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마마까에서의 마지막 일요일이 밝았다. 이곳에서 수행할 날짜가 오늘을 포함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짙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미얀마에 보낸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공항에서 곧바로 수행센터로 들어온 후 비구계를 받고 테라와다 비구가 되어 탁발하러 나갔던 것, 환계 후 사야도의 허락을 얻어 인근 시장을 한 차례 다녀온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외출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센터에서만 보낸 한 달이었다.
오직 수행을 위해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면서 보낸, 내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따금씩 해태심이 슬그머니 일어나 더 가열 차게 수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살아온 세월 가운데,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변화와 흐름을 이토록 치열하게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특히 위대한 분인 줄은 알았지만 부처님이 이렇게까지 위대하고, 위대하고, 또 위대한 분이라는 점을 절절하게 깨달은 시간이었다. 많은 선배 테라와다 수행자들이 ‘부처님, 그분, 고마운 분!’이라는 표현을 왜 그토록 자주 사용하고 있는지를 이곳에 와서 직접 위빠사나 수행을 해보니 알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내겐 이번 미얀마에서의 수행이 가져다 준 소중한 선물들이다. 
 

 

사실 미얀마는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세계에서 가장 잘 조성되어 있는 수행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의 핵심은 훌륭한 스승들의 존재와 그들의 적확한 지도 시스템 구축이다. 훌륭한 스승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과 주석서에 입각해서 왜곡 없이 전하는 분이며, 자신이 체험한 살아 있는 경험을 전해주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친절하고 바르게 점검해주는 분을 말한다. 사실 이런 조건을 갖춘 스승을 만나는 것은 한 두 생의 공덕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홍복에 해당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미얀마에는 이런 스승들이 많이 현존해 계신다. 담마마마까의 에인다까 사야도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다.

담마마마까는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을 따르는 수행처이다. 마하시 수행법의 특징은 예컨대 호흡을 할 때 들이쉬고 내쉼에 따라 배가 부풀고 꺼지는 현상에 대해 ‘일어남’, ‘사라짐’의 명칭을 붙이는 것이다. 또한 마하시 수행법은 처음에 사마타 수행을 하고 나서 위빠사나 수행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바로 위빠사나 수행으로 들어가는 수행법이다. 이런 수행법을 주석서에서는 순수 위빠사나라고 부른다. 마하시 수행법은 호흡뿐 만이 아니라 수행 중에 타나는 모든 작용이나 대상도 알아차림한다.

 

