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방법이 정확한가? 노력하고 있는가?”
어제의 수행이 미진했으므로 오늘은 더 분발해야 한다. 새벽 2시 30분에 눈을 떴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알람을 한 시간 빠르게 조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자리에 누워 의식적으로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했다. 누워서 하는 수행은 보통 집중이 잘 되지 않는 편인데, 의외로 집중이 잘 되었다. 누운 채 10여분쯤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주시하다가 졸림이 밀려오면서 시나브로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 순간에도 ‘잠이 옴, 잠이 옴…’을 스무 차례 정도는 되뇌었던 것 같다.
‘사띠를 하면서 잠이 들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더니 과연 그렇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깊이 잠들 수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바람소리에 흔들리는 야자나무가 꾸띠의 양철지붕을 쓸어내리는 소리에 몇 번은 놀라 깼을 것이다.
탁발에 나서기 전에 담마마마까 정문 안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한국인 비구들의 발. 발의 모양만 봐도 초자 비구임을 알 수 있다.
꾸띠에서 앉음수행을 하다가 새벽 정진을 위해 가사를 걸치고 천천히 꾸띠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새벽이라기보다는 칠흑 같은 밤이다. 으스스 춥다. 그런데도 법당은 수행자들로 절반쯤 차있다. 도와 과를 이루려는 수행자들의 열기로 법당 안은 그런대로 포근한 기운이 자욱하다.
부처님 전에 3배를 올린 후 곧바로 앉음수행으로 들어갔다. 시작 5분까지는 망상을 알아차림 하면서 사띠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망상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호흡이 미세해지고, 무엇인가 맑고 반투명한 느낌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그 상태에서 들이 쉬고 내쉬는 호흡의 흐름이 뚜렷하게 느껴지면서 고요와 집중이 이어진다. 아, 이런 뚜렷하고 고요함이 분명한 상태를 성(惺)이라고 하고 적(寂)이라 하는가?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태가 잠깐 동안만 이어지고 이내 흐려지는 것이다. 분명했다가 흐려지는 상태를 몇 차례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왜 흐려지는 것일까? 혼침도 없고 망상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 상태를 유지하여 성성적적한 상태, 즉 사띠가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게 하는 위리야(정진력)가 부족한 탓일까? 몇 번을 거듭해 이 상태를 체험하면서 동시에 그 연유를 생각했다. 아, 혹시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비록 눈을 감고 있지만 눈꺼풀 안의 눈동자가 움직이면서 성적한 상태가 흐려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또한 확실하지가 않다. 오전 8~9시 앉음수행 시간에 다시 한 번 시도해보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3시부터 진행되는 인터뷰 시간에 사야도께 직접 여쭈어 보아야겠다.
오전 8~9시 정진은 큰 진전 없이 마쳤다. 새벽 4시 정진 때의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며 사띠를 챙겨 나갔지만 앉음수행을 시작하자마자 망상이 줄을 잇는다. 10여 분 넘게 이어지는 망상 때문에 깊은 집중을 하지 못한 채 망상과 호흡 관찰 사이를 수 없이 오갔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조금씩 사띠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망상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몸속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는데, 오전에 몇 차례 느꼈던 것처럼 맑고 반들거리는 대리석처럼 반투명한 느낌의 광경은 떠오르지 않는다. 흠~, 왜 이럴까? 호흡을 관찰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그러나 이 또한 망상일진저. 그래도 원인을 찾아야 하기에 좀 더 세밀하게 공기의 흐름을 관찰했다. 그래도 도무지 새벽 정진에서 경험했던 상태는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좌선 중에 느꼈던 파동은 이따금씩 머리 뒷부분에서 일어났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새벽 정진에서 느꼈던 맑고 투명한 느낌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다시 그 느낌이 나타날 때를 기다린다. 다시 그런 장면이 나타나면 그것을 세밀히 관찰하리라는 각오를 다진다. 그 순간 다시 그 느낌이 일어난다. 아, 이것이었나? 호흡이 가늘어지면서 아랫배까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고, 명치부분까지 왔다가, 다시 코끝까지 올라와, 공기가 들어가고 나가는 감각을, 나는 시나브로 콧구멍을 통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수행이 사띠가 아닌 사마타 수행으로 전환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한 현상은 일종의 미약한 삐띠 현상일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이 의문은 아무래도 사야도께 인터뷰를 신청해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인터뷰를 해야 하는 데 실천하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게으른 수행자가 되었으나 인터뷰가 여전히 부담으로 다가오는 탓이다. 인터뷰가 왜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겸연쩍기가 짝이 없다.
점심 공양을 마친 후 12시 앉음수행 시간에 다시 법당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은 체기 때문에 점심 공양을 마친 직후의 앉음수행 시간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니, 12시 정진은 오랜 만의 일이다. 새벽정진 때의 의문과 한계를 내 힘으로 돌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었다. 이 시간 법당에는 수행자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기침소리 등 소음이 적어서 수행하기에는 더 좋다.
