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鳳林寺)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飛鳳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 「봉림사 안내판」 첫 부분

 

 

무려 1,360여 년 전에 ‘봉황이 날아들었다’는 화성시 남양읍에 위치한 봉림사를 찾았습니다. 최고의 길지가 아니면 봉황이 날아들지 않는다는 명당에 지어진 절이건만, 세월이 너무 흐른 탓일까요? 큰길에서 일주문에 닿기까지 민가는 없고, 이리저리 구부러진 좁은 길 좌우에는 가구공장과 대기업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 업체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지 않은 때만 해도 사하촌(寺下村)이었고, 이쪽  저쪽 절 땅에 소작하는 농민들이 밭과 과수원으로 농사를 지었으나 짧은 10년 만에 이렇게 변한 곳일 겁니다.

 

안내판에는 봉림사가 자리한 산 이름을 비봉산으로 바꾸었다 했으나, 지적에 명시된 산 이름은 무봉산(舞鳳山)입니다. 이 무슨 일입니까? 이전에 봉황이 나타나 춤추었다며 사람을 끌어들이려 한 무봉산을 이곳 말고도 멀지 않은 두 곳에 다녀왔었습니다. 한 곳은 봉림사 터로부터 28km 떨어진 화성시 동탄면에 위치한 무봉산이고, 다른 무봉산은 25km 떨어진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곳의 무봉산에는 각각 오래 전에 창건된 절이 있는데, 동탄면 무봉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만의사(萬儀寺)가 있고, 진위면 무봉산에는 고려 태조 25년(서기 942년)에 창건된 만기사(萬奇寺)가 있습니다.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한 것이라 말합니다.
봉림사 창건은 신라 진덕여왕 재위 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진덕여왕은 ‘팔을 내리면 무릎까지 닿아 부처님을 닮은 보살이라 불려졌다’고 기록되었고, ‘비담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고구려 백제의 침공을 막아내고자 당나라와 나당동맹(羅唐同盟)을 체결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세운 왕입니다. 이때가 태평성대라서 봉황이 나타났고, 그것을 기리고자 봉림사를 지었는가 싶습니다.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만의사는 고려 때 중창한 기록이 나오고, 고려 말에 왕의 장수와 국가의 복을 기원한 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환란에서 벗어나게 된 삼국통일을 맞이하여 안녕을 찾았기에 봉황이 나타났고, 이를 기리고자 그 터에 만의사를 지었을 듯싶습니다.  

 

서기 942년 즈음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왕족, 호족, 관료, 중인, 평민, 승려, 속인, 남녀노소, 귀천 등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고, 널리 일반 대중에게 잔치를 베풀고 물품을 골고루 나누어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엶으로써 불교 신앙이 넓게 확산되어, 백성들은 사상적으로 뭉침이 일어날 때입니다. 이때가 태평성대라서 봉황이 나타났고, 이를 기리고자 만기사를 지었는가 싶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는다’는 전설이 사실이라면 (세 곳 모두) 봉황도 깃들기 좋은 곳으로 예전부터 알고 있던 참에 텃새처럼 대대손손 살 작정으로 왔든지, 터 잡고 살 곳을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띄었는데 보금자리로 이보다 좋은 곳이 없는 그런 곳일 것입니다.

 

 

 

 

