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23회>
집현전 학사
1434년.
세종이 즉위한 지 19년이 되는 가을이었다. 세종의 침전지붕 용머리 너머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세종은 장번내시가 등 뒤로 다가온 줄도 모르고 한동안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달무리가 진 보름달 옆으로 기러기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세종은 뒷짐을 풀고 목을 움츠렸다. 목덜미에 느껴지는 밤이슬의 기운이 차가웠다. 궁궐 밖에서는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세종이 기침을 토해내자,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서 있던 내시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전하, 옥체를 보전하소서. 병환이 나시면 큰일이옵니다.”
“신미 생각이 나서 달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 신미에게 내린 지시가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 궁금했다. 신미에게 내린 지시란 비밀리에 우리 글자를 만드는 일이었다.
“신미대사는 대자암에 있지 않사옵니까?”
“궁에서 가까운 흥천사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불러들이겠으나 대자암에 있으니 그럴 수도 없구나.”
신미는 함허가 대자암을 떠난 이후 세자와 왕자들의 스승이 되어 대자암에 머물고 있었다. 대자암 주지 명우는 주로 도량을 정비하는 사판의 일을 보았고, 신미는 왕실의 원찰인 대자암에서 왕사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신미대사를 부를 만한 일이 있사옵니까?”
“과인은 종종 신미를 만나 은밀하게 추진하는 일이 있느니라.”
“전하, 나랏일이옵니까?”
“천추만대 백성을 위한 일이지.”
세종은 내시에게 더 이상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침전에는 이미 세종의 부름을 받은 신빈 김씨가 잠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신빈 김씨는 세종 즉위년에 13살의 나이로 여종 신분에서 궁녀가 되어 왕비 소현왕후 심씨의 지밀나인으로 들어왔다가 수양의 애기업개 노릇을 하면서 어느 날부터 세종의 총애를 받더니 22세에 첫아들 계양군 이증을, 이후 한두 살 터울로 둘째아들 의창군 이공을, 셋째아들 밀성군 이침을, 익현군 이관을, 밀성군 이관을, 34세에 여섯째아들 담양군 이거를, 두 명의 딸을 낳고 귀인에서 빈으로 책봉된 여성이었다.
“전하, 침전에는 신빈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오늘밤은 아니다. 신빈이 돌아가도록 전하라.”
세종은 신빈을 불렀으나 무슨 생각에선지 물리쳤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침전을 갔다 온 내시에게 말했다.
“수양과 안평을 불러오도록 해라.”
“전하, 오늘은 침전에 드시고 내일 만나시옵소서.”
내시는 간헐적으로 기침을 하는 세종의 건강을 걱정해서 만류했다. 그러나 세종은 내시를 다그쳤다.
“세자는 궐 밖에 나갔느니라. 그러니 수양과 안평만 부르라는 것이다.”
내시는 즉시 어영대장을 찾아가 세종의 명을 전했다. 달빛이 마당으로 내려선 세종의 얼굴에 비쳤다. 내후년이면 40세가 되는 세종이었다. 그러나 달빛에 드러난 세종의 얼굴은 중늙은이 같았다. 동안의 얼굴인데도 벌써부터 이마에 주름살이 생길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늙은 신하들과 날마다 정사를 논하다 보니 말투나 몸짓까지 그들을 닮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보름달 달빛이 침전 마당에 한 켜 한 켜 재였다. 달빛이 내린 모래마당은 사금처럼 반짝였다. 수양과 안평은 달빛이 침전의 처마 깊숙이 파고드는 이경 무렵에 왔다. 두 식경이 지난 시각이었다. 어영대장이 비상연락망을 가동하여 빠르게 조치하였기 때문이었다. 침전으로 들어온 수양이 변성기를 지난 청년의 목소리를 냈다.
“아바마마.”
“아직 자지 않고 있었구나.”
“신미대사께서 주신 과제를 외고 있었사옵니다.”
“무슨 숙제이더냐?”
