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냉돌의 각훈(覺訓)
추운 하늬바람이 세차게 창문을 두드릴 때 온돌의 맛은 천하제일이다.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묻고 허리를 누이면 한없는 게으름....., 한국 사람이 활동적이 못 됨은 온돌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스님이 한 분 있다. 해동고승전을 지은 고려 고종대의 각훈(覺訓 또는 覺月)이라는 스님이다. 해동고승전은 현재 권1. 권2만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거질(巨秩)의 대작이었다. 그는 또 시문(詩文)도 잘하여 그의 시평(失)이 사림(士林)에 전할 정도였다.
그렇게 학덕이 높은 각훈이 귀정사(歸正寺)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 길이 없었다. 이름을 물어도 답이 없고 온 곳을 물어도 말이 없다. 종일 말없이 앉아 선정(禪定)을 행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묵행자(默行者)라고 불렀다. 그러나 후학들이 책을 들고 찾아가 질문하면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에도 각훈은 방석 한 장, 옷 한 벌로 냉돌 위에 앉아 있었다. 어느 몹시 추운 날 사람들은 그가 얼어 죽을까봐, 밖에 나간 틈을 타서 방에 불을 지펴 준 일이 있다. 밖에서 돌아온 각훈은 이것을 보고 기쁜 빛도 싫은 빛도 안 했다. 말없이 밖에 나가 돌과 자갈을 주어 오더니 아궁이를 아예 봉해 버리고는 다시 처음과 같이 앉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온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수행인이라고 해도 추위의 괴로움을 못 느낄 까닭은 없다. 얼음장 같은 냉돌 위에 각훈은 왜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그는 한 행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수행하는 자는 추위 때문에 뜻을 해이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수행한다는 자들이 호사(豪奢)를 누리고 권문에 드나들면서 절이나 짓게 하니, 이 어찌 수행이라고 하겠느냐? 깊이 명심해야 하느니라.”
그가 냉돌에서 일부러 고행하던 뜻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당시 승려들의 게으름과 타락상에 대한 그의 통탄은 그러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던가.
추운 겨울 밤, 온돌의 고마움이 느껴지고 게으름이 저절로 피워질 때마다 나는 문득 느껴지곤 한다. 얼음장 같은 냉돌방에서 추위를 견디던 각훈의 그 아픔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