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사진 = 장명확
불교와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
불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두 종교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그대로 수긍할 수가 없다. 매우 중요한 본질적 차이를 그들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근본사상을 깊이 파악한 학자라면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 우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신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하고, 불교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覺)’을 중심으로 한다고.
이런 견지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교리조직을 연역해 보자. 기독교에 의하면, 우주와 인간은 창조신이 무(無)로부터 창조한 종속적 피조물이다(宇宙論). 그런데도 인간이 만일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주(主)’라고 여긴다면, 이런 교만은 신의 뜻을 어긴 죄(原罪)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고, 죄에는 필연적으로 괴로운 형벌이 따를 것이다.(人間觀). 따라서 죄악에 빠진 인류는 오직 신앙을 통한 신의 은총과 인간의 속죄에 의해서만 구원을 바랄 수가 있다. 그러나 불교에 의하면, 인간은 진리에 대한 무지의 상태 속에 있다(無明). 이런 무명이 있게 되면 그것에 의해 생사의 괴로움이 일어난다(緣起論). 따라서 괴로움에 빠진 인간은 오직 깨달음에 입각한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창조신에 대한 믿음’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두 전제는 기독교와 불교의 교리 조직을 연역하는데 별로 문제성이 없다. 따라서 이것을 두 종교의 본질적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명제라고 볼 만하다. 그러나 이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두 종교는 애초에 왜 그렇게 상이한 입장에 서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는 근본적 차이에 대한 밝힘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는 신의 아들로서 인류의 구속(救贖)을 위해 인간으로 수육(受肉)하여 십자가를 지고 사후에 부활하신 분이다. 신은 오직 그를 통해서만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종교학적 견지에서 보면, 그는 기독교를 창시한 한 인간으로서 그의 신관은 구약성서의 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고오타마 붓다(Gotfama Buddha)'는 하늘의 계시라든가 오랜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곧 진리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당시의 바라문들을 향해 그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삼명(三明)을 갖춘 바라문으로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범천(梵天)을 본 자가 있는가?‘ 더구나 당시는 여러 종교사상이 난립하여 저마다 자기 입장을 진리라고 주장하여 사람들을 심한 종교적 방황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길은 오직 자기 스스로 깊은 사유와 체험을 통해 ’깨달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고오타마 붓다가 정통적인 바라문의 신을 따르지 않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근본으로 삼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불교와 기독교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두 종교의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근본을 제쳐두고 지말적인 것을 아무리 정확하게 비교한다고 해도 참다운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할 적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어떤 특정 종교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불교나 기독교라는 것도 궁극적 진리를 탐구해 들어간 인간 문화 활동의 하나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견지에서 진지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입장에 설 때 우리는 자기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무의미함을 발견하고, 남의 종교에 대한 진정한 관용과 이해도 스스러워질 것이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