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호사카 슌지 지음/ 김호성 옮김
서기 1203년은 인도사(인도불교사)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춘 ‘불교 멸망의 해’로 기록된다. 누구나 알듯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불교의 나라일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인도에서 불교 인구는 1% 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으면 놀라움과 함께 ‘왜 그럴까?’하는 의아심을 저버리지 못한다.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은 ‘인도에는 불교유적만 있고 불교는 없더라.’라는 말을 남긴다. 불교는 인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다른 인도 종교와 달리 아시아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전해져 크게 발전하였다.
약 2600년 전, 인도에서 석가모니 붓다가 출현하면서 시작한 불교는 이전의 종교와 사람들이 신 관념 또는 신 개념에 붙들려 있는 것을 비판하였다. 불교는 인류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창조주 관념을 부정한다. 대신 그 자리에 바로 인간을 포함한 개개의 생명을 치환시킨다. 그야말로 세계관의 혁명이다. 불교는 위계를 부정하는 새로운 세계관인 연기법을 제시하고 있다. 붓다는 연기법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계몽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상가’로 불리는 종교공동체를 탄생시킨다.
붓다의 서거 후 100년이나 200년 후의 마우리야 왕조는 인도 역사 상 최대의 영토로 확장한다. 이 왕조의 아소카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덕분에 불교는 인도 아대륙(印度 亞大陸) 전체에 속해있는 마우리야 왕국에 뿌리를 확고하게 내렸다. 나아가 아소카는 아대륙을 넘어 멀리는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불교 전도단을 파견했다. 이후의 불교는 아대륙의 모든 지역에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인도 전역의 많은 불교 유적을 통해서도 불교가 인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얼마만큼의 크게 영향을 미친 종교인지를 알게 해준다. 인도 아대륙뿐만이 아니라 아대륙을 넘어 동으로는 중앙아시아를 지나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까지 전해졌고, 서로는 한때 우즈베크 등에 이르기까지, 남으로는 스리랑카, 그리고 북으로는 몽골에 이르렀다.
그런데 현재 인도에서는 정작 불교가 미미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나 일본, 한국은 물론 남방의 상좌부권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해온 불교가 왜 하필 고향인 인도에서는 멸망했을까. 이 문제는 모든 불교학자와 인류학자, 불교신자들이 1000여년간 궁금하게 여겨온 불교사(史)상 최대의 미스터리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슬람의 침공으로 망했다고도 하고, 밀교화된 불교가 더 이상 힌두교와의 차별성을 띄지 못해서 힌두교로 흡수됐다고도 하고, 또 스님들이 나란다대학에서 공부만 열심히 해서 민중들이 외면했다는 등 수많은 설명들이 난무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답을 내린 학자는 거의 없었다.
일본 레이타구대 호사카 슌지 교수가 쓴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한걸음더 펴냄)가 동국대 김호성 교수의 번역으로 지난 2008년 7월에 출간됐다. 이 책은 불교가 쇠망할 당시의 인도이슬람 최고(最古) 자료인 <차츠나마>를 통해서 불교의 쇠망요인을 분석, 7~8세기 서인도불교의 상황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차츠나마>는 711년 이슬람이 인도에서 처음으로 침공한 신드지역의 이슬람 전파 경위를 담고 있는 사료이다.
호사카 슌지는 지금까지 제기돼온 기존의 불교쇠망 원인들을 모두 소개하면서 그 이유가 그럴듯하면서도 틀린 이유를 조목조목 제기한다. 간단하게 그 원인과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이슬람의 침공으로 망했다는 설이다. 그런데 이슬람 침공으로 불교가 쇠망했다면, 왜 다른 종교들 즉 힌두교나 자이나교는 왜 망하지 않고 건재했을까. 설령 사원이나 승려가 전멸당했다 하더라도 불교를 지탱하는 신도들이 있었다면 충분히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따라서 이 설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둘째 불교가 가진 합리주의, 혹은 이성주의적 경향(현실부정의 경향까지 포함)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도 유력한 설이다. 대승불교가 대단히 심원하고 고상한 철학을 발달시켰지만, 그 무렵에는 대사원 깊숙한 곳에서 논의된 것일 뿐 일반 민중들에게는 보급되지 않았다. 이 같은 ‘헝그리 정신’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힌두교와의 경쟁에서 지고 말았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가설의 오류는, 당시 사료를 뒤져보면 금방 드러난다. <차츠나마>에 등장하는 당시 인도사회에서 불교는 결코 민중들에게 유리되지 않았고, 밀교적인 의식까지 수용해 민중들의 삶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셋째 밀교화된 불교가 더 이상 힌두교와의 차별성을 띠지 못해 힌두교로 흡수됐다는 설이다. 그러나 불교는 가정의례나 일상의례를 발달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힌두교사회에서 불우했던 하층민이나 이민족, 상인계층이나 정통성을 갖지 못한 하층출신의 왕(대표적인 예가 아쇼카왕), 이민족의 지배자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훨씬 더 많은 계층에 흡수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훨씬 더 큰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러니까 이 같은 가설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면, 도대체 불교는 왜 인도에서 멸망한 것일까. 호사카 슌지 교수는 이 책에서 “이슬람 침략 이후 안티힌두교라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이슬람이 대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도에서 불교의 정치적 역할은 소멸하고 말았다”는 매우 흥미롭고 동시에 타당해 보이는 주장을 제기한다. 