 아닌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의 ‘뒤’에 붙여서 해석해야 한다고 김진태 교수는 강조한다. 실제로 산스크리트 원전에도 조견은 “gambhiram prajna-paramita-caryam caramano vy-avalokayati sma.”로 되어 있어 “심 반야바라밀다시 행 행시 조견(深 般若波羅蜜多時 行 行時 照見)”의 뜻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해석과는 순서도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김진태 교수는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조견’의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며, 따라서 동아시아 3국 불교에서 가장 중시는 반야심경부터 잘못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조견은 산스크리트어로 ‘위야로까야띠(vy-avalokayati)’인데, 여기서 위야(vy-a)는 ‘잘 가려서’라는 뜻이고, 아와(ava)는 ‘떨어져서’라는 뜻으로 객관적이라는 의미이며, 록(lok)은 본다는 뜻이다. 이를 종합하면 관찰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관찰하는가? 이는 로까(loka)를 관찰한다는 것이다. 로까는 세상 또는 세간을 의미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자기오온을 말한다. 그래서 조견은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조견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자기오온을 수행주제로서 관찰하는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지론이다. 자기오온을 잘 가려서 관찰하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사띠빳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사띠를 기반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인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신, 수, 심, 법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실재성품에 자기를 통해서 보는 것, 즉 반야를 성취하여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반야용선에 올라탈 승차권(반야)을 확보하는 것, 이 단계가 바로 ‘돌이킬 수 없는 혈통전환의 앎(gotrabhuñāṇa)’ 즉 수다원 도과를 성취하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수행이란 실재성품을 보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다. 실재성품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보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흐름과 변화를 잘 관찰해야 한다. 관찰은 다름 아닌 사띠(sati)를 말한다. 사띠하는 방법은 신, 수, 심, 법 네 가지 관찰이 있다. 단지 비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여 지혜를 얻는다. 그런데 지혜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궁극의 목적인 열반을 추구해야 한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무상, 고, 무아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해탈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순간이었다. 도와 과, 열반으로 가는 길, 부처님께서 걸었던 그 길을 어렴풋하게나마 찾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길이 얼마나 힘겹고 지난한 길이라는 것도 짧지만 한 달 동안의 수행을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적지 않은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 열어주시고 걸어가셨던, 그리고 제자와 뭇 중생들에게 간절하게 가르쳐주고 일어주셨던 그 길을, 30년 불교기자로 살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그 길을 반백이 되어서야 비로소 찾았으니, 감회가 새롭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이제라도 이 길을 찾았으니, 한 걸음 한 걸음 쉼 없이 걸어가는 일만 남았다. 지치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고,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갈 각오다. 그리고 이 위대하고 고귀한 길에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 하기 위해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그것만이 그 어느 것보다 고귀한 바라밀 공덕이 될 것이므로.
이제 한 글자, 한 글자 매일매일 틈틈이 적어온 나의 수행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수행처에서 사야도와 인터뷰할 때처럼, 설사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은 점이 있더라도 솔직하고 정직하게 기록한 글이니, 수행의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오류가 있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사두! 사두! 사두! <끝>
탁발하는 비구들을 향해 맨발을 벗고 합장하며 예경을 올리고 있는 미얀마 어린이의 합장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