순수 위빠사나에서 일어남, 사라짐, 들림, 보임, 앎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대상에 효과적으로 집중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다. 그런데 이런 명칭들을 얼마나 계속해서 붙여야 하는지는 수행자 스스로 판단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에 따라서는 명칭 붙이기가 계속되어야 할 경우도 있고, 한두 번으로 그쳐야 할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이 차츰 발전하여 명칭 없이 수행을 하고자 한다면 대상들의 느낌을 아는 것으로 수행하면 된다. 하나의 대상에는 모양과 성품이 붙어 있다. 개념과 실재가 붙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같은 것을 두고 무엇을 알아차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양이라고 하는 개념이 나쁘거나 하열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양 없는 대상이 없으므로 모양도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모양을 알아차릴 때와 성품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필요에 따라서 활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수행자가 처음부터 성품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 수행을 해보면 그렇지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모양을 알아차리고 나아가 모양 안에 있는 성품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집중을 위해 개념도 필요하지만 지혜의 눈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실재하는 성품을 대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명칭을 붙이는 것의 장점은 우선 개념화가 되어 대상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받아들이기가 좋다는 점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므로 확실하고 뚜렷하게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마음이 대상의 알아차림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관념에 빠져 대상의 성품을 알아차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명칭을 붙여 수행의 진전을 이루다가, 어느 정도 수행이 익숙해진 단계에 이르면 명칭 없이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점을 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수행자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물론 이 판단에도 스승의 도움을 받는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담마마마까에서 수행을 하면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은 앉음수행과 걸음수행을 한 시간씩 똑같은 비중으로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인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이라고 하면 좌선수행, 즉 앉아서 수행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런지 좀처럼 걸음수행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앉음수행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사야도나 선배수행자들은 철저하게 제시된 수행일정표를 따를 것을 권한다. 앉음수행이 잘 된다고 더 하지 말고, 걸음수행이 잘 안 된다고 시간을 줄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일단 수행센터에 들어가면 정해진 시간표를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시간표가 정해지기 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행센터 안에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시간표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들이 앉음수행을 할 때 걸음수행을 하고, 다른 사람이 걸음수행을 할 때 앉음수행을 한다면 자신은 물론 상대에게도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의 수행을 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오니 마음이 바빠진다. 그동안 해왔던 수행의 흐름을 떠나는 순간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이어가고, 궁금한 점을 묻고 물어서 한국에 가서도 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자양분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이 소중한 경험을 한국의 다른 불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등이 마지막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순수 위빠사나 수행법을 배우고 실행에 옮겼지만 그것이 몸에 배기까지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바심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여명조차 밝아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떨치고 일어나 꾸띠를 나섰다. 캄캄한 밤길을 군데군데 켜 있는 가로등불이 희미하게 밝혀주고 있다. 내가 머문 꾸띠의 앞 길 이름은 ‘사랑의 길’이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이 사랑의 길을 분주하게 오갔다. 이 길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지은 연유는 무엇일까. 부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중생들에게 주신 사랑의 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이라도 실천에 옮기라는 뜻은 아닐까.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반야, 즉 지혜를 발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 반야 없는 자비는 이상적인 공덕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던 이 길의 의미가 이 순간 이토록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곧 이곳을 떠나게 된다는 마음이 일으킨 조화일지도 모르겠다.

 

벌써 법당은 수행자들도 가득 차 있다. 저마다 모기 망을 내리고 그 안에서 앉아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와 흐름을 사띠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들이야말로 설사 금생에 도와 과를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든 위대한 수행자들이 아닌가.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조심 걸음수행을 하며 내 좌복이 놓여있는 곳으로 합장을 한 채 다가갔다.
일어남 사라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호흡의 흐름을 관찰했다. 호흡관찰, 즉 일어남 사라짐은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주 관찰 대상이다. 호흡이란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니, 호흡을 관찰하라는 것은 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으라는 의미다. 미얀마 남자수행자들의 기침 소리가 갈수록 더해간다. 기침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기침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놓고 거리낌 없이 기침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화의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기침이 다른 이의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기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큰 통증 없이 한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사띠를 챙기기는 했지만 스미듯 찾아온 망상의 침투에 서너 차례 맥없이 뚫리고 말았다. 사띠를 놓치지 않는 것, 결코 쉽지가 않다. 하긴 쉬우면 그게 수행이겠는가. 수행은 본래 잘 안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이 자꾸 귓전을 맴돈다.

 

오늘은 주로 꾸띠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행처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니, 함께 수행하러 온 수행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필요성이 나타나고 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번 미얀마 수행에서 느낀 점과 소회 등을 함께 나눴다.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실 수행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은 수행센터에서는 엄격하게 제한된다. 수행자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활동하기를 좋아하는 것,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사교를 즐기는 것, 감각을 제어하지 않는 것, 음식을 절제하지 않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포기하기가 녹록치 않는 것들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에인다까 사야도와 혜송스님이 인도 출장을 마치고 담마마마까로 돌아오셨다. 두 분 다 인도의 한 대학에서 불교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박사가 아무리 좋은 들, 수행센터의 사야도와 창건주라는 두 분이 일궈온 본래의 위치에 견주겠는가.
수행센터의 최고 지도자들께서 돌아오시자, 담마마마까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저녁 8시~9시의 마지막 앉음수행 시간에도 많은 수행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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