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불교란 눈을 뜨는 종교다
여는 말
성철스님은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줄이면
마음 심(心)자라고 했다.
달라이라마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을 돕고 사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불교, 부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법정스님은 내게 숫타니파타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이 다 들어있다고 말씀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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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주인은 신(神)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입장, 신에 대한 관념이나
형이상학적인 견해는 불타의 기본 입장에서 보면
개념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과 진리 외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불타의 유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란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헤매는
일상적인 자기가 아니라 본래적인 청정한 자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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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이 세계 종교일지라도
사막지방에서 일어난 것은 ‘기도의 종교’이지만,
인도의 여러 종교처럼 몬순지방의 것은 ‘명상의 종교’다.
불교학자 헤르만 벡크가 지적한 말이다.
기도의 경우는 기도의 대상으로서 인격적인
창조신의 존재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는 으레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난다.
신앙의 부조리는 기도의 종교에서 그 본질을 이룬다.
거기에서는 이성보다는 신앙의 우위를 존중한다.
그러나 불타는 자기 계발의 극한에 이르러,
몸소 깨달음을 실현한다. 그것은 자신의 존엄성과
인간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므로 불합리한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불교의 기본 성격은 인간으로서
만인에게 공통된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기에 이른다.
즉,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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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것. 불교는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불교다. 초기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라는 뜻에서다.
자기에게서 시작해 이웃과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것은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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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생명이요 빛이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라고 한
이 말에 불교의 진면목이 있다.
길과 생명과 빛은 저마다의 것이지
특정한 사람만의 것일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고,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목마른 사람을 우물 가까이는 인도할 수 있지만,
마시고 안 마시는 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렸다.
부처님이란 창조주도 절대자도 아닌,
‘깨달은 사람’ ‘눈 뜬 사람’을 가리킨다.
<말과 침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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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불교를 알려면 불교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불교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면 진정한 불교를 알 수 없다.
부처나 보살에 얽매이면 참부처나 진짜 보살을 볼 수 없다.
참선하는 사람은 오로지 참선만이 전부이고 염불해서는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또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만이
오로지 지름길이며 참선해서는 구제받을 수 없다고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오직 전부라고 고집한다면
전체를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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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죽의 세계에서, 껍데기에서 다 벗어나라.
왜 남에게 의지하고 타인의 졸개가 되려 하는가.
부처라 하더라도,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타인일 뿐이다. 그 가르침을 통해서
오직 내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불교는 부처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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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부처님 제자라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있다.
경전을 단순한 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차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면 귓속의 귀에 울려오는
말씀으로 대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법보(法寶)가 된다.
종이책은 쥐도 쏠고, 불에 타고, 물에 젖어 없어지지만
법문은 그 무엇으로도 망가뜨릴 수 없는 영원한 빛이다.
그 빛을 가까이하면 우리들 눈이 맑아지고 세상이 밝게 열린다.
경전을 가까이하라. 그래서 새로운 삶을 이루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중에서
맺는 말
25년 전에 인도 영축산을 오를 때였다.
노상강도가 많으니 위험하다며 인도 경찰이 안내했다.
인도 경찰이 내게 농담을 했다.
“나는 아침마다 붓다가 됩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웃으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침마다 눈을 뜨니까요.”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 하고 외쳤다.
숫타니파타 같은 초기경전에는 부처님이란 말 대신,
‘눈을 뜬 이여.’ ‘거룩한 이여.’라고 부처님을 불렀음이었다.
붓다(눈을 뜬 이)란 말이 2500년 동안 인도에 살아 있었다니
글을 밥 삼아 쓰는 내게는 깨달음이었고 놀라움이었다.
2019년이 도래했다. 눈을 뜨자. 새해 첫날의 해와 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