앉자마자 의욕적으로 일어남 사라짐을 집중해서 알아차림 했다. 한두 번의 망상이 지나고 어느 정도 집중이 되어가자 이번에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졸음이 두어 차례 찾아온다. 점심 공양 후의 정진이라 혼침이 올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지만 며칠 만에 찾아온 혼침에 내심 머쓱해진다. 나를 테라와다 불교로 이끌어주시고, 이곳 미얀마 수행처에서 수행하고 비구계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도이 장로님은 늘 ‘수행하는데 절대로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게다가 오늘은 오른쪽 등에 강한 통증까지 느껴진다. 낮 12시의 정진에는 이상하게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불청객들, 즉 혼침과 통증이 가뭄에 물 만난 듯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일어남 사라짐 대신 통증에 마음을 두어 알아차리니 통증이 잠시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다시 아파오기를 반복한다. 마치 파도가 밀려 나갔다가 다시 밀려오듯이.
담마마마까 수행센터 곳곳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식물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초목들이다.
오후 3시 50분. 인터뷰를 위해 사야도실로 향했다. 함께 비구계를 받은 한국 비구 다섯 명이 모두 사야도실로 향했다. 이중에는 인터뷰를 할 사람도, 그냥 인터뷰 내용을 들어 보려고 온 사람도 있다. 이밖에도 한국인 재가수행자 몇 명도 자리에 함께 했다. 이렇게 나의 세 번째 인터뷰가 시작됐다.
“사야도 페야, 나렌다 비구입니다. 저는 오늘 새벽 정신에서 나타났던 현상에 대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10분 여간 망상이 잇따라 일어나 망상들과 힘겹게 싸우고 난 후, 망상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호흡이 자연스러워진 후 사띠를 계속해나가니, 어느 순간 호흡이 미세해지면서 맑고 투명한 느낌이 마치 고급 대리석을 대하는 것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곧 뿌옇게 흐려졌고, 다시 맑고 투명해졌다가 흐려지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맑고 투명해지는 그 순간을 강하게 사띠하는 데 실패하곤 했습니다. 이것이 어떤 현상인지 궁금합니다.”
“무엇이든지 일어나고 나타났다면 즉각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느끼고 나타난 그것에 절대로 연연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사띠는 일어나는 대로 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어떤 현상이든 마음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바로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렌다는 사띠를 놓친 것입니다.”
“우문 같지만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사띠를 하다보면 눈을 감았더라도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환해지거나 어두움 같은 것이 느껴져서 집중이 흐트러질 때가 있습니다. 사띠할 때 눈동자를 잘 관리하는 좋은 방법은 없겠습니까?”
“하하하, 눈의 감각이 느껴졌다는 것, 눈에서 환하고 어두운 현상이 느껴졌다는 것, 그러니까 그것을 보았다는 것은 마음이 호흡에 있지 않고 눈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호흡 관찰에 집중해 사띠했다면 마음은 당연히 배의 일어남 사라짐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눈의 변화를 느꼈다는 것은 마음이 눈으로 옮겨갔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사띠를 놓친 것입니다. 사띠의 힘과 정진력이 미약하다는 증거입니다. 알아차림에 더 집중하세요.”
결론적으로 아직도 멀었다는, 사띠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경책의 말씀이시다. 오늘 정진의 의문은 결국 사야도와의 인터뷰를 통해 ‘싱겁게’ 해소되었다. 사야도께서는 수행자 몇 명의 인터뷰를 더 진행한 후 사야도실에 와 있는 한국의 수행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수행지도를 길게 해 주셨다.
“정확하게 가르쳐 준대로 수행하면 빠르게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숙달되면 나중에는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사야도에게는 수행자의 수행을 지도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무엇이든 언제나 사야도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가르쳐준 대로, 그대로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특히 미얀마 수행자들에 비해 한국의 수행자들은 수행에 대한 이해나 수준이 아직 미약한 편이므로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법이 정확한가? 노력하고 있는가?’가 수행목적의 성취 여부를 가린다는 말씀이다. 사야도의 지도의 말씀이 계속된다.
“사띠가 이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띠가 이어지면 저절로 물질과 정신의 분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사띠를 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의자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일으킴, 일어나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는 의도를 일으킴, 손을 움직임, 몸을 바로 하려는 의도를 일으킴, 몸을 바르게 함, 두 발을 차례로 바닥으로 내려놓으려는 의도를 일으킴, 두 발을 차례로 바닥에 내려놓음, 두 손으로 의자의 양옆 받침대를 짚으려는 의도를 일으킴. 양옆 받침대를 두 손으로 짚음, 일어서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숙이려는 의도를 일으킴, 고개를 앞으로 숙임, 짚은 두 팔과 다리를 펴 일어서려는 의도를 일으킴, 일어섬 등입니다. 이런 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사띠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천천히 사띠하면서 마음과 몸이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앉음수행을 할 때에도 호흡을 주관찰 대상으로 하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을 빠짐없이 정확하게 사띠해야 합니다. 망상이든, 통증이든 뭐든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 일어남 사라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사띠를 놓치지 않고 사띠를 이어가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사띠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집중력이 일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과 과거에 지은 바라밀 공덕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보고, 망상이나 통증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다시 배로 돌아오는 것을 철저하고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앉음수행만이 아니라 걸음수행도 똑같은 방법과 자세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띠의 힘, 집중력이 늘어나서 일상생활에서의 사띠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오후 6시 너머까지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다른 수행센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도이 장로님이 귀띔해주신다. 담마마마까 에인다까 사야도의 한국 수행자에 대한 간절하고도 친절한 배려와 연민심이 한껏 펼쳐진 자리였다. 땡큐! 사야도 페야.(페야는 존칭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