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사진 = 장명확
전법의 자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그 신사의 모습은 내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었나 보다. 지금도 가끔 그의 모습이 생각되니 말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 잡담을 하는 사람, 주간 집지를 훓어보는 사람....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가지였다. 그러나 내 앞에 몇 사람 건너 앉아 있는 그 중년 신사의 모습은 내 주의를 끌 정도로 특이한 바가 있었다. 차림새가 점잖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시끄러운 터미널 대합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책이 아니라 ‘금강경’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염불하는 보살님을 만나면 반가운 성미라서 나는 그 신사 옆으로 다가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 나는 또다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가 불교 신자였다면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불교 신자가 아니었다. 서울 어느 교회에서 열심히 기독교를 전도하고 있는 목사였던 것이다.
그가 무슨 이유로 불교경전을 읽고 있는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으니라. 불교가 좋아서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에서 불교로 전향하기 위해서 불교경전을 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금강경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경전을 읽어 보는 것은 ‘적을 알기 위해서’인 것이다.
19세기 초부터 서구에서는 비교종교학이란 것이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동서양의 종교를 비교적으로 연구한 학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동양종교에 대해서 기독교의 우월성을 밝히려는 것이 그 목적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종교학자들 스스로가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불교인의 다른 종교애 대한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불교에 대한 다른 종교의 도전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려는 기독교 전도사의 노력은 참으로 끈질기다. 일주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그들은 규칙적으로 대문을 두드린다. 기독교 전도사의 방문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그들의 태도에 화를 내기에 앞서 우리들은 먼저 그들의 끈질긴 인내심과 자기 종교에 대한 확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불교인으로서 남에게 그 정도의 열성을 갖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본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전했다고 하더라고 “어느 절에서 어떠한 불사를 하니 자손을 위해서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정도가 고작이 아니었을까? 진정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경험이 있을까. “나라가 이러하니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기독교인은 강조한다. “죄를 사할 길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우리 불교인으로서 남에게 인생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올바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 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지나간 불교사를 되돌아볼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법(求法)의 길에 목숨을 잃고 전법(傳法)의 길에 목숨을 바쳤는지 모른다. 그렇게 흘린 피와 땀에 의해 오늘의 볼교가 있게 된 것이다. 내일의 불교는 오늘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리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줄로 알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불교를 단절시킬 어리석음이다.
부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은 곧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며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곧 부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 불교인들도 가슴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