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르르~, 올 들어 첫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미 우니, 여름이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매미울음을 신호탄으로 태양은 더 작열할 것이다. 곧 콩과 들깨의 파종이 끝나면 샘처럼 돋는 풀과, 화수분처럼 밀려드는 벌레들, 결실을 나누려는 새들과의 신경전이 본격화할 것이다. 생명줄과도 같은 비가 간헐적으로 내려주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간절한 농심(農心)은 당연한 일과일 것이고.
매미 소리를 들으면 뜨거운 날에도 왠지 청량한 기운이 느껴진다. 초등학생 시절, 교정의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옹기종기 앉아 신바람 나게 울어 제치는 매미 울음소리를 듣던 아련한 기억 덕일지도 모르겠다.
현묘재의 한낮. 온 허공이 매미 울음소리로 빈틈이 없다.
매미의 수명은 1~3주 정도다. 그 기간을 위해 매미가 준비하는 기간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17년이나 된다.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반짝 빛을 보는 성충의 생존시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니, 매미 입장에서는 몹시 억울할 것 같다.
매미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곤충으로 예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울음소리는 동요 등 음악의 소재로 등장하고, 성충은 물론 허물과 유충도 한약재로 활용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매미는 말매미, 유지매미, 소요산매미, 쓰름매미, 애매미, 참매미, 털매미, 늦털매미, 참깽깽매미, 깽깽매미, 두점박이좀매미, 고려풀매미, 세모배매미, 풀매미, 호좀매미 등 총 15종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들어온 주홍날개꽃매미가 수목에 치명적 해를 가하고 있어 매미에 대한 호감을 갉아먹는 중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매미를 친근하게 여겼다. 애벌레인 굼벵이가 땅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성충이 되는 모습 때문에 불교에서는 ‘해탈’의 상징으로 곧잘 활용되었고, 도교에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기 때문에 ‘재생’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유교에서도 매미를 덕 많은 곤충으로 여겼다. 영조 때의 문신이자 가객인 이정신(李廷藎)은 매미의 고어인 ‘매암’과 ‘쓰르람’의 울음소리를 듣고 초야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한 편의 시조로 읊기도 했다.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山菜)를 맵다는가 박주(薄酒)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草野)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라라.
그러나 도시에서의 매미 울음소리는 친근함을 넘어 여름밤을 망치는 소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는 일이 늘어나면서 매미울음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매미는 아무 때나 울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매미가 울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체온이 특정 범위에 맞춰져야 하고, 주위의 밝기가 적당해야 한다. 밝기, 즉 조도가 일정수준 이상일 때만 우는 종들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약 15종의 매미류가 서식하는데, 이 가운데 도심에서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종은 말매미다. 말벌이 그렇듯이 이름 앞에 ‘말’자가 붙으면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현묘재의 한낮
어쨌거나, 여름의 상징으로 우리네 정서에 청량제 역할을 했던 매미 울음소리가 차츰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으니, 무상의 진리는 예서도 예외가 없다. 그런데 매미가 한 밤에 우는 것은 매미 탓이 아니라 온갖 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아진 도시 환경 탓이다.
우는 매미는 수컷인데, 우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짝짓기 할 암컷을 찾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수컷들끼리 싸우기 위해서이며, 셋째는 위험에 처했을 때다.
아무려나, 서진(西晉)의 관리이자 문인이었던 육운(陸雲, 232-303)은 매미를 일컬어 다섯 가지의 덕(五德), 즉 문(文)·청(淸)·염(廉)·검(儉)·신(信)을 지닌 곤충이라고 칭송했으니, 그 내용은 이렇다.
머리가 관(冠) 끈 늘어진 모습과 흡사해 문인의 기품을 갖췄으니 곧 ‘배움’이 있네.
오로지 수액과 이슬만 먹고 사니 곧 ‘깨끗함’이 있네.
사람이 먹는 곡식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니 곧 ‘청렴함’이 있네.
다른 곤충들처럼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 사니 곧 ‘검소함’이 있네.
철따라 때맞추어 허물을 벗고 할 도리를 지켜 우니 곧 ‘믿음’이 있네.
頭上有緌 則其文也
含氣飲露 則其清也
黍稷不享 則其廉也
處不巢居 則其儉也
應候守常 則其信也
임금의 모자 위에 한 쌍의 매미 날개를 단 것은 5덕을 갖춘 군주가 되어달라는 뜻이고, 매미날개를 양쪽으로 단 신하의 모자, 즉 익선관(翼蟬冠)은 매미처럼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소동파는 천하의 명문으로 알려진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 “표표히 세상을 잊고 홀로 날개 단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羽化而登仙)”고 노래했다. 도가(道家)에서 사람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으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데서 온 표현이다.
날개가 돋는 우화(羽化) 현상은 하지(夏至)의 상징이다. 하지부터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그 다음 5일간에는 매미(蟬)가 울기 시작한다고 하니, 매미 울음만으로도 절기를 알겠다. 땅속에서 기나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뎌오다가 하지를 기점으로 날개를 다는 매미, 즉 ‘등선(登蟬)’을 ‘등선(登仙)’으로 기민하게 받아들인 것이니, 과연 동파의 솜씨는 기발하기 짝이 없다.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해탈을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매미가 해탈의 지난함과 세속적 성취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설법하는 ‘여름 선지식’으로 다가온다.