호사카 슌지 교수에 따르면, 당시 인도사회에서 불교의 역할은 힌두교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지탱되고 있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나름대로 균형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침입하자, 불교가 인도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던 안티힌두교로서의 역할이 불안정해졌다. 당시 불교는 안팎으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모으기 위해 불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안티 카스트세력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온 불교를 탄압함으로써 자신의 존속기반인 힌두교를 강화할 수 있었다. 무슬림 또한 불교도들에게 개종을 요구했다. 그런데 <차츠나마>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이슬람이 쳐들어와 “개종, 공물, 죽음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불교 승려들은 당시 정치 지도자에게 항복을 선택하도록 권유했다는 사실이다. 불교도들은 불상생계를 중시했기 때문에 전쟁을 거부했고, 차라리 이슬람의 지배에 항복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를 선택했다. 당시 스님들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이교도의 탄압과 강제개종 후 불교는 이 지역에서 소멸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불교가 쇠망한 것은 이슬람의 침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무력적인 탄압 때문만이 아니라 이슬람이 불교가 인도에서 지닌 사회적 지분을 너무도 강력하게 삼켜버렸기 때문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을 든 이슬람은 불교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으로 힌두교와의 대립관계를 형성했고, 이 둘의 팽팽한 대결구도 속에 불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호사카 슌지 교수는 “일찍이 불교가 융성했던 지역과 오늘날의 이슬람 우세지역 사이에서 아주 깊은 관련성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인도사회에서 반(反)힌두나 반(反)바라문 지상주의 세력이었던 불교와 이슬람교의 사회적 기능의 유사성 때문이다. 불교가 인도사회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켰던 원인이 반힌두 즉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는 평등사상 때문이었듯이, 불교가 쇠망했던 이유 또한 보다 더 강력한 평등사상을 내세운 이슬람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의 재미는 책의 결말이 불교 멸망의 미스터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책의 스토리는 인도에 이어 일본, 미국으로까지 이어진다. 호사카 슌지 교수가 이 주제를 연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흥미롭게도 1995년 3월 도쿄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사건이었다. 옴진리교는 변칙적이고 독선적이면서도 참된 불교를 표방하고 있었다. 불교교리를 빙자하여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한 이 신흥종교의 살인행위를 보면서 당시 일본 불교계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찬성도 하지 않았지만, 반론이나 비난 역시 거의 없었다.
호사카 슌지 교수는 이 사건을 보면서 일본불교의 멸망 조짐을 발견했다. 종교적 자정능력을 잃어버리고 사회로부터 유리된 불교. 호사카 슌지 교수는 “어쩌면 일본불교 또한 인도불교와 같은 운명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나를 휩쌌다”고 설명했다.
‘왜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이슬람의 파괴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힌두교나 자이나교 등도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칼날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불교만이 재기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로보아 외적 요인보다는 내적요인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내적 원인으로는 불교는 성격 상 조직충성도를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 믿음체계보다 지혜중심으로 지식계급적 한계가 있었다는 점, 일반인의 생활의례 정착에 소홀했다는 점, 세속적 욕망에 반하는 냉혹한 무아의 교리가 대중들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했다는 점, 불교의 힌두화 가속으로 정체성을 상실한 점, 힌두교의 불교박탈전략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 거대한 승원중심으로 민중과 유리된 점, 마찬가지로 언어적으로 비대중적인 산스크리뜨화의 진행에 따른 대중과 유리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냉혹한 무아(無我) 교리, 즉 세속적 욕망에 반하는 불교만의 교리체계가 도리어 불교멸망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불교의 쇠망의 원인으로서 제시된 불교의 결점이나 약점이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장점이나 강점이 되어 작용할 수도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특히 과학의 발달과 열린 정보사회로의 진행 그리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사회환경은 오히려 불교의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가치관과 부합하여 큰 경쟁력을 제공해줄 소지가 크다. 마찬가지로 인류역사에서 현대인은 세계와 인간의 문제에서 리얼리즘(寫實主義:realism)적인 지적 방향과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리얼리즘이란 신화적, 공상적 대상(신, 악마, 유령 등)이나 기적과 같은 초현실적 사건이 아닌 가능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을 추구하는 입장을 말한다. 때문에 불교가 미래 인류의 대안적 삶의 내용과 방향이 될 종교로 선택될 가능성이 그 어떤 종교보다도 클 수 있다. 물론 이런 가능성은 철저하고도 정교한 준비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발아할 수 있는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