봉황은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일까요? 여기저기 찾아보니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때 나타났다는 글이 있고, 그 뒤에 몇 천 년 간 회자된 봉황은 ‘태평성대인 요순시대에 나타났었다’는 말만 있을 뿐 실제로 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를 보건데 요나라와 순나라가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도 아니고, 그런 나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사실처럼 각색된 신화라 생각하면 봉황은 상상의 동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봉황이 상상의 동물이라 하더라도, 배부르고 등 따뜻한 채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살아가는 태평성대가 오기를 바라고, 절을 지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넓게 펴려는 원력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주저 없이 봉황을 무봉산에 불러들였을 것입니다. 옛사람의 이런 생각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봉림사뿐만 아니라, 만의사와 만기사를 찾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예불한다면 능히 아름다운 봉황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봉림사를 찾은 날도 천왕문 앞에는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우락부락한 근육의 금강역사가 위압적인 자세로 봉림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천왕문 안 사천왕도 금강역사와 마찬가지로 두 눈을 한껏 부라렸기에 덩달아 눈썹도 사정없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맹수가 포효하는 듯 크게 벌린 입은 보는 이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불법을 지키겠다며 귀의하였고, 선한 사람을 보호하는 신장이기에 불자들과 같이하는 친한 벗입니다.
천왕문에 들어서서 다문천왕(명패에 따르면)을 보는 순간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부처님의 모든 법문을 듣고자 하는 원력을 갖고 귀의한 다문천왕이 두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 때문입니다. 탑을 든 천왕이 다문천왕이라거나, 비파를 든 사천왕이 다문천왕이라며 자기 말이 맞는다는 주장을 펴지만, 그것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얼굴을 붉히겠습니까? 그런 것은 학자님들께서 하실 일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사천왕 모두를 보셨겠지만,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십억의 사람 중에 증장천왕을 본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증장천왕이 이 곳 남섬부주(지구)의 중생을 관찰하고 제도하는 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국천왕·광목천왕·다문천왕은 지구와 관계없는 곳에 머무르는 탓에 그 곳을 가본 적도 없으면서 천왕들이 들고 있는 지물이 콩이어야 한다거나 팥이어야 한다는 것은 “차시무기(此是無記)”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로서는 다문천왕 발치에 떨어져있는 비파가 두 팔에 들려 있지 않은 것과 다문천왕에게 밟힌 마구니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채 널브러진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힘들지 않은 손질로 천왕문을 지나는 불자님들이 온전한 다문천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독화살 맞은 사람의 몸에 스며든 독을 하루 빨리 제거해주는 분이 나타나시길 기원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범종루에 이르렀습니다. 정면 3칸으로 앞뒤 네 개의 기둥에는 나옹선사께서 지은 선시가 주련으로 걸려있습니다.

 

 

 

나옹선사께서는 21살에 출가하여, 몇 년 안 되는 참에 깨달음을 얻었다 합니다. 갑남을녀들도 살아가면서 저절로 깨치게 되는 평범한 내용을 ‘굳이 이렇게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나옹선사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세월을 보내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데. . .
나옹선사께서 시를 지은 지 수백 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난다 긴다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읊조리고 뜻을 수긍하는 것은 말만 할뿐 지켜내기가 어려운 탓일 겁니다. 아직도 무엇 하나도 벗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보고 또 보다가 종래에는 소리 내어 읽어버렸습니다.

 

 

 

 

범종루에는 범종·운판·목어·법고를 비치해 놓으며, 불전사물은 살아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 그리고 하늘을 나는 날짐승부터 물에 사는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소리를 들려주어 제도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렇지만 봉림사 범종루는 텅 비어있습니다. 불전사물이 없는 까닭에 소리는 공중으로 물속으로 퍼져나가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소리를 통해야 제도되고 천도가 될까요? 석가모니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난 미소를 떠올리면 소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또 ‘보이는 것에 혹하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난 것과 촉각 등에도 혹하지 말고 마음을 내라’하신 것에 이르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실제로 비워놓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허투로 뱉은 말이 백리를 간다면, 틀려진 생각은 찰나에 만 리 밖으로 너무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불전사물은 소리를 들려주려 놓는 것이지만 어쩌면 상징적인 의미일 수 있습니다. 범종루가 비어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범종루를 보는 순간 또는 떠올리는 순간에, 어떤 이는 범종을 어떤 이는 운판이 보였고, 어떤 이는 목어 소리를 어떤 이는 법고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범종루가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봉림사 극락전은 맛배집으로, 풍판을 길게 내렸음에도 측면과 후면 벽에 심우도를 그려놓았습니다. 열 쪽의 그림 중, 현생에 이 정도만 이루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그림은 “견우”입니다. 수행은 하지도 않으면서 본성을 깨닫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림사는 나의 얍삽한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를 깨우치게 하려는 주련을 극락전 기둥에 걸었습니다.

 

 

 

 

오래 된 절이라하나 넓은 절 마당에 텅 빈 범종루와 아담한 극락전이 있을 뿐입니다. 보임새가 단촐하고, 스님의 염불소리 밖에 들을 것이 없는 절입니다.
그러나 물체와 소리가 없어도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고, 저 멀리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운판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봉림사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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