“범자의 자음과 모음을 외는 일이옵니다.”
“안평은 무얼 하고 있었느냐?”
“저도 수양 형님과 마찬가지로 범자를 외고 있었사옵니다.”
수양이 다시 물었다.
“아바마마. 이 밤에 주무시지 않고 왜 부르셨는지 궁금하옵니다.”
“신미가 대자암에 가 있으니 만날 수가 없구나.”
“흥천사에 다시 오라시면 되지 않습니까?”
“흥천사에 오더라도 헌부의 눈들이 있어 그렇다. 헌부의 관원들이 승려의 궁궐 출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 하연이나 사간원의 우사간 유계문 등이 특히 더 심했다. 배불(排佛)에 앞장선 유계문은 성균관 유생들을 시켜서 상소를 올리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아바마마. 헌부에도 불자 신하가 있어야 합니다.”
안평 역시 변성기를 지난 저음의 목소리를 냈다.
“이유가 무엇이냐?”
“헌부에 불자 신하가 있으면 함부로 아무 데서나 신미대사 같은 승려들을 모함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신하 중에 석교(釋敎)를 믿는 자가 누구이더냐?”
안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평은 불자 신하 중에서 먼저 정효강(鄭孝康)을 떠올렸다. 정효강은 신미를 존경하여 대자암을 자주 찾는 신하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이전에는 죽은 성녕대군 사저에서 금자 불경을 발간하기 위해 금을 녹일 때 감독관이었던 정효강을 여러 번 만나 보았던 것이다.
“아바마마. 석교를 돈독하게 믿는 신하가 있사옵니다.”
“누구이더냐?”
“성녕대군 사저에서 불경을 만들 때부터 보았고, 대자암을 자주 찾아가 신미대사의 법문을 듣는 정효강이옵니다.”
“그렇다면 네 말대로 효강이를 당장 헌부로 보내야겠구나.”
실제로 세종은 며칠 만에 정효강을 사헌부 지평으로 제수해 보냈다. 세종은 잠자코 말이 없는 수양에게도 물었다.
“수양의 생각은 어떠한가?”
“동생의 제안에 놀랐습니다. 이왕 그러시다면 성균관 유생 중에도 눈여겨볼 만한 인재가 있사옵니다.”
“말해 보아라.”
“신미대사의 동생인 김수온(金守溫)이란 자이옵니다. 유가의 경전은 물론 불경 등에도 조예가 깊사옵니다. 신미대사를 뵈러 갔다가 대자암에서 보았습니다만 불경에 대해서 막힘없이 얘기하는 것을 보고 심히 감동한 적이 있사옵니다.”
“알겠다. 오늘밤에 너희를 부른 것은 우리 글자를 만드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신미라도 자주 만나 의논하면 좋으련만 헌부의 눈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지 않느냐?”
“아바마마. 신미대사를 집현전 학사로 제수하면 될 것이옵니다. 학사가 되면 궁궐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 것이고, 유신(儒臣)들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오, 그렇구나! 수양, 네 말대로 하겠다.”
세종은 크게 만족했다. 과거시험으로 검증받은 수재들인 집현전 학사들의 시비와 질시가 있다 할지라도 신미가 처세하기 나름일 것이었다. 비록 승려일지라도 유가 경전에 해박하고 범자, 밀자(密字; 티벳 글자) 등 여러 나라 글자에 달통한 신미를 그들도 무시하지 못할 터였다.
다음날.
세종은 조회가 끝나고 신하들 중에서 종 3품인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만 남게 했다. 집현전 학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최만리였고, 신미를 학사로 제수하려면 집현전에서만 15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 최만리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만리는 뜻밖에도 세종의 명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다. 신미가 집현전에 상근하는 벼슬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학사들의 자문이 있을 때만 응하기로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최만리는 세종이 신미와 함께 우리 글자를 만들기 위해 궁궐출입을 자유롭게 하고자 학사로 임명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